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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지 Sep 19. 2024

어긋접목에 관한 보고

4.


  어긋접목에 관한 보고




  종성(鐘聲)이 들렸다.  

  준키와 나는 편의점에 있었다. 시식대에 나란히 앉아서, 우리의 주변부에 쌓인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더 빨리 때울지 궁리하였다. 그것이 유일한 숙제인 듯 열중하였다.

  양을 세자.

  영양 성분표를 읽자.  

  저쪽에 앉은 남자가 살인자일지 내기하자.

  그의 머리를 부수자.

  "참신한 죽음들에 관해 이야기하자. 다윈 상을 받을 만큼의." 그것은 나의 의견이었고, 준키는 끄덕였다. 나는 권태로 검어진 그의 눈에 일순간 빛이 드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그리하였다. 번갈아 가며 수백 개의 참신한 죽음들을 늘어놓는 동안 시계의 시침이 돌아가고. 우리의 웃음이 작동되고. 사용된 시간들이 우리를 휘돌고. 우리는 폭발할 것처럼 타들어 가고.  

  종성이 들렸다. 

  몇 번째 죽음을 말하고 있을 때였을까, 준키의 눈빛이 돌연 무광해졌다. 그는 더는 시간을 때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더는 그로부터 무엇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학원이나 도장에 가서 과제를 수행하며, 적당량의 땀과 눈물을 흘리곤 한 뼘 한 뼘 키를 키워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모든 게 당연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그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준키를 붙잡았고, 이번에야말로 정말정말 참신한 죽음들을 이야기해 줄게 호소했다. 관심을 보이며 내 곁으로 돌아온 그의 앞에서 토해 내기 시작했다. 정말정말 참신한 죽음들을. 

  이전까지 내가 들려준 죽음은 사실 모두 나의 얘기였는데. 

  이야기는 점차 나의 사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모르는 세계로 치달았다. 나는 점차 두려움에 잠겨 들었는데, 나의 입은 작동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부드럽고 축축하게 나를 소외시켰다. 

  종성이 들렸다.

  또 한 번 빛나는 눈. 아름다운 준키.    

  그를 처음 만났던 것이 여기 편의점에서였다. 그때 그는 내 옆에서 뜨끈한 편의점 어묵을 퍼먹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 내가 말했고 "자주 와?" 덧붙였다. "시간을 때우려고" 준키가 말했다. "아무래도 편의점이니까" 답하는 그의 눈 일순간 반짝였다. 

  그때였지. 내 안의 사전이 다시 쓰인 것은.   

 「편의점」. 그것은 편의점의 정의를 압도하는 어떤 의미였고 준키가 모르는 나의 세계 그 전부이기도 했다. 

  참신한 죽음을 듣는 준키는. 나의 죽음과 누군가의 죽음과 진짜 죽음과 허구의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웃는 준키는. 

  나에게서 고개 돌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준키.  

  나로부터 서서히 소외되는 나.

  멈추지 않고.

  종성이 들렸다. 

  바깥의 것이다. 시식대 앞 통유리 너머로 거리와, 거리에 떠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저마다 약간의 땀과 눈물을 흘리며 바삭바삭 말라 가고 있는데 나는 그것이 왠지 너무 많이 필기되어 찢어져 가는 공책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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