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함께 걷는다는 건, 어쩌면”
어쩌면 걷는다는 건,
그저 발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옮기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함께 걷는다는 건, 어쩌면
Chapter 1. 아버지의 조용한 새벽
Chapter 2. 혼자 울던 오후
Chapter 3. 집을 고친 날
Chapter 4. 전담 미용사
Chapter 1.
아버지의 조용한 새벽
아버지의 몸은 점점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배뇨장애가 찾아왔다.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소변을 참으려 애쓰셨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부끄러워하셨다.
침대는 자동 전동 침대였지만 머릿속에선
움직여야지, 하는 생각과 몸의 현실은 달랐다.
그 괴리감은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에게
더 깊은 수치심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어느 새벽이었다.
“어… 유진이엄마 …”
아버지의 낮고 조심스러운 부름에
잠결에도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엄마보다 먼저,
아버지가 누운 방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하셨다.
“엄마 좀 불러줘”
하며 시선을 피하셨다.
방 안에는 소변이 흥건했다.
아버지의 침대 옆 바닥까지 조심스럽게
숨겨왔던 실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나는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부지.
“내가 닦을게. 왜 이게 뭐 어때.”
그 말에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고개를 살짝 떨구고 계셨다.
나는 조용히 아버지의 바닥과 아빠에 다리에
묻은 소변을 닦아냈다.
아빠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도록,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 순간,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부끄러움, 미안함, 고마움,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버지의 손을 더 오래 잡아드리자.
아버지의 마음을 더 많이 안아드리자.
그 어떤 모습이라도,
딸인 나는 당신 곁에 있을 거라고.
그 새벽,
딸의 손끝에서 아버지의 존엄은 지켜졌다.
그리고 말없이 오간 그 마음은
지금도 내 안에서 오래도록 머물러 있다.
Chapter 2.
혼자 울던 오후
“유지아빠 금방 갔다 올게 “.
“조금만, 움직이지 마!. 기다려야 해 “.
“넘어지면 안 돼.”
어머니는 늘 하시던 말을 남기고
장바구니를 들고 문을 나섰다.
짧은 외출.
반찬 몇 가지를 사러 간 사이,
아버지는 조용히 일어섰다.
익숙한 집이었고,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일쯤은
그동안도 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몸은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천천히,
한 걸음, 또 한 걸음.
바닥에 발을 디디는 게 아니라
바람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리고,
그 순간. 균형이 무너졌고
아버지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거실 바닥 위에 차가운 나무 마루에
꼼짝없이 누워 계셨다.
티비 장식장의 모서리가 등을 세게 때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픔보다
자신의 처지가 더 아팠다.
움직일 수 없고,
일어설 수 없는 몸.
누가 도와주기 전까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누운 채로 울고 계셨다.
소리 없는 눈물이 한참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되었구나…”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그 표정, 그 눈빛은 너무나 명확했다.
얼마 후,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여보…!”
아버지를 발견한 순간,
어머니의 장바구니가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엔 핏자국이 번져 있었고,
아버지는 아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아프다”는 말을
되뇌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울면서
부축해 병원으로 향했다.
티비 장식장에 등을 부딪쳐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진단.
어머니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숨 쉬는 것조차
죄송해하는 사람처럼.
아버지는 말없이 앉아 계셨고,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 더 조심하고,
조금 더 가까이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 사이
혼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아픈 것도 몰랐을 만큼,
스스로에 대한 상심이 더 컸다는 그 시간.
사실, 아버지는 그날,
다친 몸보다 꺾여버린 마음이
더 오래 아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후,
부서진 뼈가 붙을 때까지
병원으로 함께 오가며 정말 열심히 치료했다.
아버지에겐 고통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서로를
더 꼭 붙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Chapter 3.
집을 고친 날
아버지가 집 안에서
자꾸 넘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이젠 집도 아버지에겐 안전하지 않구나.”
그날부터 난 집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모서리 하나, 문턱 하나, 작은 틈마저도
아버진 넘기 힘든 장애물이었다.
나는 철물점에 가서 안전 손잡이,
미끄럼 방지 패드, 폼 쿠션, 나사,
고정 나사받이까지 쓸 수 있는 건
다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 안 곳곳에 내 손으로 직접
하나씩 달기 시작했다.
욕실엔 벽에 기댈 수 있는 손잡이를 설치하고,
변기도 손잡이 달린 안전바를 달고,
거실 모서리마다 폼을 둘렀다.
아버지가 자주 가는 자리 옆엔
작은 기둥도 박아 넣었다.
망치질하고, 드릴 돌리고, 땀을 흘리면서
나는 그걸 ‘작업’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그냥,
내 사랑을 박아 넣는 일이었다.
작업을 마친 어느 날,
엄마가 날 보며 웃었다.
“우리 이안이 아빠 닮아 맥가이버 다 됐네~”
그리고 아빠는,
자기 얼굴처럼 생긴 나를 보며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우리 딸, 장하네.”
그 말, 작지만 내겐 참 따뜻했다.
그 순간,
우리는 함께 웃었고
작은 집은 사랑으로 가득 찼다.
아버진 그날도 불편했지만
내 손으로 고친 집에 기대어 앉으셨고,
엄마는 그 옆에서 음료 한 잔을 따랐다.
지금도 여전히 집 안엔
작은 손잡이들이 참 많이 있다.
그 손잡이마다,
내 마음이 조용히 달려 있었다.
Chapter 4.
전담 미용사
아빠가 조금은
거동이 가능하던 시절,
휠체어에 앉혀 미용실에
모시고 가곤 했다.
그런데 살이 부쩍 빠지고,
엉덩이 살마저 얇아지면서
휠체어에 오래 앉아있는 것도
조금씩 힘들어하셨다.
외출 한 번이 작은 모험이었고.
넘어질까 조심하고,
다칠까 긴장하고 나도, 아빠도,
늘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다녀와야 했었다.
그렇게 머리가 점점
자라며 눈을 덮고, 귀를 덮고,
누워 있는 아빠가 더워서 짜증 내기
시작할 무렵, 나는 작은 바리깡을 하나 샀다.
혼자 검색하고 찾아보면서,
‘까까머리’ 정도는 해보자고.
처음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와 함께 미용실에 들렀다가 원장님이
웃으며 내게 머리 자르는 법을 알려주시더라.
“이 정도는 금방 배워요, 따님. 그리 어렵지 않아요.”
그날 이후,
나는 아빠의 전담 미용사가 되었다.
작은 바리깡 하나 들고,
아빠 머리를 쓱쓱 밀어드릴 때마다
아빠는 거울을 보며 씨익 웃었다.
“잘하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머리카락이 바닥에 수북이 쌓이고
청소기 돌릴 때면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그 짧은 시간이,
아빠와 나만의 살가운 순간이었으니까.
요즘도 가끔 이상하게 미용실을 지나가면,
아빠의 까끌한 머리를 쓱쓱 밀던
그때가 기억이 난다.
그 시간이 참 고마웠었는데.
가끔은 그 장면들이,
문득 떠오르고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