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꺼내며”

part 1. 아빠의 시간

by 이안



아빠의 투병은 나와 엄마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건강하던 아빠가 조금씩 몸이 무너져 내리는 걸

지켜보는 건, 단순히 아픔을 목격하는 일이 아니었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우리의 기억,

그리고 우리가 믿어왔던 모든 질서가

천천히 뒤바뀌어 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했다.


그건 엄마의 세상 속 단단한 기둥이 조금씩

부서져가는 것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었다.


평생을 의지하고 살아왔던 사람이

더 이상 기대어 설 수 없는 순간,

엄마는 눈물을 삼키고 다시 아빠를 부축했다.

나는 그 곁에서, 엄마의 등을 보며 배웠다.

사랑이란 결국 포기하지 않는 끈기라는 것을.


아빠는 긴 시간 동안 거동이 불편했다.

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옮겨

다니는 일이 당연해졌다.


그 누군가는 늘 엄마였다.

작은 체구에도 아빠를 감당해 내던 엄마의 뒷모습은,

그때의 나에겐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처럼 보였다.


그런 동시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랑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던지는 것이구나.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나는 늘 엄마가 대단했다.


아빠는 말수가 적어졌고, 표정마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엔 말보다 더 큰 감정들이 숨어 있었다.


때로는 미안함이었을 테고,

때로는 억울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병든 몸을 가족에게 맡겨야 하는 자존심의 무너짐,

사랑하는 이들을 더 이상 지켜주지 못하는 무력감.


나는 그 눈동자 속에서 끝없이 흔들리던

아빠의 마음을 읽었다.


아빠 곁에서 나는 늘 두려움과 사랑 사이를 오갔다.


언젠가는 이 시간이 끝날 거라는 두려움,

그리고 끝까지 아빠 곁에 남고 싶다는 간절한 사랑.


그 두 감정이 뒤엉켜서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그 지침마저도 아빠의 손을 잡으면

조금씩 풀려나곤 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아빠가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단순히 고통의

시간만은 아니었다는 걸.


그 속에는 우리가 나눈 가장 깊은 사랑이 있었다.

침묵 속에서 나눈 눈빛, 말없이 건네던 손길,

그리고 꺼내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결국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 곁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아빠의 시간은 결국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사랑은 오래 버티는 것이며,

끝까지 곁에 있어주는 거라고.”


돌아보면, 아빠의 투병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진실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 내가 흘린 눈물, 삼킨 말들, 두려움과

사랑이 뒤엉킨 나날들은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다.


아빠는 떠났지만,

아빠의 시간은 여전히 내 삶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 엄마를

지켜내는 내게 또 다른 힘이 되어주고 있다.


아빠와 함께했던 투병의 날들은 끝났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배운 사랑과 인내,

그리고 삶의 무게는 지금도 나를 지탱해 준다.


나는 여전히 아빠의 딸이고,

아빠의 시간은 내 안에서 계속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