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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Jan 22. 2024

말주변 없는 수다쟁이

나의 선생님들

어릴 적 말이 빨랐다고 하니 돌 이후엔 말을 했을 것이고, 그럼 오십 년 넘게 말을 하고 사는데 나는 말을 유려하게 하지 못한다.

말주변이 없다.

누구와의 말싸움에서도 절대 못 이긴다.

불필요한 정보이지만 나와 다른 말을 잘하는 남자를 만나 그것이 매력적이고 멋있어 보여 결혼까지 했는데 사실 평생 고달프다.

“자상하고 조근조근 말 많은 다정한 남자가 늙으면 다 잔소리로 변하더라” 는 어른들의 말이 요즘 무릎을 탁 치는 명언이었다 싶다. 그러나 들을땐 잔소리라고 여겨지지만 나중에 가만히 생각하면 불필요한 말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남편을 향한 나의 귀가 삐딱한가 보다. 남자친구였고  남편이 된 남자는 잔소리쟁이가 아니고 나의 가장 좋은 검색창이자 선생님이 되었다.


내 존재의 이유였고 눈을 감는 그날까지 변치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는 두 아이를 먹이고 키우며 살아온 시간은 갉고 닦는 수련의 시간이었고, 무언으로 교감을 하는 반려견 비누를 만나게 된 것은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혀준 아주 중요한 선생님이라 할 수 있다.

차차 가족이 스며들어있는 소중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 다이내믹한 삶을 살다 보니 내 머릿속엔 하고 싶은 얘깃거리가 너무 많은데 말주변이 없는 나는 글을 쓰면 마음이 편했다.

 

글쓰기에 대한 공부는 학창 시절 학기 초에 특별활동을 선택하는 시간이면 원하는 학생수가 적어 조용하고 말을 하지 않아야 했던 경쟁력이 가장 낮은 작문만을 어김없이 선택했었고, 작문반에선 배움이라기 보단 매 시간 글의 주제를 주었고, 규칙적인 붉은색의 반듯반듯한 네모가 가득한 200자 원고지에 제시된 분량을 써서 내면 선생님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체크하여 돌려주신 것이 다였다. 시끄러운 것이 싫었던 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특별활동은 언젠가 한국 매듭을 배운 때를 제외하면 거의 작문반이었다. 그것이 글쓰기 공부가 크게 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문학과는 상관없던 전공의 대학시절에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글을 쓰는 작가에게 빠져들었다. 여전히 나의 우상인 고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이 들기 직전까지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도 지하철에 기대서서도 읽고 또 읽었다. 정확한 날짜는 잊었지만 2011년 1월 어느 날  타계하셨다는 뉴스를 듣고 너무 안타깝고 속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박완서 작가님의 글과 삶은 감동과 글로써 글을 가르치셨고, 나는 그분 같은 글을 쓰고 싶었고, 그분과 닮은 삶을 살고 싶기도 했다.

맹랑한 꿈이었다. 감히!

박완서 작가님의 훌륭한 글을 읽은 것이 내 글쓰기 공부의 모두였다.


행동도 느린 편인 나는 재촉을 하면 더 버벅거리고 뚝딱거리는 편인데 서랍 속에 저장글이 있으니 발행을 하라고 재촉하는 알림이 뜨니 마음이 불편했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3년을 기다린 만큼 서랍 속엔 언제 쓸지 몰라 종이 쪼가리에 적어 쑤셔 넣은 듯한 글감이 많다. 하지만 첫 글은 꼭 새로 쓰고 싶었고, 짧게 쓴 ‘처음‘ 글을 쓰는 일은 특별했고 오래 걸렸고 어려웠다.

브런치에 글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지 열흘이 넘었다.

그냥 떠들고 싶어 쓰는 나의 글은 <쓰고-맞춤법 검사-저장-처음부터 다시 읽기>의 단계를 수십 번 반복하고 쓰던 글이 안 보아도 토시 하나까지 외워지고 지겨워질 때쯤이면 손가락을 바들바들 떨며 발행단추를 누른다.

내 글은 누가 제일 많이 읽을까?

‘수십 번 저장한 나겠지 뭐~’

서랍 속의 글을 하나하나 꺼내놓으며 내 글에 구독과 라이킷을 눌러주신 작가님들의 브런치에 가서 훌륭한 글을 읽는다. 내 글이 부끄러워지며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나지만 갑자기 글이 좋아질 순 없을 테니 또다시 ‘처음’처럼 힘을 빼고 긴장을 푸는 것이 우선이겠다.

그래도 당분간은 3년 동안 저장해 둔 글들로 자주 발행하며 허접하지만 연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세 사람이 모이면 그 안에 반드시 선생님이 있다고 한다. 언제나 누구에게 누군가는 선생님이 되어주는 나의 곁엔 또 다른 운명 같은 두 사람이 있다.

고맙고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나의 죽마고우이자 짝꿍인 베카(veca) 작가와 봄날 같은 따스함으로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써니언니는 나의 친구이고 선생님이다. 우리 셋은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싶을 정도로 다른 외형을 갖었지만 내면의 중심이 아주 비슷하다 느낀다. 실제적으로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며 언젠가 보물 같은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꼭!


열흘 사이에 깜깜한 새벽에 전자기기 속의 글을 들여다보았더니 노안의 눈이 침침하다. 오복중 하나인 좋은 눈을 갖은 나는 아직 돋보기를 쓰지 않았는데 조만간 돋보기를 맞춰야 할 수도 있겠다.

요즘의 루틴은 글을 발행하고 나면 깜깜한 새벽이 밝은 아침이 되어있다. 눈건강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의 커다란 몬스테라 잎을 한참 동안 들여다본다.

‘오래 많이 수다 떨고 싶으니까..’

4년을 함께 지낸 3000원짜리 몬스테라


이 글을 발행하고, 요즘 등한시하는 블로그에 들르니 오늘이 박완서 님 작고하신 날이었다고 13년 전 썼던 짧은 글이 알람으로 떴다.

나의 영웅이었던 그분은 눈 오는 새벽에 떠나셨다.

‘그래서 오늘 눈이 내린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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