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제법이다.
작은 모티브 하나를 코바늘로 정성껏 뜬다.
금방금방 완성의 기쁨을 느끼다 보면 한 개 두 개 세 개.. 작은 조각이 필요한 만큼 모인다.
각각의 많은 모티브를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는 마지막 작업은 조금 신경이 쓰이고 지루하지만 마침내 완성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대로 쓸모 있는 적당한 가방이 되고, 등을 따뜻하게 해 줄 조끼가 되기도 했다.
작은 모티브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뜨개질은 언제나 한코, 한코 숫자를 세며 작은 코들을 더해가는 작업이다.
잠시 다른 생각이라도 하면 분명히 코를 틀린다.
코를 건너뛰기도 하고, 한코에 두 개를 넣기도 한다. 매 단 마다 콧수를 확인해야 하는 작업과 작은 코에 집중하느라 멀리서 전체를 보는 과정을 귀찮아서 미룬다.
틀린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수백, 수천 개 이상의 코를 늘리는 헛수고를 한참 하고난 뒤에야 모습이 드러나 알게 된다.
빠트린 작은 코 한 개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비뚤어진 모양이 된다.
몇 시간 또는 며칠을 뜬것을 풀어야 하는 것이 허무하다.
‘자세히 안 보면 티가 안 나는데 그냥 눈을 질끈 감아버릴까?‘
언제나 고민을 하지만 답은 하나다.
다른 사람에겐 안보이겠지만 실수를 한 나는 틀린 곳이 어딘지 정확히 보인다.
계속 눈에 띄고 마음에 남아 거슬리고 또 거슬릴 테니까 고민의 답은 선택지가 없다. 그 빠트린 코의 위치까지 풀어 원점으로 돌아간다.
실을 푸는 것을 푸르시오 작업 (뜨개인들의 전문용어)이라고 한다.
푸르시오 작업엔 아까운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고뇌가 들어있다.
누군가 “괜찮아. 풀지 마”라고 말해주길 바라지만 결국엔 내 마음이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풀어놓은 실은 새것 같지 않고, 꼬불꼬불한 라면모양으로 실수의 흔적이 남았지만 다시 풀어놓은 실을 엉키지 않도록 조심하며 동그랗게 만다. 풀어놓은 실은 자칫했다간 엉켜버려서 아예 끊어야 한다.
수고가 아깝고 손목도 저리지만 아주 조심스럽게 한 시간을 되돌리고, 하루를 되돌린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흔적이 남은 실로 다시 뜨개질을 하지만 빠진 코를 정확히 채워 넣어도 티가 난다. 돌아갈순 있어도 완벽히 재생되지 않는다.
나도 돌아가고 싶은 원점이 있다.
인생도 뜨개질처럼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을까?
간혹 이불 같은 커다란 블랭킷을 계획하지만 뜨다 보면 어느새 무릎담요 정도의 크기가 겨우 만들어진다.
그래서 모티브를 이어 붙이는 완성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작은 모티브는 틀린 것을 금세 알게 되어 너무 늦기 전에 얼른 되돌아가서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뜨개질로 무언가를 만들 때 실수가 한 번도 없이 완성품이 나온 적은 없다.
코를 틀려 되돌아가서 시간이 두배로 걸리고, 실이 모자라 주문을 하려니 품절이 되어 미완성이 되기도 한다.
언제나 실수가 일어난다.
인생도 언제나 실수가 일어난다.
수많은 눈을 감아버린 그곳이 잊히지 않고, 빠져버린 코는 마음에 걸려있다.
절대 인생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으며 되돌아간다고 또 틀리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최근엔 대작이 아닌 점점 작고 소박한 것을 만들고 있다.
작은 것이 주는 기쁨도 똑같이 크고 소중하다.
손바닥만 한 작은 모티브 하나를 정성껏 만들어 보자.
작은 완성품이 모이다 보면 언젠가 인생이 제법 쓸만한 완성품이 된다.
완료된 연재북 <비누를 쓰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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