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오늘의 점수는?

by 정양갱

여름방학이다. 방학이 무슨 대단한 시작은 아니지만, 방학이 되면 그때부터 계획표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마치 멀리 뛰기 위해 한껏 움츠려야 하는 개구리처럼) 지난 기말고사 이후 한 달가량 나는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냈다. 엄마의 따가운 눈초리를 진즉부터 의식하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그러다가 결국 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방학일수를 세보니 25일이다. 방학 첫날, 이제부터 잘살자는 마음으로 아침 8시부터 5분 간격으로 알람을 3개 맞췄다. 세 번째 알람을 끄며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거실로 나가 TV를 켜고, 유튜브 홈트 채널을 연결했다. 그동안 군것질을 많이 한 탓인지 체중이 늘었지만 통 운동할 시간은 없었기에 이번 방학에는 운동을 꼭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운동으로 시작하는 하루 괜찮아 보인다!


일란성쌍둥이 자매가 운영하는 ‘흥둥이’라는 채널에서 다이어트 댄스를 따라 했다. 신나는 K-POP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 보니 신도 나고 땀도 난다. 너무 짧은 것 같아서 유산소 운동을 검색해 봤다. ‘빅시스(Bigsis)’라는 채널의 썸네일이 눈에 띈다. ‘큰언니라는 뜻인가?’ 왠지 세 보이고 살도 잘 빠지게 영상을 찍었을 것 같다. 플레이했다. ‘유산소 운동이라더니 스쿼트가 왜 이렇게 많아’ 15분 영상인데 땀이 뚝뚝 떨어진다. 마치고 샤워를 했다. 상쾌하다. 나는 눈이 잘 붓는 체질인데 얼음 마사지를 안 해도 될 정도로 부기도 빠진 것 같다. 시원한 우유에 시리얼을 부어 먹었다.


방학하면서 오전에 수학학원 특강 수업을 받기로 했다. 2시간 수업이다 보니 오전이 다 간다. 특강 신청할 때 엄마는 나에게 이번 방학 특강을 들을 거냐고 냉랭하게 물어봤다. 내가 안 듣는다고 하면 정말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은 분위기여서 두말없이 한다고 했다. 이거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오전 내내 집에서 퍼져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 와 점심을 먹었다. 집에서 일하고 있던 엄마가 차려준 점심은 삼각주먹밥이다. 방학을 맞아서 내가 좋아할 것 같은 맛으로 30개나 주문했다고 한다. 치즈닭갈비맛 삼각주먹밥에 외할머니가 방앗간에서 짠 참기름을 뿌리고 달걀프라이를 두 개나 구워서 얹어 주셨다.


점심 먹고 잠깐 퍼져있다가 인강을 봤다. 책도 좀 읽었다. 엄마의 책사랑은 정말 지극하다. 오죽하면 독서 리뷰 인스타 이름도 책사랑 일까. 엄마는 우리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산불 조심 포스터에 쓰는 글귀처럼 독서를 강조하곤 한다. “쉬지 말고 읽어라!” “숨 쉬듯이 읽어라”그 얘기를 들으면 숨이 막힌다는 건 알까? 내가 안 읽어도 또 못 읽어도 끊임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다. 그렇게 집에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엄마는 굴하지 않는다.


자기 전에 엄마가 나에게 뜬금없이 물어봤다.

“오늘 방학 첫날인데 잘 보낸 것 같니? 오늘의 점수는 몇 점이야? 10점 만점이라고 하면.”

“응??” 나는 잠시 하루를 돌아보고는 “오늘은 8점은 되는 것 같아” 했다.

“그래 앞으로는 매일 물어볼 거야 몇 점인지?”라고 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사흘 정도는 이 루틴을 이어갔다. 그리고 주말. 합리화가 시작됐다. ‘주말은 좀 쉬어도 되잖아?’ 토요일, 일요일에는 내 몸이 소파인 듯 침대인 듯 누워 지내다가 월요일이 됐다. 이번 한 주는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과학 수업에 가야 한다. 하루 8시간씩 진행되는 빡센 수업이다. 9시 전에 나서려다 보니 일어나기도 빠듯해서 흥 많은 둥이 언니들과 큰언니의 홈트는 할 수 없게 됐다. 첫날은 드론을 날렸고 셋째 날은 로봇을 조립했고, 넷째 날은 AI에 대해서 배웠다. 둘째 날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은 건 가장 재밌었기 때문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수의대에 가서 기린과 코끼리는 물론 카피바라의 머리뼈를 직접 만져보고(동물들의 이빨까지), 약품 처리한 동물들의 심장도 장갑을 끼고 만져봤다.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게다가 다른 날 먹은 학교식당 밥은 정말 맛이 없었는데 수의대는 식당 밥도 맛있었다. 수의대 수업 후 약대에 가서 약이 녹는 실험도 했다. 역시 재밌었다. 그렇게 재미있었기 때문일까? 이날 나는 집에 와서 초저녁부터 잤다.

“ㅇㅇ아 씻고 자야지”

“ㅇㅇ아 밥 먹어야지”

“ㅇㅇ아 밤에 어떻게 자려고 그래. 그만 자고 일어나!”

......


이런 잔소리들이 아주 안 들린 것은 아니지만 나는 못 들은 척 잤고

나는 엄마의 우려와는 달리 밤에 잠깐 일어나서 씻고 다시 아침까지 잤다.

다음 날 아침, 엄마의 심기는 몹시 불편해 보였다.


“너 어제 점수는 몇 점 할래?”

“.... 2점?”

“엄마가 볼 때는 마이너스야. 땅굴 파고 들어가야 돼! 무슨 잠을 그렇게 많이 자니!!”

옆에서 동생이 “마이너스 500점”이라고 한다. 엄마가 동생한테 엄마 어릴 때 보던 만화영화에 나오던 캐릭터 영심이 동생 순심이를 닮았다고 말하던 게 생각난다. 그래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매일 8시간씩 진행한 대학교 과학수업도 끝나고 다시 토요일이다. 엄마에게 먼저 도서관에 가자고 했다. 엄마는 ‘어머 웬일?’ 하는 듯했지만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소설이 읽고 싶었다. 이번 주 과학 수업을 같이 받은 친구는 쉬는 시간에 읽겠다고 ‘코스모스’라는 책을 가져왔는데 거기서 자극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은 우리 집 책장 중에서도 VIP룸 같은 곳에 다른 벽돌책들과 함께 꽂혀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는데, 내 또래 친구가 그 책을 읽겠다고 가져온 걸 보고 적잖은 충격이었나 보다. 나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은 후 휴대폰으로 ‘꼬꼬무’를 보고 있는데 말이다. 물론 그 친구도 결국에는 내가 보는 ‘꼬꼬무’를 같이 보긴 했지만. 친구의 엄마는 이 사실을 알까.


방학이 이제 2주 남았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엄마에게 비장하게 말했다.

“내일부터 나 달라질 거야”

엄마는 “어떻게 달라질 건데?”라며 타격감없이 물었다. 사실 막연했다. 작심삼일로 끝나버린 흥둥이와 큰언니 유튜브 채널의 홈트부터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이다. 이날 저녁 인터넷을 뒤져서 명언을 하나 찾아 적고 투명 테이프로 코팅한 것처럼 붙여서 책상에 붙였다.


“Life is like riding a bicycle. To keep your balance, you must keep moving.

인생을 자전거 타기와 같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나아가야 한다. - Albert Einste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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