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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Feb 29. 2024

사랑하는 까닭 (시 한용운, 그림 도휘경)

서평이 아닌 개인적인 독후감

사랑하는 까닭

시 한용운, 그림 도휘경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다.

그림은 간결한 단선으로 이루어졌는데 4B 연필로 연하게 그린 듯이 부드럽게 느껴져 마치 비누의 보드라운 털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강아지의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소중한 관계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귀여운 강아지 그림에 이끌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마음 저린 사랑의 깊이가 보였다.

처음엔 그림 속의 늙은 할아버지와 연약한 강아지에 초점이 맞춰져 가슴이 먹먹하고 슬펐다.

그러다가 시가 들어온다. ‘그림과 시가 맞는 걸까?’

이 책을 읽고 시와 그림이 내 머릿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랑하는 까닭>을 읽었는데  <님의 침묵>이 생각났다. 시를 알게 된 날부터 잊히지 않는 문장이 떠오른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되살리려 전문을 찾아 두 시를 연속으로 읽으니 시험공부나 시대적 배경을 떠나 또 다른 내 마음속의 사랑과 이별 속으로 들어간다.

그림에 적용되어 시가 스며들었듯이 지금 시를 읽는 내 마음속 감정선에선 또 다름으로 해석이 된다.

나는 언제나 헤어짐에 대한 슬픔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유난스럽고 미숙했다.

친구가 전학 갈 때 그랬다. 졸업식이 그랬다. 동네 언니가 이사 갈 때 그랬다.

그런 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매일밤 ‘내일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수없이 기도했다. 괴로운 시간이 아주 오래 지속되었다.

오랜 시간을 지나온 나는 우리 강아지 비누와의 이별에 겁이 난다.

이 책의 그림과 시는 내 마음속의 지난 이별과 다가올 이별을 항상 두려워하고 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두 개의 시는 서로를 떠올려 한 가지를 말하려는 것 같다.

작가는 그것을 의도했을까?

그림과 함께인 <사랑하는 까닭>은 처음엔 할아버지와 버려진 강아지와의 운명 같은 만남과 애틋한 사랑 그리고 이별이 아프고 쓰렸다.  

그러나 <님의 침묵>의 구절이 연결되며 마음이 견고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더 이상 슬프기만 한 내용이 아니었다.

깊은 사랑에 대한 정의와 그 깊은 사랑과 하게 되는 이별의 두려움을 완화하는 힘을 주었다.

‘내게 필요한 시였구나..’


이 책은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이별이 어찌 안 아플 수 있겠나 만 앞으로 다가올 이별에 조금은 성숙하고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단단해짐을 느낀다.


다시 책을 펼치니 덜 슬펐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우린 모두 지독히 사랑했으니까

괜찮아 괜찮을 거야
우린 다시 만날 거니까..


시와 그림의 조화로움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책이었다.

시 한용운 그림 도휘경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사랑하는 까닭>에 이어

<님의 침묵>을 함께 첨부합니다.


3.1절을 맞아 희생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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