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 라이프의 미니멀 라이프 도전기
몇 년 전부터 더 이상의 살림을 늘리지 말자고 결심을 했었다.
어느 날 문득..
거실 한가운데의 소파에 앉아 천천히 눈 가는 대로 둘러본다.
혼수로 장만했던 30년 넘도록 장수하고 있는 작은 원목 장식장과 그 안에 들어있는 3분의 1쯤 되는 혼수용 그릇들은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니 버릴 수가 없다. 이미 20년도 넘은 타지생활할 때 도착하자마자 5불쯤으로 사서 방바닥생활부터 함께 했던 탁상용 시계는 여전히 열심히 잘만 돌아간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 버린다고 내놓은 3단 분리형 토끼 저금통은 망가진 몸통을 버리고 머리와 다리만으로 연결되었지만 절대 엽기적이지 않고 귀엽기만 하니 또한 버릴 수가 없다.
그림이 예쁜 작년도 달력과 심지어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의 예쁜 포장지조차 고이 접어 내 책들 사이에 꽂혀있다.
물건들을 헤아리다 보니 이 작은 집이 버겁게도 많은 것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남편은 많이 다르지만 한 가지 닮은 성향이 있다. 내 품에 들어온 것은 망가지고 제 구실을 못하더라도 내치지 못하고 품어 안는다.
어느 때는 구구절절 품어야 하는 이유를 늘어놓을 때도 있고, 몰래 감추어두기도 하니 우리의 집은 참 무겁게 우리를 감당해주고 있었다.
소파에 앉은자리에서만 보아도 족히 20년, 30년.. 엄마의 물건까지 치면 50년이 넘는 물건도 있다.
“그런 것도 집에 있다고? 고양이뿔도 있는 거 아냐?”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집에 무엇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이사라도 하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다. 30평 집에서 대저택만큼의 물건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집정리를 하고 싶어 책을 읽었다.
많은 것을 책을 통해 배우지만 몸을 움직여서 해야 하는 일인 집정리를 책으로 배우려 하다니 우스운 듯도 보이지만 집정리는 마음정리도 함께 해야 하는 아주 고차원적인 일이다.
(불필요한 정보: 자전거 타기와 수영을 책으로 배우진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내용은 이렇다.
같은 종류의 물건은 한 곳에만 두어라
나중에 쓸 용도를 생각하여 두지 마라
안 보이는 봉지에 물건을 담아두었다가 한 달 동안 안 쓰면 버려라
추억물건은 사진을 찍어두고 버려라
등등..
물론 주변에는 그렇게 실천을 하여 콘도 같은 깔끔하고 세련된 집을 유지하는 지인도 많다.
친구 중 다 버리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집은 참 깨끗하고 예쁘다.
“너 그거 나중에 쓸 수 있지 않니?”
“안 쓸 수도 있는데 뭘 놔둬. 비싼 것도 아닌데 한참 있다가 쓸 거면 그때 또 사. 버려 버려! “
그 친구의 생각처럼 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미련이 많고 질척거린다.
근검절약하고, 모든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좋게 표현하는 스타일인 나는 그것이 잘 안 되고, 한집에 사는 두 사람의 아끼는 종목이 다른 만큼 우리의 물건이 두배로 점점 쌓여간다.
나는 모두 읽지도 못하면서 사두는 책욕심과 자질구레하고 시시콜콜한 물건들의 유혹에 빠지고, 한참 흥미로운 게 많은 갱년기 남편은 각종 신박한 아이템과 절약과 실용적인 것들의 유혹에 빠진다. 그 의견차이로 우리 집엔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요즘은 애매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남편이 분리수거해서 버려야 하는 재활용품을 자꾸만 쌓아놓으려 한다. 깨끗이 씻은 후 햇볕에 말려놓은 말간 페트병, 물티슈의 뚜껑, 근사하게 생긴 유리병, 구멍 난 고무장갑의 손목 부분, 몇 년 또는 몇 달 만에 세상으로 나오는 랩이나 알루미늄 포일을 감싸고 있던 단단하고 동그란 심지...
필요에 의해 집에 들어온 물건의 부속으로 따라온 소재들에 대한 애매모호한 존재의 이유 때문이고, 이것은 “쓰레기를 왜 모으냐” 고 구박은 하지만 내게도 좀 더 생각이 필요한 것들이다.
내가 버리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면 집안일 분담 중 철저히 지켜지는 우리 집 재활용 담당은 남편이기 때문에 은근슬쩍 넣었다간 검문검색에 딱 걸린다.
집을 둘러본 그날 이후 버리는 것이 어렵다면 집안에 새물건을 들이지 않기로 선언했다. 불가피하다면 '하나가 들어오려면 먼저 하나가 나가야 한다!'는 타협점 하나를 찾고 규칙을 세웠다. 나름 규칙을 잘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것도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는데 신문물이 들어왔다.
캡슐커피 머신..'미니'라는 눈치 보는듯한 이름을 달고, 내 생일 명목으로 들어왔으니 난감했다. 캡슐커피 머신은 남편이 갖고 싶어 노래를 부르던 물건이었고, 나는 “안돼! ”를 외치던 물건이었다.
며칠간은 참 부담스럽다가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합리화를 시작하며 한편에 미니의 자리를 잡아주었다. 기계와 함께 들어있던 3만 원을 할인해 주는 쿠폰을 안 쓰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낚시에 걸려 일주일 만에 캡슐 150개를 주문했고, 150개를 주문하여 받은 사은품인 투명한 아크릴 통에 알록달록한 캡슐들을 넣어 식탁 위에 예쁘게 위치하게 했다. 제대로 낚시 바늘에 걸렸지만 예쁜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아, 이제 어쩔 것인가?'
'무엇을 내보내야 할 것인가?'
소파는 6년을 썼다는 사람으로부터 20만 원에 사서 임시로 잠깐만 쓰려던 우리는 16년째 사용하고 있다.
몇 년 전 소파를 샀다가 배송이 많이 늦어지는 일이 발생했고, 결국 취소를 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빨리 바꿨다면 추억이 없었을 텐데 물건을 너무 튼튼하게 만들었으니 미적거리다 한계점에 다다랐다.
나는 추억이 담겨있는 22년 차인 커버 빨래가 가능한 이 패브릭 소파가 좋다.
오늘도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