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알았다”

part 4.

by 이안


“그래도 알았다”


그 말투 속에도, 그 짜증 뒤에도

사랑이 숨어 있었다는 걸.






Chapter 1. 무거운 이불


Chapter 2. 서로를 향한 복잡한 마음


Chapter 3. 함께하고 싶은데,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Chapter 4. 엄마의 시간 나의 시간






Chapter 1.


무거운 이불


겨울은 늘 추웠고,

병원 침대 옆 보조침대는 그 추위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입원할 때마다 짐이 많았다.

이불이 반, 마음이 반.


엄마는 항상 내 걱정이 먼저였다.

자기는 아파서 항암 하러 입원하는 건데도

내가 추울까 봐, 아플까 봐

더 두툼한 이불, 푹신한 베개를 챙겨 넣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 짜증을 냈다.


“엄마, 무겁다. 힘들다.”


알면서도, 나도 참았다가

그 말부터 툭 내뱉었다.


어느 날은 짐이 너무 많아

등산용 가방에 꾸역꾸역 이불을 넣고

거의 나만 한 가방을 짊어지고 병원으로 향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엄마가 툭 하고 말했다.


“무슨 캠핑 가냐? 등산 가냐?”


말은 모질었지만,

그 눈빛은 날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병원 입원길에서도

툭툭 부딪히며, 툴툴거리고,

그러다 결국 같이 웃고.


시간이 지나자,

우리도 입원이라는 일상에 요령이 생겼다.


침낭 하나로 무거운 이불을 대신했고,

짐들은 여행 케리어에 차곡히 담겼다.


그렇게 케리어 바퀴 소리는 어느새

우리 둘의 동행을 알리는 소리 같았다.


무거운 이불보다 무거웠던 건,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

툭툭 부딪히는 사랑이었다.







Chapter 2.


서로를 향한 복잡한 마음


항암을 시작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는 조금씩 야위어갔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살이 쭉쭉 빠졌고,

그 빠져가는 살만큼 엄마의 기운도

함께 빠져나갔다.


그런 엄마를 보는 나는,

안쓰러움과 속상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이쳤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던 작은 말에도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자주 짜증을 냈고,

사소한 일에도 울컥 눈물을 쏟곤 했다.


그걸 다 이해하려 애썼다.

아프면, 지치면,

당연히 예민해지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말과 행동은 마음처럼 잘 안 됐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감정은 또 따로 놀았다.


속상해 우는 엄마를 보며

“내가 더 단단해져야지, 안아줘야지”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정작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은

엄마에 가슴에 상처를 주기만 했었다.


“엄마 마음부터 안 잡히는데,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건데”

이런 말들이 엄마에 가슴을 긁었다.


그렇게 매번 나는 엄마 마음에

상처를 내고, 돌아서선 눈물 흘리며

미안해했다.


그게 부모 자식 사이인 것 같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마음이 깊어서


때론 더 솔직하게,

때론 더 아프게 부딪히는.


그래도 그 와중에 다행인 건

우리는 서로 오래 삐져 있지 못했다.


툭, 멋쩍게 말 건네며

“엄마, 물 마셨어?”

“그거 어제 먹던 반찬 남았는데 먹을래?”


그렇게 화해도 없이, 풀어짐도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다시 다가갔다.


이상하게도 그게 익숙했다.

그게 엄마와 딸 사이의 방식이었고,

우리가 서로를 견디는 방법이었지 않을까.


아마 그런 사랑이겠지.

아픈 사람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 사이의

묵묵한 언어 없는 이해.





Chapter 3.


함께하고 싶은데, 함께할 수 없다는 것


엄마의 항암은 어느덧 7회 차까지 이어졌다.

나는 가능하면 일을 빼가며 엄마 곁에 있으려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 마음이 도무지 편치 않았기에.


항암을 받는 엄마를 혼자 두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졌다.


하지만 보호자로 병원에서 며칠을 지내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잠을 자기도, 밥을 먹기도 어려운 병원에서

나조차도 점점 지쳐갔고,

일도 계속 빼는 게 현실적으로 버거워졌다.


그래서 함께하지 못하는 날엔 일하는 틈틈이,

점심시간 짬을 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라도 들으면 좀 나을까 싶어서.


그런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지금 토하고 있다”,

“기운이 없어서 말 못 하겠다”며

힘겹게 대답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숨소리가,

말끝에 스치는 쉰 기운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다.


일하면서도 마음은 온통 병실에 있었고,

하루 종일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그런 현실이 너무 야속했다.


왜 나는,

아픈 부모를 두고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왜 이토록 당연한 ‘곁에 있기’를

지키지 못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속상함 너머로 나는 문득문득 감사했다.


잠깐이라도 이렇게

엄마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내가 엄마를 간호할 수 있다는 것에.




Chapter 4.


엄마의 시간, 나의 시간


엄마를 간호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아빠를 간호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몸도 마음도 말라가는 이 시간을

엄마는 어떻게 버텼을까.


2년 동안, 거동도 못 하던 아빠를

엄마는 품에 안아 옮기고,

몸을 닦이고, 밥을 떠먹이고,

하루하루를 다 바쳐 돌봤었는데


그때의 엄마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더라.

나는 이제야 그걸 알아가는 중이다.


그런 엄마가 지금은 아픈 몸을

이끌고 누워 있는데,


정작 엄마 옆엔 아무도 늘 함께

있어주지 못한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외롭고 허전할까,

생각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다.


나는 아빠가 아플 때 설치해 둔 CCTV를

요즘은 엄마를 보기 위해 수없이 킨다.


작은 화면 속 엄마는 소파에 조용히 누워 있거나,

혼자 티비를 보거나, 밥을 천천히 먹고 있다.


그 모습이 참… 안쓰럽고 아프게 다가온다.


엄마도 혼자일 때 많이 울겠지.

티비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방 안이 조용해질 때,

그 침묵 속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렀을까.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난 쉬는 날이면

무조건 엄마를 보러 집으로 향했다.


그게 요즘 내 유일한 낙이기에.

엄마도 내가 오는 날만을 기다린다.


이 교대에 피곤할 법도 한데

나는 그냥 그저 바란다.


이렇게 쉬는 날마다,

가능하면 더 자주,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는 오늘도 그 소중한 하루를

꾹꾹 눌러 담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