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긋접목에 관한 보고
남편이 사냥을 떠났다. 북방으로 갔고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의 정부는 희고 굵은 손으로 창틀을 매만지며 말한다. "언젠가 이곳에도 겨울이 오겠지."
정부와 나는 앉아서 잔다. 서로의 몸에 기대고 겹쳐서. 해가 뜨는 순간부터 일몰 때까지 그러고 있는다. 그림자가 덧씌워진 우리의 모양 오래 전 숨 다한 나무 같다 ː
꽃봉오리 부분 접합된 고목(枯木).
"겨울이 온다면, 나는 온힘을 다해 겨울을 맞겠어." 정부는 말한다. "나는 일찍이 죽겠어." 내가 말한다.
나는 나의 정부가 나를, 일찍이 죽은 부분을 뜯어 버리지 않고 끌어안은 채로 긴긴 겨울을 나기를 바란다. 정부는 더 대꾸 않는다.
나는 차갑고 축축한 정부의 등을 쓸어내리며 말한다. "언젠가 이곳에도 남편이 오겠지."
남편은 많이 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피와 어둠과 고난들을.
"남편이 오면 나의 생은 끝날 거야." 나는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말 남편이 온다고 해도 삶은 계속되리라는 걸 안다. 고작 남편이 나의 삶을 무너뜨리지 못하리라는 걸 안다.
겨울이 아직 우리로부터 먼 곳에 있다는 걸 안다.
정부 또한 그럴까?
(나의 정부야, 우리는 단지 남편을 기다리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한다. 많이 한다. 종일 한다.)
너 또한 그럴까?
어둠에 젖은 정부의 등은 자꾸 얼룩진다. 얼룩은 점점 커진다. 얼어붙어 간다. "네 얼룩이 내게로 옮겨 왔으면 좋겠다." 나는 말하고, 아주 오래 전, 『남편』도, 『나』도 모르던 어느 소년을 떠올린다. 소년은 폐허에 가까운 역사에 앉아서, 좀처럼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소년은 이제껏 목적지를 가져 본 적 없다. 최초의 출발을 앞두고 있다. 자신의 목적지를 거듭 명명하며, 곱은 손 펴며, 당장이라도 열차가 자신에게로 쏟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내게 무슨 얼룩이 있어?" 정부는 말한다. 내가 나의 얼룩을 알 수 없듯, 정부는 정부의 얼룩을 알아차릴 수 없다. 나는 더 대꾸 않는다.
우리를 둘러싼 집은 갈비뼈처럼 고요하다. 그러나 나는 집이 집을 견디는 자세를, 그 악력을 알 것 같고, 기어코 폭삭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 대한 집의 기대를 알 것 같다.
우리 또한 그럴까?
나는 알 것 같다. 자꾸만 알 것 같다. 어둠 속에서 나는 내가 처음 당도했던, 이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세계를 떠올린다. 그 안 손을 쑥 집어넣자, 차가웠었다. 미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