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완독
< 삼체 >
저자 류츠신
1부 삼체문제 (The three body problem)
2부 암흑의 숲 (The dark forest)
3부 사신의 영생 (Death's End)
4월 중순 시작된 대장정의 독서가 6월 초순에 끝났다.
갈수록 두꺼워진 세 권의 책을 멈추지 않고 완독을 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하단 생각이 든다.
감명 깊게 읽은 장편 소설은 조정래 작가님의 태백산맥이 마지막이었다.
태백산맥은 열 권의 책이 3년에 걸쳐 발간되었으므로 길게 느껴지지 않고, 아쉬움에 애타게 기다리며 읽은 점도 있지만
이후 어떤 장편에서도 그만큼의 감동을 느끼지 못했었다.
소설 태백산맥을 생각하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리산의 능선이 가본 듯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어떤 면에서도 두 소설을 비교할 순 없다.
그런데 삼체를 읽으며 태백산맥이 자주 떠오른 것은 왜일까?
두 소설에서 흐르는 시간 속에 인간의 내면과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자꾸만 두 소설이 함께 연상되었다.
진실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고, 더 소중히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한 1950년대의 작은 분단국가의 가슴아픈 주제의 글에서도
허구의 공상과학 소설 속 지구의 위기와 인간사, 인간과 외계 생명체 간의 관계가 주제인 글에서도
생명의 존귀함과 윤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삼체를 읽는 것은 힘들었다.
1권은 과학적 지식이 전무한 내겐 계속적으로 튀어나오는 용어들의 고문이었다.
친절하진 않았지만 백과사전처럼 설명해 준 과학도 남편이 아니었다면 첫 권에서 독서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2권, 3권을 읽어가며 과학적인 지식은 여전히 부족했지만 신기하게도 SF 소설이 내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
SF는 인간적이지 않을 거란 평생 갖은 무지한 편견을 깨는 독서가 되었다.
점점 두꺼워지는 세 권의 책은 다음이 궁금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어느새 책장을 자꾸만 넘기고 있었다.
장르의 낯섦으로 인한 거부감을 갖은 나 같은 독자를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참 감탄스러웠다.
이 점은 태백산맥을 읽을 때도 느꼈던 감정이었다.
위대한 작가는
한 번도 못 가본 지리산 자락을 눈앞에 그려지게 했고,
우주의 하늘이 마치 아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무사히 완독을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니 나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됐다. 별이 보이지 않는 한낮에도 저기에 있을 별이 보이는 것 같았다.
책에 너무 빠져들었을까?
어쩌면 닐 암스트롱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는 사실만이 아는 것의 모두였던 시대에 읽었다면
“이게 무슨 허무맹랑한 만화인가?” 했을지도 모르겠다.
3,40년 전쯤 멀지 않던 과거에 우리는 지구가 무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구가 훼손되어 가고 있으며 인간이 살 수 있는 다른 별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지구는 유한하며 자체적으로 환경적 유한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허구의 이야기로만 생각되지 않으며 마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후대에게 신화처럼 보일지도 모를 황금시대에 운 좋게 태어나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이 장편 소설을 읽는 동안 딱 중간쯤의 부분에 쓰여있는 글귀가 뇌리에 박혀 잊지 못할 구절이 되었다.
삼체 위기가 출현한 뒤 100년 동안 황금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른바 황금시대란 1980년대부터 삼체 위기가 출현하기 전까지의 아름다운 시대를 의미한다.
.
.
“ 휴, 그땐 왜 그게 소중하다는 걸 몰랐을꼬?”
.
.
“그렇게 신화처럼 평화롭고 풍요롭고 행복한 세상이 정말로 존재했다고요? 믿을 수 없어요!”
- 삼체 2부. 암흑의 숲 중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