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긋접목에 관한 보고
금요일 오후에, 완과 나는 선술집 <양지바른집>에서 만나 맥주를 마셨다. 완은 나와 포경선을 함께 탔던 젊은 수부였는데 마른 듯하면서도 적당히 탄탄한 팔다리와 선명한 눈빛이 매력적인 사내였다.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년이었다. 생생한 존재였다. 그와 좁다란 원탁에 마주앉아 한창 오크통 냄새 나는 과거사들을 풀어놓고 있을 때였다. 우리가 목격한 고래가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우리를 무력하게 했는지 떠들 때였다. 완이 선술집 구석 자리에 쌓인 피륙 더미를 보며 말했다. "영감님은 저것이 무엇으로 보이세요?" 나는 대꾸했다. "천무더기." 완은 갸웃거렸다. "나는 저것이 속이 빈 사육장으로 보이는데요." 나는 대꾸했다. "상상력이 지나치구나." 완은 갸웃거렸다. "글쎄요. 들여다보면. 이제는 저것이 한 무더기 핑키처럼 보여요." 나는 대꾸했다. "잘 쌓은 모래성 같겠구나." 완은 갸웃거렸다. "글쎄요. 무너지고 있어요. 지금은 동지(冬至)의 눈발이에요." 나는 대꾸했다.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냐?" 완은 갸웃거렸다. "글쎄요. 알 수 없어요.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역동적인데, 그를 찍은 사진처럼 바랬어요." 나는 대꾸했다. "낡은 기계로구나." 완은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사람 같은데요." 나는 대꾸했다. "나나 너의 얼굴을 가졌냐?" 완은 갸웃거렸다.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에요. 너무도 생경해서 누구의 얼굴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대꾸했다. "상징이냐?" 완은 갸웃거렸다. "현상이에요." 나는 대꾸했다. "정적이냐?" 완은 갸웃거렸다. "방백이에요." 나는 대꾸했다. "점점 알 수 없구나." 완은 갸웃거렸다. "점점 알 수 없어요." 나는 대꾸했다. "이름을 붙여 주는 건 어떠니. 네가 그를 붙들어 본다면" 완은 갸웃거렸다. "해 보겠어요. 허나 불안한 생각도 들어요. 내가 그를 이름 속에 가둔다고 믿었는데, 그것이 사실 그의 본명에 주석을 다는 일에 불과하면 어쩌죠?" 나는 대꾸했다. "그게 최선이라면." 완은 갸웃거렸다. "그게 최선이라면?" 나는 대꾸했다. "그리하여, 이름은?" 완은 갸웃거렸다. "만티코어."
완과 나는 동시에 만티코어를 보았다. 피륙은 고요했다. 재주 없는 방직공의 손에 맡겨졌던 듯 성기고 볼품없어 보였다.
나는 갸웃거렸다. "만티코어." 완은 대꾸하지 않았다.
계산을 마친 뒤, 완과 나는 적당량의 취기를 느끼며 <양지바른집> 앞으로 길게 뻗은 골목길을 걸었다. 나는 오래 전 우리가 놓쳐 버린 고래에 대하여 한참을 떠들었다. "그 고래의 외관이 더는 생각나지 않아. 고래의 등짝에 남겨진 상처. 우리의 작살이 새겼던 그 작고 붉은 십자가만 떠올라." 완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가 나란히 붙어, 아주 오랜 시간 걸었다고 느껴질 즈음, 창백한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을 따름이다. "영감님. 어째서 그때 우린 한 번이라도 그것에게 다가가서 이름을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요? 그럴 필요 없다고 여길 수 있었던 걸까요?"
그것이 만티코어에 관한 이야기냐고, 나는 물으려 했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서서, 내가 완으로부터 뒤처진 건지 지나칠 정도로 그를 앞질러 버린 건지 유추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도는 것이란, 만티코어. 만티코어. 만티코어 그뿐. 나는 오래도록 멈추어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나의 살갗은 무수히 많은 길을 만들며 말라 가고 있었다. 어느 갈래를 고르더라도 나에게로 도착하는 길. 파묻히게 되는 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