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엄마 몸에 쌓여 있던 침묵”
보호자이기에 감췄던 고통
아버지 간병 중 소홀했던 자신의 건강
엄마 몸에 쌓여 있던 침묵
Chapter 1. 더부룩한 마음, 더부룩한 몸
Chapter 2. 말하지 못한 밤
Chapter 3. 엄마에 떨림
Chapter 4. 끝없이 버티는 밤
Chapter 1.
더부룩한 마음, 더부룩한 몸
조용히 시작된 엄마의 이상 증상.
하지만 엄마는 늘 그랬듯 자기 몸보다는
아빠의 몸을 먼저 살폈다.
가끔 식사를 하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는 일이 있었고,
소화가 안 된다며 밤에 찬물을
마시는 일도 잦아졌다.
“엄마 괜찮아?”
“그냥… 좀 더부룩하네.”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지만,
그 웃음이 조금은 지쳐 보였던 날이 많았다.
그날도 그랬다.
아빠가 중환자실로 옮겨가고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엄마는 식사 뒤 배를 움켜잡고
소리 없이 앓았다.
“그냥 스트레스야,
아빠 걱정하느라 그런 거야.”
엄마는 또 넘기려 했지만,
이번엔 정말 참지 않게 하고 싶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그냥 넘기면 안 돼. 엄마도 이제,
누군가의 보호자 말고, 한 사람으로 봐야 해.”
결국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실을 거쳐 진료실에 들어갔다.
담관에 염증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또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담관암이 조금은 의심이 되기도 합니다.”
그 말에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암이라고요?… 저요…?”
작은 목소리는 곧 울음으로 번졌고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주저앉았다.
나는 엄마 손을 꼭 잡았다.
“검사 더 해봐야 돼.
염증일 수도 있다잖아. 괜찮을 거야.”
사실 나도 무서웠다.
하지만, 엄마 앞에서는 무서워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날 처음,
자신이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무너졌다.
Chapter 2.
말하지 못한 밤
그렇게 여러 검사 후, 진료를 앞둔 전날 밤.
엄마는 많이 아팠다.
복통이 너무 심해서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했다.
끙끙 앓았고, 식은땀을 흘리며
밤을 버텼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아픈 걸,
내게 말하지 않았다.
“너 야간 근무했잖아. 자고 있었잖아…”
엄마는, 내가 힘들까 봐,
또 잠든 내가 깰까 봐 내게 말하지 않았다.
그 말에 마음이 미어졌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엄마는 아픈 몸을
안고 소리 없이 견디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 오자마자,
엄마와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수치는 괜찮아요. 담관이 조금 부어 있지만,
큰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엄마는 의사에게 몇 번을 말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정말 아팠다고, 너무너무 아프다고
그런 엄마에 말에도 의사는 의아한 눈빛만 지었다.
그러다 결국 의사는
“그럼 입원해서 추가 검사해 보죠.”
라고 말하며 오늘이 아닌
내일 입원하자는 말을 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병원을 나섰다.
그 순간,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나 오늘 못 간다. 진짜… 죽을 것 같다.”
“.. 응.. 응급실… 가자.”
그 말에 걸음을 멈추어 섰지만
나도 조금은 의아했다.
의사가 괜찮다는데..
왜 응급실까지 가려는 거지?
마음 한구석엔 엄마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투덜거리며 엄마와 응급실로 향했다.
엄마는 식은땀을 흘리며 증상을 말했고,
검사가 다시 시작됐다.
엄마에 식은땀을 보며 나도 점점 불안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외래 진료
했던 그 의사가 헐레벌떡, 응급실로 뛰어 내려왔다.
“이손숙 씨! 이손숙 씨 어디 계세요?”
나는 놀라서 얼어붙은 채 의사를 바라봤다.
그 순간, 의사가 내게 말했다.
“담관 폐색입니다. 황달 수치가 1300이에요.
지금 급하게 수술 들어가야 해요. 긴급입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귀가 멍해졌다.
담관폐색? 그게 뭐지?
그 상황을 혼자 어쩔 줄 몰라하며
내 눈엔 눈물이 고였다.
엄마는 급히 수술실로 옮겨졌고
결국 진료 때 본 피검사와 CT결과.
이상 없다던 의사의 진단은 오진이였다.
엄마의 담관은 거의 막혔고,
담도 폐색으로 인한 얼굴은 누렇게
타들어가는 듯했다.
엄마의 정확한 진단은,
응급 상황에서야 비로소 드러났다.
그렇게 엄마는 수술실로 향했다.
배액관을 삽입하고,
담관 스탠트를 넣는 시술을
긴급으로 진행해야 했다.
Chapter 3.
엄마의 떨림
엄마는 수술실로 들어간 지 몇 시간 만에
겨우 수술을 마치고 나왔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았고
가슴은 점점 조여왔다.
그렇게 겨우 나온 엄마는…
엄마 모습이 아닌 듯했다.
온몸이 퉁퉁 부어 있었고,
입고 있던 옷에는 링거에서 새어 나온
피가 여기저기 말라붙어 있었다.
눈가도 부어 있었고,
얼굴엔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눈물부터 쏟아졌다.
그냥… 너무 속상해서.
너무너무 미안해서.
수술실에서 나온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이렇게 초긴급으로 시술과 수술이
한 번에 다 들어간 건 정말 드문 일이에요.
상황이 너무 급박했어요. 응급실 안 오셨으면…
어쩔 뻔했는지 몰라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나는 엄마의 말을 흘려들었다.
아니,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냥… 괜찮을 거라고,
늘 그래왔으니까…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구나.
내가 조금만 더 무심했으면 조금만
더 고집을 부렸으면 정말...
엄마를, 잃을 뻔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눈을 감고,
속으로 백 번쯤 말했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렇게 병실로 돌아온 엄마는
침대에 누운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춥다… 너무 추워… 추워…”
사시나무처럼, 작은 새처럼,
몸을 웅크리고 끝없이 떨었다.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덮어주고
가방에 있던 담요도 꺼내 덮었다.
온기를 내 몸에서 떼어 엄마에게
하나하나 건넸다.
그런데도 엄마는 멈추지 않고 계속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내 마음까지
시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옆 침대의 보호자분이 다가와
페트병 하나를 내게 건넸다.
“여기 뜨거운 물 담았어요.
이불 안에 넣어드리면 조금 나아지실 거예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분은 병을 몇 개 더 구해서
뜨거운 물을 넣으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급하게 병을 모으고 뜨거운 물을 받아
엄마의 발밑, 배밑, 가슴 아래, 이불 사이사이에
온기를 꾹꾹 눌러 담듯 넣어주었다.
그제야 엄마가 조금은 덜 떨었다.
그 조그만 온기들 사이에서 엄마가
아주 작게, 아주 천천히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Chapter 4.
끝없이 버티는 밤
수술이 끝나고,
엄마는 병실로 옮겨졌다.
마취 기운이 남아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지만 의사는 말했다.
“몇 시간은 잠들면 안 됩니다.
계속 깨워주세요.”
나는 엄마 곁에 붙어 앉아 애써 엄마를 깨웠다.
“엄마… 엄마, 일어나 봐.
엄마, 지금 자면 안 돼…”
하지만 엄마는 내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았고,
눈도 뜨지 않았다.
그저 몸이 아주 조금,
기계에 반응하듯 살짝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고, 너무 무서웠다.
엄마가 나를 향해 눈을 겨우 뜨며 말했다.
“누구고.. 언제 왔데..?”
그 말에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엄마 딸.. 내가 계속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엄마에게 닿지 않은 듯
엄마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그저 지금 이 상황이 하루라도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도하며 기다렸다.
며칠이 흘렀다.
엄마는 금식을 반복했고, 계속된 수액과 시술로
조금씩 몸이 망가져갔다.
살이 쏙 빠진 팔뚝,
움츠러든 어깨,
눈가에 늘어만 가는 주름.
그렇게 강하던 엄마가 작아졌다.
또 조용해졌다.
그리고 자주 울었다.
치료가 길어질수록 엄마의 마음엔
희망보다 포기와 좌절이 더 자리를 잡았다.
그 길고 힘든 치료 가운데
찾아온 이별.
중환자실에서 버티고 견디던 아빠는
병실 침대에 누워 배를 짚고 밤마다 고통에
울고 있던 엄마를 두고 조용히...
먼 여행을 떠나버렸다.
이 사실을 어떻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
그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역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