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사이 Jan 20. 2024

대한

“나 대한이야! “

옛말에 ‘대한이 소한집에 놀러 왔다가 놀라서 달아났다’ 고 했다.

소한의 추위가 매서웠단 뜻이다.

겨울에 들어가 소한이란 절기를 맞아 바짝 추워지면 체감온도가 무척 낮게 느껴져 소한에 닥치는 추위가 엄청 춥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 주말이 지나면 그 달아났던 대한이가 여 보란 듯이 바람을 타고, 북극 한파를 몰아 온다고 예보되어 있다. 어제부터 돌풍 같은 바람이 불어 집의 흔들거림이 느껴진다.

바람에 아파트인 집이 흔들리니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솜털 같은 씨앗을 날리는 것처럼 옛 생각이 폴폴 새어 나온다.


신혼집인 아파트는 전매금지기간에 걸려있어 터무니없이 싼값에  전세로 들어있었다. 동서향의 집이어서 이른 아침에 해가 들어 아침잠이 많지만 밝으면 잠을 못 자는 나는 힘들었고, 서향에 위치한 부엌에서 저녁준비할 때 다리가 엄청 뜨거웠고, 여름엔 음식 관리에 조금만 소홀하면 상하기 일쑤였지만 4년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앞 베란다에서 보면 놀이터가 있어 멀리에 앞동이 있었고, 오른쪽은 아파트가 없이 트여있어 멀리까지 보이는 작은 집이지만  답답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파트가 전매금지 기간이 풀리면서 원하는 만큼의  전세가로 올릴 수 없으니 집주인은 “다음 달에 외국 살던 조카가 들어와서 살아야 해서요”라고 타협의 의지는 한 톨도 없으며 한 달 만에 나가라는 뜻을 전해 왔다. 8개월 차 임산부였던 나는 청천벽력 같았다. 당시 대기업을 다니던 남편은 고심 끝에 대출을 왕창 내고 쫓기듯 속전속결로 옆동의 집을 사게 되었었다. 계획에 없던 첫 집 마련이었지만 집을 사야 이사 다니지 않고 애들이 크도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결정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백일쯤 지나 제정신이 들었을 때 고개를 들어보니 앞도 아파트, 오른쪽도 아파트, 왼쪽도 아파트였다.


‘이것은 닭장인가?’

마치 저 많은 창문들이 모두 내 집과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낮에도 밤에도 블라인드를 열 수가 없었다. 23개월의 차이지만 햇수로 보면 연년생인 어린아이 둘과 외출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핸드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sns가 활성화되었던 시기도 아니니 답답하고 고립된 시간이었다. 나는 혼자의 시간을 잘 보내는 편이지만 말을 하루종일 하는데 대화다운 대화는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 몸이 힘든 것보다 괴로웠고, 족쇄 같은 대출을 얻은 남편은 새벽같이 나가 밤 12시가 넘어야 들어왔다. 어떤 땐 2시에 들어왔는데 3시에 교대로 실험실을 지키던 연구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임님, 이거 이상합니다. 나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1시간도 채 못 잔 남편은 한걸음에 다시 연구실로 향했다. 우린 둘 다 똑같이 너무 삶이 고되고 치열했기에 내가 독박육아에 대한 투정 따위는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답답한 날엔 블라인드를 조금 열고 전면 아파트와 오른쪽 아파트 사이로 살짝 보이는 팔을 뻗어 가늠해 보면 10Cm만큼의 하늘을 바라보며 “후우~” 소리를 내면서 숨을 크게 쉬었다. 그것은 나의 숨구멍이었다. 그 숨구멍이 아니었으면 나는 그대로 닭이 되었을 수도 있다


지금 사는 집을 선택할 때 시야가 답답하지 않은 곳을 고르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거실에 앉으면 창을 통해 전면 시야를 방해하는 아무 건물이 없이 저 멀리 산의 전경이 보이면서 적당한 높이의 산이어서 하늘이 1/3쯤 보인다. 나의 조건에 완벽히 맞는 풍경화를 갖은 집을 만났고 우리 결혼생활의 두 번째 집이 되었다. 처음에 계약했던 전망 좋은 이 집은 몇 년 후 왼쪽 삼분의 일 만큼에 아파트가 지어졌다. 처음엔 기분이 안 좋았지만 꽤 먼 거리의 아파트 불빛은 깜깜한 밤에 깨어있어도 외롭지 않은 기분이 들게 해 주니 제법 괜찮다.


<나의 해방일지> 란 드라마를 1회를 보고 그만두었다. 다시 보려 시도했으나 4회를 보고 그만두었다. 나의 편협한 관점은 후미진 경기도에 살며 출퇴근을 하는 남매들을 보는 것이 내 아이들 같이 감정이입이 되어 미안했다. 힘들게 통학하며 대학을 마치고, 서울로 직장을 얻어 작은 오피스텔로 독립을 한 첫아이가 말한다.

“엄마 아빠가 계속 여기 살면 좋겠어. 집에 오는 게 힐링이 되고 너무 좋아”

아이는 휴가 때도 휴양지도 아닌 이 집으로 온다.

”엄마도 이곳이 좋아 “

하지만 아직은 운전이 가능해서 괜찮은데 더 나이를 들면 어떨까 싶긴 하다.

요즘 아파트치곤 아주 높은 것도 아니지만 태풍이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맨 몸으로 바람을 맞는 최전선의 내 집이 흔들려 조금은 무섭지만 번잡한 도시가 싫은 나는 요즘은 이곳에 뼈를 묻을까 고민 중이다.

“서울로 이사 갈 돈이 없어선 아니고?”

그렇게 물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서울이 아닌 풍경 좋은 집에 사는 탓에 대한이 몰고 오는 북극한파 속으로 새벽밥 먹고 나가야 하는 아이가 걱정이고, 다음 주는 밖으로 나가는 이들이 고생이 많겠다.


2024년 1월 20일. 절기 대한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