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보내는 마음으로

끝과 시작

by 이안


장례식을 치르는

그 며칠 동안은 정말 꿈같았다.


그 꿈은 좋은 꿈도 아니고,

완전히 악몽도 아닌 그저 아무 감정도 없이

공기만 멍하니 마시고 있는 그런 꿈.


아빠가 없는 세상이 실감 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걸린 아빠 사진.


그 웃고 있는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는데도


‘이렇게 떠난 건가...?’


생각하며 부정했다.


그냥 멀리 잠깐 여행을 간 것 같고,

잠시 병원에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무의식은 계속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발인을 하던 날.


그날이 돼서야

‘진짜로 이제... 못 본다’는 게

가슴에 확 박혔다.


그제야 눈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렇게까지 오열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그냥… 무너져 내렸다.


염을 하는 아빠 곁에 서 있는데

정말 잘 차려입은 아빠는.

예쁘고, 반짝이는 옷을 입은 채

꽃 가득한 관 안에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늘 화려하고 멋진 걸 좋아하던 아빠,

그래서인지 그 모습마저 멋있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아빠 한쪽 다리.

파킨슨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굳어버렸는데

염을 하는데도 무릎이 끝끝내 굽혀지지 않았다.


그걸 보며 또 한 번 가슴이 아팠다.


아빠에 그 굳어버린 다리 한쪽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담겨 있었는지,

그 아픔과 불편함을 얼마나 꾹 참고 견뎠는지..






# 병원에서의 아빠


우리가 본 병원에서 마지막 아빠 모습이

너무 안 좋아서일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엄마는 매번 아빠가 욕창이 생기기라도 할까 봐

수시로 아빠의 자세 바꿔주고 매일을 선풍기바람으로

엉덩이 말려주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마지막 아빠에 엉덩이는

욕창으로 다 까맣게 썩어 있었다.


몸엔 바늘 자국이 가득했고,

부종이 너무 심해서 더 이상에 바늘 꽂을 자리는

없었고 결국 목 옆에 바늘을 꽂은 체 승압제로

간간히 붙들고 있던 숨.


그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

우리 삼 남매는 아무도 엄마에게

아빠에 그런 마지막 모습을 말하지 못했다.

엄마가 그걸 알면 얼마나 속상할지

너무도 잘 알아서..

그냥 모두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저 아빠는 편한 얼굴로,

웃는 얼굴로 잘 떠나갔다고만 했지.


그렇게 염이 끝나고 아빠는 관 안에 눕고,

우린 마지막 길을 함께 걸었다.


마지막 길에도 엄마는 병원에 누워서

자기 몸도 추스르지 못한 채 스스로를 지켜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상황이 제일 슬펐고,

제일 아팠기에 아빠를 태운 운구차는 엄마에

병원 쪽을 향해 천천히 출발했다.


화장터를 가기 전 엄마가 입원하고 있던

병원 한 바퀴를 돌기 위해서였다.


마치 마지막으로 서로를 느끼게라도

해주고 싶었기에 또 그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길 위에서야

아 정말, 진짜 가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서글펐는지 모른다.


화장터에서 아빠는 뜨거운 불 속에

타 고운 재로 남았다.


몇 줌의 재.

그게 다였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몇 줌의 재로 남는 거라는 게

너무 허망한 듯 느껴졌다.


무섭게까지도.

삶이 이렇게 가볍게 끝나는 건가.


그래도 그 재 속에는

우리 사랑받았던 기억들,

아빠의 웃음소리,

우리를 보살펴 주던 그 손길,

또 늦은 밤 기침소리라도 들릴까 봐

몰래 방구석에서 이불 둘둘 말아

울던 그 마음까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야 덜 슬프니까.

그게 아니면 너무 허탈하니까.


그렇게 아빠 장례가 끝났다.


이제 울어야겠다,

마음 놓고 슬퍼해야겠다.


하지만

슬픔은 끝날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엄마가.. 아프다.


아빠를 보내고 엄마마저

잃을까 봐 두렵다.


난 이제 겨우

사랑하는 아빠를 보냈는데,


또다시 누군가

사랑하는 엄마를 붙잡아야만 한다.






# 엄마의 시작은 아픔이었다


아빠가 중환자실로 병실을 옮기던 날,

이젠 보호자가 곁에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엄마는 그제야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돌아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잠깐 아픈 거라 여겼다.


속이 좀 안 좋은가 보다,

위염인가 보다,

며칠 약 먹고 쉬면 괜찮아지겠지.

늘 그래왔으니까.

엄마는 늘 그런 식으로

자신의 아픔을 뒤로 미뤄왔다.


늘 누굴 바쳐주기만 했던 사람.

아빠의 하루를, 우리 셋의 삶을

받쳐주는 대지 같은 사람 엄마.


그런 엄마는 아빠가 중환자실로 들어가며

비로소 조금씩 부서졌다.


가만히 꾹꾹 눌러왔던 고통이

이제야 올라와 터져 버렸다.


그렇게 엄마는 많이 아팠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 작은 통증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 될 줄은.


평생을 사랑으로 지탱해 온 사람이

그제야 제 병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빠가 떠난 병원이란 곳에서

이젠 엄마 자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병,

엄마의 고요한 붕괴,


그리고 우리가 함께 버텨야 할

또 다른 긴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