약속을 나가는데 입을 옷이 없다고 생각했다.
옷장은 분명 가득한데, 막상 나가려고 하면 입을 게 없었다.
그래서 또 하나를 사고 싶어졌다. 이번엔 다를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옷을 살까.
유행이 바뀌어서일까.
기분 전환이 필요해서일까.
아니면 그냥 예쁜 걸 보면 못 참는 사람이라서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옷을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사고 있었던 것 같다.
단정해 보이고 싶을 땐 셔츠를 샀고,
자유로워 보이고 싶을 땐 헐렁한 바지를 샀다.
성숙한 커리어우먼처럼 보이고 싶을 땐 어두운 색을,
청순한 사람이 되고싶을 땐 파스텔톤 옷을 샀다.
그때마다 나는
‘이 옷을 입은 나’를 상상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옷은 옷장 안쪽으로 밀려났다.
어느 날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옷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옷장을 전부 비워봤다.
정말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꺼내 바닥에 펼쳐놨다.
그리고 엑셀까지 켜서 하나씩 정리했다.
비슷한 검은 바지가 몇 벌씩 있었고,
거의 차이가 없는 흰 티셔츠도 여러 장이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아서 시원했고,
생각보다 많아서 조금 미안했다.
어쩌면 나는
부족해서 산 게 아니라
확신이 없어서 샀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을 때,
옷으로라도 나를 정해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새 옷을 사면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바닥에 펼쳐진 옷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충분히 많은 선택을 해왔구나.
그날 이후로,
무언가를 더 사기 전에
내가 가진 것부터 먼저 보려고 한다.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더하는 대신,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정확히 들여다보는 쪽으로.
[내가 믿어온 것]
- 새 옷을 사면 새로운 내가 될 수 있다
[기어코 선택한 것]
- 새 옷으로 나를 바꾸는 대신, 가진 옷을 정리하며 지금의 나를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