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윤슬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는 물결을 뭐라고 하는지 아니?”
“그게 이름이 있어?”
”응, 나도 얼마 전 알았는데 단어가 있더라고. 윤슬이라고 한대“
“윤.. 슬.. “
“우와! 진짜 딱 맞는 예쁜 이름이다. 내가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많다는 것도 신기하다 “
윤슬... 어쩜 그렇게 신비스럽고 멋진 단어인지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억울했다.
3년 전 가을,
겨울처럼 사는 나와 여름처럼 사는 veca, 매일 봄날을 사는 써니언니는 제주로 여행을 떠났다.
전날 진하게 대향 이중섭과 우드스탁의 프레디 머큐리로 물들인 우리는 고요한 제주의 아침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월의 마지막 날 깜깜한 새벽은 싸늘한 기분 좋은 공기가 느껴졌었고, 우린 옷을 단단히 껴입고 동쪽을 향한 테라스에 나 앉았다.
해를 기다리는 달은 이미 하늘 높이 떠올라 바다에선 달빛의 흔적이 안보였다.
어둠 속 우리의 주변은 일찍 일어난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과 파도소리, 조용한 음악소리만이 가득했다.
어둠은 점점 밝아와 일출의 순간을 지나 햇빛은 빨갛게 바다를 물들이더니 점점 하얗게 변하고 온 세상을 밝게 했다.
우리의 윤슬이 바다 위에 반짝거렸다.
BTS의 빅팬인 친구의 폰에선 소리는 작지만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방탄소년들의 노래도 각각의 얼굴도 이름도 잘 몰랐다.
사실 지금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
여행하는 동안 BTS의 다양한 노래를 듣게 되었고, 좋은 노랫소리에 나는 관심이 생겨버렸다.
소년들이 유명해지기 전 어느 에능에선가 갓 데뷔한 신인이던 그 소년들을 보았다.
“이름이 방탄 소년단이 뭐야..”
“와, 아이돌이 나오다 나오다 저런 이름까지.. 너무 유치하다”
mc였던 김구라는 그들이 아주 크게 될 것 같다고 예언 같은 말을 했었다.
몇 년 후 소년들은 멋진 노래와 춤으로 그리고 말과 행동으로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물론 내가 아는 아이돌 그룹은 소녀시대에서 멈췄었으니 그들의 가치를 논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들의 매력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고, 연습된 것이 아닌 뭔가 주체적인 고유함을 갖은 신선한 느낌의 아이돌이었다.
윤슬과 BTS는 나에게 반짝거리며 다가왔다.
그렇다고 army 가 된 건 아니지만 종종 BTS의 노래를 듣고 영상을 본다. 지난 크리스마스엔 그들의 캐럴 모음을 꽤 여러 번 보았다.
중학교 때의 나는 조용필의 팬이어서 라디오 공개방송도 찾아가고, 명동의 중앙극장에서 상영했던 조용필의 영화도 보았다.
코팅된 사진도 모았고, 디스크 음반과 카세트테이프도 발매가 될 때마다 샀다.
그것은 나의 유일한 연예인 덕질이었다.
얼마 전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선 조용필의 노래가 어우러지며 제주가 배경이 되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조용필이 떠오르고, 제주가 생각 나니
내가 처음 윤슬이란 단어와 BTS에 눈을 뜬 그날이 떠오른다.
사진을 찾다 보니 윤슬은 내가 몰랐을 뿐 언제 어디에서나 내 곁에 있었다.
비누와 산책길에 만나는 작은 시냇물에도 있었고, 멋진 바다에도 있었고, 바다 같은 호수인 이리호(Erie Lake)에도 있었다.
사계절이 함께였던 그날에 딱 맞는 단어를 부여받은 나의 윤슬은 더욱 특별해지고 아름답게 빛난다.
그날의 윤슬과 BTS는 멋진 조합이었고, 빠져들어 갈 만큼 신비로운 매력으로 마음에 들어왔다.
친구 veca는 고등학교 1학년 첫날에 다가온 나의 행운의 윤슬이었고, 항상 반짝인다.
써니언니는 엄마를 잃고 허공에 뜬 나의 발을 땅에 디딜 수 있도록 잡아주는 따뜻한 윤슬이다.
어느 날 섬광처럼 윤슬이 내게로 다가온다.
윤슬
햇빛이나 달빛이 물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
나에겐 새로운 아름다움이다
내 삶에 또 어떤 새로운 윤슬이 다가올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