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고, 애써 담담하게.
“가만히, 천천히, 작별을 준비하던 시간”.
병은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하나씩 아버지의 삶을 덜어갔다.
걷는 일, 말하는 일, 웃는 일,
그리고.. 살아간다는 감각까지.
우린 그 변화를 매일 마주했다.
병실의 창밖으로 해가 들고,
해가 지고, 시간은 흘렀지만
아버지의 시간은 점점 느려졌다.
아니, 멈춰가고 있었다.
말은 줄고, 눈빛은 깊어지고,
어느새 병실은 작지만 큰 우주가 되었다.
침묵과 기계 소음 사이로
우린 마음을 읽고, 눈빛으로 대화했다.
가끔은 손을 잡고,
가끔은 노래를 들려드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 순간들을 우리는 무너지는
마음 안에서 조용히 쌓아갔다.
이별이 가까워진다는 건
언제나 막막하고 무섭다.
하지만 동시에,
사랑이 가장 선명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젠 준비하려 한다.
울지 않고,
애써 담담하게.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사랑으로.
# 기억
그날, 병원 복도는 유난히도 조용했다.
중환자실 앞에 선 내 발끝에서부터
낯설고 무거운 공기가 올라왔다.
나는 그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지 못했다.
마치, 들이마시는 숨 하나에도
아버지를 놓칠까 봐.
아버지가 중환자실로 옮겨지기 직전,
의사는 내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었다.
“보호자분, 아버지 상태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
그 말 한마디는 벼랑 끝에서 들려오는 경고처럼,
내 온몸을 덜컥 무너지게 만들었다.
아빠는 내게 말했었다.
“연명치료.. 하지 마라.”
그 말 한마디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생을,
내가 포기해야 한다는 말 같았다.
도대체 어느 자식이 부모의 연명을 거부할 수 있을까.
이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절망에 가까운 고통이었다.
그렇게 아빠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차가운 기계음이 가득한 공간,
면회는 하루 두 번 정해진 시간에만 허락되었고,
그 두 번의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무거운 시간이 되었다.
아빠를 보기 위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곳엔 항상 힘겹게 숨을 쉬는 아빠가 있었다.
의사는 내게 또다시 면담을 요청했다.
아버지는 파킨슨병 말기입니다.
파킨슨병은 파킨슨으로 돌아가시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에 파킨슨 환자의 마지막은 흡인성 폐렴입니다.
지금 아버진 그 말미에 도달하신 겁니다.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믿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그 끝에 서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울다가도,
또 멍하니 하루를 흘려보내고,
중환자실 문이 열릴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 슬픔
어느 날은 면회를 갈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다음날 늘 아버지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마치 오지 못한 가족을 이빠가 부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빠는 매일을 고비와 위기로 넘겼다.
하루하루 겨우 콧줄로 우유를 먹던 아빠.
또 고비가 찾아왔다.
장내출혈이 발생했다.
콧줄엔 피가 역류해 흘러나왔고
겨우 먹던 우유조차 더 이상에 먹기 어려워졌다.
아빠에 눈빛에는 점점 초점이 사라졌고,
손을 잡으면 그 손끝이 차가웠다.
몸은 점점 앙상해졌고,
피부 곳곳은 온통 주삿바늘 자국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결국 아빠는 기도절개가
필요한 상황이 왔고,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나는 아빠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아빠 자꾸 아프게 해서 미안해, 근대 아빠가
숨을 쉬어야 해서.. 기도를 조금 찢어야 한데.. "
라고 울며 말했다.
그때 의식이 거의 없던 아빠는 고개를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저으셨다.
아빠에 심하게 부은 작은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빠를 품에 안고,
“미안해. 아빠… 정말 미안해…”
미친 듯 울음이 터져 나왔다.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는 아빠에 연명을 거부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빠는 임종 호흡을 시작했다.
임종 호흡을 하던 3일째
새벽에 간호사에 전화가 왔다.
그렇게 우린 위급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눈물이 쏟아져
운전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였다.
병원에 도착해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아빠의 호흡이 아주 조금씩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 오후
아빠는 조용히,
아주 천천히 숨을 거두셨다.
아빠는 우리 삼 남매가 다 모일 때까지
끝나가는 숨을 잡고 있었다.
그 시간까지, 그 순간까지 버텨줬다.
엄마는 아빠에게 사랑했다,
고생했다는 마지막 인사를
영상통화로 해야 했고,
우리 삼 남매는 각각의 목소리로
아빠를 불러보았다.
그때서야,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고
하늘로 먼 여행을 떠나셨다.
2024년 11월 25일 오후 5시 45분.
"권영호 씨 사망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16일 중환자실
투병은 끝을 맺었다.
아빠는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다.
그 강한 사람이,
마지막에 가장 연약한 눈빛으로,
가장 여린 숨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사랑해, 아빠.
미안해, 아빠.
그곳에선,
아프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