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야”

by 정양갱

언제부턴가 엄마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 말이 쓰이는 상황을 돌아보면 정말 ‘아무 데’나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2년 전쯤인가, 동생이 태권도 1품 심사 앞두고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발레 공연 무대에 서고,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던 나와 달리,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동생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대회에 나가는 게 처음이었다. 나와 네 살 차이가 나면서 ‘잼민이’를 벗어나려면 아직도 한참 남은 동생은, 나에게 겁 없이 미운 말을 잘도 해대는 캐릭터다. 그런 동생도 태권도 심사를 앞두고 꽤 긴장되는 눈치였다. 자꾸만 크게 숨을 내쉬고 말이 줄었다. 심사 전날, 동생이 입을 도복을 개며 준비물을 챙기던 엄마가 동생에게 얘기했다.


“△△아~ 저번에 올림픽에서 태권도 경기하던 국가대표 선수 봤지?

그런 국가대표 선수들은 얼마나 많은 경기에서 이기고 올림픽에 출전했겠어.

또 자기 경기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응원하면서 지켜보는 거잖아.

잘해서 메달 받기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고. 정말 긴장되겠지.

그런 올림픽 경기에 비하면 내일 △△이가 나가는 태권도 심사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 태권도 학원에서도 1년에 몇 번씩 심사 준비하지. 심사에 나간 형 누나들 다 품증 받아오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대회에 처음 나가는 거라 좀 긴장될 수는 있지만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소파에서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못 들은 척하면서 그 말을 듣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당연하고 뻔한 말인데도 태권도 심사 따위는 정말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다음 날 태권도 심사장에서 동생은 같이 심사를 보러 온 친구에게 장난기 어린 말투로 엄마처럼 말하고 있었다. “야~ 이거 올림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이럴 때 보면 학습 능력이 괜찮은 것 같은데. 그 후에도 엄마는 동생이 태권도 2품 심사를 보거나 줄넘기 대회에 나갈 때도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로 동생을 응원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학생들을 선발해서 뽑는 중학교에 지원했다. 선생님 세 분이 진행하는 꽤 쉽지 않은 면접을 앞두고 많이 긴장됐다. 이때도 엄마 입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ㅇㅇ아~ ㅇㅇ이는 아직 초등학생이잖아. 나중에 고등학교도 가고, 대학교도 갈 거고.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수능도 보고 면접도 볼 텐데. 그런 시험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여기 못 간다고 인생에서 큰 일 나는 것도 아니고. 엄마는 ㅇㅇ이가 이 학교 가도 좋고 안 가도 괜찮아. 그냥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대학교와 중학교 입시를 비교하면 중학교 면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닌가. 당연한 말인데 묘하게 마음 한편이 편해졌다. 결과는 그 학교에 가지 못했지만. 처음에는 열심히 했던 게 아쉽고 무척 속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을 때쯤, 지역 대학에서 초·중학교 학생을 위해 진행하는 과학 수업에 참여하고 싶어 면접을 봤다. 교수님들 앞에서 진행하는 면접이라 긴장될 법도 했는데 신기하게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옆에서 손에 땀을 흘리며 긴장하는 친구들을 보며 과거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전에 봤던 면접이 예방주사처럼 느껴졌다. ‘힘들었던 경험도 약이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외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녀오셨다. 허리가 좋지 않은데 골다공증 수치가 좋아지지 않아 수술하는 게 조심스럽다고 한 지 몇 년째다. 할머니는 6개월에 한 번씩 서울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고 있다. 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할머니지만 병원에 다녀오시면 기분이 다운되곤 한다. 엄마는 여기서도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꺼냈다. 허리 수술하고 재수술에 재수술받고 누워계시는 사람도 많다고 할머니는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세상에는 비교할 대상이 무궁무진하게 많고, 비교할 대상의 좋은 편이나 나쁜 편은 늘 있기 마련일 거다. 그렇다면 엄마가 쓰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 써도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다. 하지만 뻔하고 당연한 그 표현이 가지는 힘이 있다.


요즘 엄마는 일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좀 우울해 보였다.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OST 중 ‘어른’이라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걸 보며 엄마의 우울을 확신했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가수 아이유가 주인공으로 나왔다는 걸 알고 유튜브에서 짧은 영상을 본 적 있다. 엄마가 자주 듣던 OST는 귀에 익어서 노래방에서 불러본 적도 있다. 우연히 엄마의 휴대폰을 보게 됐는데 유튜브 최근 재생목록에 ‘나의 아저씨’ 드라마의 짧은 영상이 있었다. 아저씨 배역을 맡은 남자 배우가 아이유가 연기한 주인공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주인공이 어릴 때 가족을 괴롭히던 사람을 죽였다는 과거를 아저씨가 알게 된 후 하는 대사였다.

“니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니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니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드라마 ‘나의 아저씨’ 中


‘엄마가 자주 쓰던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의 출처가 이 드라마였던 건가. 드라마의 상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일상에서도 엄마는 그동안 이 말을 그렇게 활용해서 썼던 거였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동생에게 나에게 할머니에게 해주던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긴장되고 걱정되고 힘든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엄마가 어떤 상황에서나 가져다 쓰던 그 심심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표현이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 마음을 움직이곤 한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주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내가 그 주문을 엄마에게 걸어봐야겠다.

“엄마 그까짓 일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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