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을 이해하지 못해요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모르고 있어.
이해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렴.
그럼 너는 행복해질 거야.
또 많은 이들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거야.
-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증거는 셀 수 없이 많아요. 우리가 연민할 수 있으며, 우리는 화해할 수 있으며,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 또한 셀 수 없이 많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증거들을 충분히 경험했죠.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증거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아요.
가끔 느끼곤 해요. 우리는 이 별에 함께 살고 있는게 아니라 서로의 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손을 마주 잡고 서로의 별을 힘껏 당기고 있죠.
‘이제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말처럼 명백한 거짓말이 또 있을까요.
이제 고백해야겠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을 이해하지 못해요. 나는 당신을 납득시킬 수 있지만 이해시킬 수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때면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하려한답니다. 예를 들자면, 노을 속으로 달려가는 나비라든가, 몇 해 전 발리에서 사두었던 티셔츠, 얼어붙은 북극해를 바라보면서 떠 있는 북극성이나 지난해 당신과 함께 맛보았던 다이칸야마의 살구 맛 몽블랑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러다보면 기분이 슬그머니 좋아진답니다. 주머니 속의 따뜻한 돌을 만지작거리는 기분이 되곤 한답니다.
그러니까, 우리말이에요, 서로를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의 마음은 다 보여주지 못하지만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막스 뮐러 씨에겐 미안하지만 뭐 어쩔 수 없네요.
아참, 이 말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나는 소년답게 그녀를 한껏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들은 청년기와 장년기에는 이미 사라진 순수함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법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서로의 말은 빗나가지만,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의 마음은 다 보여주지 못하지만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19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