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긋접목에 관한 보고
네가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설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설이 아주 잘 팔려서 대형 서점의 매대에서 어렵지 않게 네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북토크도 하고 조만간 사인회도 할지 모른다 들었다. 고교 동창회에서였다. 너는 그곳에 오지 않았고 너에 관한 소식만이 뚱한 얼굴로 턱을 괴고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나와 너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일면 없는 관계로 나는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왠지 네가 무심한 유령 내향적인 는개 따위로 여겨지기만 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부서졌다.
정갈하고 자잘하게.
너를 생각하면서. 작가 된 너를 생각하면서. 네 손에서 움찔움찔 숨쉬었을 문장과 서사 생각하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네 소설은 "새와 인간의 함께하기─조화의 아름다움"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소개되고 있는 것 같았다 ː 나는 새와 인간이 있는 방을 떠올렸다. 새가 인간을 훔치는 순간을 떠올렸다. 새를 마시는 인간의 꿀렁이는 내장을 떠올렸다. 화병에 꽂힌 조화와 날마다 거기 물 주는 새와 방과 방의 외벽을 날아오르는 인간을 떠올렸다. 새의 전쟁을 떠올렸다. 인간의 수분(受粉)을 떠올렸다. 조화의 꿀을 빨아먹기 위해 공모하는 새와 인간, 인간은 새를 벗고, 새는 인간을 벗고, 있는 힘껏 얼굴을 펼치는 조화, 날마다 달콤해지는 방 그런 것을 떠올렸다. 내 얼굴을 인간에게 덧대었다. 새에게 덧대었다. 조화에게도 방에게도 덧대어 보았다. 너에게도 덧대고 싶었는데 너는 방에 없었다. 나는 새와 인간과 조화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방에 쭈그려 앉아서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며 새끼손가락 열쇠 모양으로 깎았다. 열쇠는 새에게 인간에게 조화에게 꽂고 돌릴 수 있었는데 방에게는 그리할 수 없었다. 나는 문을 떠올렸으나 그것은 방에 없었다. 그것은 방으로부터 아주 먼 곳에서 날아오고 있었고 방 안에는 새와 인간과 조화 그리고 꾸물꾸물 방 안을 넓히고 있는 내가 있었다. 방 안에는 어둠도 빛도 없어서 모두가 배아 같았다. 일종의 매달린 동작 같았다.
언젠가 나 작가가 되기를 꿈꾼 적 있었다. 그 미래 본 적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선명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어서, 수년 간 나를 살아 있도록 만들었다. 그 꿈이 사라진다면 나는 허공에 흩뿌려진 수백 장의 종이처럼 나풀나풀 쏟아질 것 분명했다.
그런 믿음이.
실패하기도 한다.
자취 없이.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나는 내가 왜 작가의 꿈을 포기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의외는 군더더기 없는 투수. 나를 쥐고 어딘가로 세차게 던져버리는 그이의 손.
그리하여 나는 가끔 도착하는 거지. 불식간 네가 나에게 잊히지 않을 사람이 되어버렸듯이.
믿음이 되었듯이.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거듭 너의 이야기를, 새와 인간과 방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습관적으로 나의 몸을 조금 뜯어내었다. 뜯긴 자리에서 이내 검은 물이 샘솟았는데 들여다보니 그것은 무수히 많은 의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글거리는 활자들.
그들은 내게 "어디로 갑니까" 묻지도 않고 재빠르게 어디론가 흘러 가버렸으며 나는 멍하니 선 채로 그 모습 지켜보았다. 그때 나는 휩쓸리고 있었다. 의외의 캄캄한 강 속에 잠겨 새 인간 조화 방 너…… 그 어떤 것의 왕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