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조용함이 낯설었다”.

part 5.

by 이안


“그 조용함이 낯설었다”.


그리고 그 낯섦이,

무언가 시작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조용함이 낯설었다


Chapter 1. 그날, 열이 시작됐다.


Chapter 2. 고비의 문 앞에서


Chapter 3. 열은 경고였다.


Chapter 4. 보호자를 찾는 의사







Chapter 1.


그날, 열이 시작됐다


조용한 아침이었다.

평소보다 말수가 줄고,

아빠는 눈앞에 음식을 두고도

한참을 머뭇거리셨다.


엄마는 그런 아빠가 더 야위어 갈까..

한 숟갈, 또 한 숟갈..

더 정성껏 밥을 떠서 아빠 입에 넣으셨다.


하지만 삼키는 일은 이제 예전 같지 않았다.

작은 밥알 하나에도 아빠는 기침을 하셨고,

목을 몇 번이고 두드리며 힘겹게 삼키셨다.


그리고 식사 후,

아빠의 이마가 미세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 없이 몸을 웅크린 채,

아빠는 열에 지친 듯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몸살처럼 앓는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쩔 줄 몰랐다.


아빠는 늘 진통제를 찾았고,

우린 그 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몇 알의 진통제로 겨우 잠드신 아빠를 보며,


우린 그날 처음으로

‘이제 정말 병이 깊어졌구나’

하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날,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한 열은

우리 마음도 조용히 태워버렸다.




Chapter 2.


고비의 문 앞에서


그러다 그날이었다.

아빠는 더 이상 밥 한 숟갈도 힘겨워하셨다.

삼킴 장애는 단지 식사의 어려움만이 아니었다.

그건 남아있던 아빠의 기력마저

조금씩, 조용히 앗아가는 일이었으니깐.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기침이 따라왔고,

먹은 후엔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날은 달랐다.

아빠에 몸이 떨리고

손끝까지 마비가 왔었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

헛기침을 반복하던 아빠는

작은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에 엄마는 울며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 다급한 울음은 평소 강하던 엄마의 모습과

너무 달라 무서웠다.


나는 핸들을 꺾어 출근길을

바로 병원으로 돌렸고,

급히 119를 불렀다.


그렇게 응급차는 아빠와 엄마를

‘응급실’이라는 낯선 공간으로 옮겼다.


그날이,

아빠의 고비의 시작이었다.


아빠에 몸보다 먼저 무너진 건

아마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들림 속에서

‘이제 정말 준비해야 하는 걸까’

작게, 조용히 묻고 있었다.



Chapter 3.


열은 경고였다


열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아빠의 몸을 태우는 듯한 뜨거움은

우리 모두의 마음까지 데워버렸다.


그렇게, 응급실의 불빛 아래에서

아빠의 긴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빠에 병명은 급성 폐렴과 급성 신우신염.

익숙지 않은 병명은 입 안에서

맴돌다 쓴 물처럼 넘어갔다.


아빠에 몸은 여전히 뜨겁고,

밤이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아빠에 열은 밤이 되면 높아졌다.


고요한 병실 안은

아빠에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아빠는 밤새 숨은 헐떡였고

엄마는 밤새 얼음주머니를

바꾸며 작은 한숨들을 삼켰다.


진통제, 항생제, 해열제..

약들은 줄지어 투입되었지만

열은 요지부동이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애썼지만

열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한 채

계속 시간만 흘렀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조금씩 같이 타들어갔다.


그렇게 결국 아빠는

입원 15일 만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곳은 더 조용하고 더 냉정했다.

삐-기계음들만이 아빠의 상태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눕혀진 아빠를 보며

우리는 또다시 묵묵히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소리 내 울지 않는 대신,

손을 꼭 쥐고, 서로의 눈빛으로 위로를 건넸다.


그날 이후,

열은 병의 증상이 아닌

하나의 ‘경고’처럼 내 기억에 새겨졌다.






Chapter 4.


보호자를 찾는 의사


“아버지, 중환자실로 옮기셔야 합니다.”


이 의사에 말을 아빠에게 꺼내는 게

내겐 너무 힘들었다.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했지만,

내 말에 아빠는 대답 대신 그 큰 눈에

눈물을 머금었다.


“너무 오래 아프게… 하지 마라.”


아빠의 말은 짧았고,

그 짧은 말이 내 가슴을

무너뜨렸다.


그날 나는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혼자 삼켜내며 밤을 새워 울었다.


자식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끝까지

붙잡고 싶었고 그 어떤 선택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빠, 중환자실에서 치료 잘 받고,

또 나아서 일반실로 오면 되지! 이겨낼 수 있다.”


아빠에겐 담담하게 말했지만,

사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중환자실이라는 단어가,

그 공간이 담고 있는 모든 암시가.


점점 작아지는 아빠의 체구와

곁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지친 어깨가 너무 마음 아팠다.


그날,

나는 속으로 수없이 다짐했다.


아빠가,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를. 덜 외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