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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소 맨: 레제편 (2025) 폭발은 예술이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2025) 리뷰

by 테리

예술은 폭발이다

일본의 아방가르드 예술가 오카모토 타로가 남긴 희대의 명언은 번번이 오용되어 왔다. 폭발적으로 생명을 분출하는 삶의 태도야말로 예술이라는 견해로 보아야 온당할 테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이들이 '폭발이 곧 예술'이라는 의미로 왜곡하여 사용해 왔다. 그 오용 자체가 예술과 폭발의 선후를 뒤집은 '러시아식 유머'이자 일종의 밈이 되어 가벼운 개그로 소비될 정도다. 지금까지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만화 <나루토>의 데이다라를 꼽을 수 있다. 이 캐릭터는 오카모토의 손바닥 문양에서 착안하여 양 손바닥에 입을 달았고, 그의 작중 마지막 폭발인 자폭 장면은 오카모토의 역작인 오사카 엑스포의 '태양의 탑'을 오마주했다. 데이다라는 오카모토를 본떠 만든 캐릭터임에도, 그의 진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예술은 폭발이다!"가 데이다라의 상징적인 대사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오카모토의 심오한 전언을 굴절하여 받아들인 것으로 보일 뿐이다. '예술이 폭발'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폭발이면 뭐든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3류 폭탄마(爆彈魔, Bomber)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마이트 가이가 가아라와 록리의 대전을 참관하며 남긴 "청춘은 폭발이다"가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일본의 서브컬처 캐릭터 유형인 폭탄마는 서구권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아케인>으로 국제적 명성을 끌어올린 리그 오브 레전드의 징크스, 오버워치의 정크랫, 하스스톤의 폭탄마 시리즈 등 반쯤 정신 나간 폭발광 이미지는, 기존의 일본의 망가 캐릭터와 게임 캐릭터 등을 양키센스로 적당히 조합하여 만든 스테레오타입의 산물이다. 이들도 오카모토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폭탄에 과도하게 미쳐있을 뿐, 예술을 신경 쓴다고 보기는 어렵다. 배보다 배꼽이 커진 러시아식 유머가 재창작되는 과정에서 폭발의 규모는 증대했으며, 예술은 한없이 가벼워졌다. 징크스의 폭발이 과연 예술을 이해하고 있는가? 유사 아버지 밴더를 손수 폭발시켰던 꼬마 파우더는, <아케인> 시즌 2에서 실코라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등에 업고 제멋대로 날뛰는 미치광이 폭탄마가 되었다. 징크스는 폭탄마 캐릭터이긴 하나, 예술적 기질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거리의 예술가 에코와 플래그가 생겼을지도.)


러시아에서는 폭발이 예술입니다!

흥미롭게도 <체인소 맨>의 폭탄마 레제는 러시아(소련 연방) 출신이다. 원작자 후지모토 타츠키는 '폭발은 예술'이라는 러시아식 도치 유머를 고스란히 캐릭터에 옮겨놓았다. 그녀는 갑작스레 등장해 덴지를 보고 연신 폭소한다. 이후로도 딱히 웃기지 않은 상황에 웃어대며 덴지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러시아식 유머는 소련 연방 체제의 검열을 피해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한 유머다. 레제가 통상적인 개그 코드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도 그녀의 출신은 슬며시 감지된다. 심지어, 레제의 정체는 '폭탄의 악마'이기에 폭탄마(爆彈魔)라는 단어를 의식하지 않고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레제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절륜한 캐릭터 디자인은 눈을 즐겁게 하고, 덴지와의 서사는 감정적 몰입을 자아낸다. 이런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보다는, 예술과 폭발을 러시아식 유머로 도치한 폭탄마 캐릭터로서의 레제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떻게 레제를 둘러싼 모든 요소가 이토록 절묘하게 겹칠 수 있는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믿음으로, 운명처럼 나타난 폭발의 기원을 탐구해 보려 한다.


<체인소 맨: 레제편>(이하 레제편)은 썰렁한 냉전시대 개그를 폭발하는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 이번 극장판에 한정한 단발적인 시도가 아니다. 후지모토는 단편 <안녕, 에리>에서 '예술은 폭발'이라는 오카모토의 말을 따르면서도, '폭발(판타지)이야말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설과의 공존 가능성을 치열하게 모색한 바 있다. <안녕, 에리>는 레제편이 수록된 <체인소 맨>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하기 전 휴재 기간에 발표되었으며, <안녕, 에리>의 주옥같은 엔딩 폭발 장면은 <체인소 맨> 2부에서 오마주되었다. 이로 미루어 짐작건대, 후지모토에게 있어 예술과 폭발의 역학은 창작자로서 부딪혀야만 하는 난제이자,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인 듯하다. 그중에서도 폭발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레제편의 영화화를 그저 우연으로 여기기엔 영 꺼림칙하다.


클래식한 소년 만화로의 근원적 회귀

<체인소 맨> 만화 원작을 돌아보자. 소년 점프 최전성기의 주역 '원나블'의 후계자가 등장하리라는 시대적 바람이 비로소 '귀주톱'을 끌어냈다. 귀주톱의 일원 <체인소 맨>은 여러모로 독특한 위치에 놓인 만화다. <귀멸의 칼날>과 <주술회전>이 모두 완결된 현시점에 유일하게 연재 중이다.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하던 1부와 달리, 1년 반의 휴재를 마치고 돌아온 2부는 소년 점프+에서 웹 코믹의 형태로 연재한다. 원나블의 말석을 차지한 <블리치>처럼 단행본 판매량으로 따지면 앞선 두 작품에 한참 뒤처질지 모르나, 아직 완결되지 않았기에 평가를 만회할 기회도 남아있다. <귀멸의 칼날>과 <주술회전>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재고할 여지가 없다. 그렇게 홀로 남은 <체인소 맨>은 매주 도마 위에 오르내리며 검증받는 처지에 놓여 있다. (매주 연재해야 매주 검증할 텐데...)


물론 이러한 특성은 <체인소 맨>을 둘러싼 환경과 연재 방식 등 외부적 특징에 불과하다. 대규모 팬덤과 인기, 동시대에 연재했다는 공통점 이외에는 귀주톱이 같이 묶여야 할 그럴듯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체인소 맨>의 특별함은 원나블 이후 20여 년간 소년 점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날 것'의 테이스트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데 있다. 1968년, 소년 점프에 나가이 고의 <파렴치 학원>이 연재된 이래 소년 만화의 핵심 테마는 폭력과 섹슈얼리티였다. 주인공은 성욕을 동력으로 삼아 나아가며, 위기를 돌파하는 도구로 무차별한 폭력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드래곤볼>의 대성공을 필두로 판은 달라졌다. 남근주의에 기반한 일본 서브컬처의 암묵적인 작동 원리는 급격히 와해되었으며, 만화와 작가, 독자의 의식 수준은 성장을 요구받았다.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채 아무렇게나 범람해도 괜찮았던 폭력과 섹슈얼리티는, 망가가 메이저의 영역으로 올라온 이후 마냥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드래곤볼>의 거대한 파급력은 서브컬처의 문법에 익숙한 기존의 마니아 독자층을 일반 대중으로 확장시켰다. 이유 없는 폭력과 섹슈얼리티는 대중의 보편적 윤리에 따라 지탄받을 대상이 되었다. 단순히 독자의 즐거움만을 위해 여성 캐릭터의 노출 장면을 그리는 '서비스 신'이나 팬티를 드러내는 '판치라'는 설 자리를 잃어 갔다. 브루마가 자는 사이 팬티를 벗기던 손오공이 가족을 지키는 가장으로 거듭난 건 이러한 변화의 흐름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체인소 맨>은 금기를 정면으로 건드리며 세상에 등장했다. 소년 만화의 전통적인 핵심 테마와 클리셰를 몽땅 집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관점에서도 시대를 거스르는 반항아를 기꺼이 자처했다. 소년 점프+의 매출액이 주간 소년 점프의 매출액을 뛰어넘은 팬데믹 시기 이후, 2025년 현재까지 출판 만화는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격변에도 불구하고, <체인소 맨>은 주간 소년 점프에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밀며 종이 만화로 독자에게 찾아왔다. 후지모토와 소년 점프는 그럭저럭 성공할 무난한 만화를 만드는 대신, 일부에게는 불편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최고가 될 만화를 만들 작정이었다. 본연의 서브컬처, 고전적인 소년 만화로의 복고가 이리도 인기를 끄는 것은, 반대로 그런 종류의 작품이 시장에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만화를 오버그라운드에서 연재한다는 건 감히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발칙한 상상이었다. <체인소 맨>은 폭력과 섹슈얼리티 없이 진행되지 않는 무식한 만화다. 덴지는 웬만하면 머리를 쓰지 않는다. 포치타의 힘을 통해 폭력으로 만사를 해결한다. 여자라면 처음 보는 사람도 전력을 다해 구하지만 남자는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움직이는 유이한 동기는 여자와 음식이다. 성욕과 식욕은 흔히 비례하는 욕구로 여겨지지 않나. 후지모토는 일본 소년 만화가 수십 년간 참아왔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레제편은 원작을 영상화하며 섹슈얼리티를 한층 더 강화했다. 일단 만화 캐릭터가 영상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하면 여성의 경우 '바스트 모핑'을 묘사해야 한다. 폭탄의 악마 상태인 레제는 아무 속옷이나 대충 걸치고 중요 부위만 간신히 가리고 있어 전신의 무브먼트가 강조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레제의 수영장 전라 노출 장면이 길게 이어지며, 각 여성 캐릭터의 속옷 차림 서비스 신도 힘을 주어 그렸다.


<진격의 거인>은 페이크 예고편에서 '특별한 이유 없는 폭력'을 개그로 사용했다. 소년 만화에서 폭력과 섹슈얼리티의 당위성은 어느덧 작가와 독자 양측에게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가치가 되었다. 이를 메타 유머로 비트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체인소 맨>, 특히 첫 번째 극장판으로 찾아온 레제편은 이러한 정서를 거부하며 폭력과 섹슈얼리티를 향한 무조건적 순애를 보낸다. 덴지의 톱질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사랑인 레제를 향한 성애적 목마름과 동일하다. 덴지에게 퍼붓는 레제의 폭력 또한 덴지를 향한 욕망의 발현과 동의어다. 후지모토가 직접 오마주한 사실을 밝혔듯 <태풍 클럽>을 연상케 하는 레제와의 학교 데이트 신을 비롯한 달콤한 장면들은 폭력의 이미지와 화면 안팎으로 맞대고 있다. 까딱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의 악마와 체인소 맨의 데이트 장면은 겉으로는 달콤하지만, 화면에 비치는 케미스트리의 파장 뒤로 뜨거운 욕망과 차가운 속내가 교차한다. 언제 터질지 모를 긴장감, 첫사랑의 아이러니는 관객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레제편은 원작이 추구한 '이유 없음의 이유'를 설득해 내며, 클래식한 소년 만화로의 근원적 회귀를 레제라는 매력적인 섹스 심벌을 통해 영화화하는 데 성공했다.


레제가 덴지에게 가하는 첫 번째 폭력인 키스는 폭력이 곧 순애이며 욕망의 발로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컷이나 프레임을 절단하여 관계의 끝을 우회적으로 알리는 대신, 레제는 덴지의 혀를 절단하며 본심을 드러낸다. "왜 처음부터 죽이지 않았을까"라는 레제의 뒤늦은 탄식을 생각해 보자. 키스 장면에서도 처음부터 폭력으로 제압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키스와 혀를 자르는 행위는 영화 내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두 가지 테마인 성애-폭력과 겹친다. 레제는 덴지에게 기습 키스를 한 뒤 혀를 자르고 그의 신체를 도륙 낸 후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피로 범벅이 된 입에 두 번째 키스를 한다. 전신이 드러난 여성 신체에 폭탄 머리만 얹은 디자인은 섹슈얼리티와 폭력이 공존하는 레제의 캐릭터성을 반영한다. 이는 두 테마를 동등한 위치에 놓으려는 영화의 의도를 뒷받침한다.


물로 시작해 물로 끝나는

레제편은 두 남녀가 물로 관계를 시작해 불처럼 싸우다가 함께 물로 돌아가며 끝나는 영화다.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만나 텅 빈 학교의 수영장에서 비를 맞으며 데이트를 즐기던 레제와 덴지는, 불꽃이 터지는 축제 현장에서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다. 둘은 긴 전투 끝에 함께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바닷가에서 이별을 맞이한다. '레제가 진심으로 덴지를 좋아했는가'에 대해 열띤 토론이 있는 만큼,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레제가 커밍아웃하는 장면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연출되었다. 일차원적으로 보면 체인소 맨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일본으로 온 러시아 첩자가 정체를 드러내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지만, 이면에는 서로의 비밀스러운 욕망이 발각되며 실망한 두 남녀가 잠재적 연인에게 투정하는 구도가 자리한다. 레제는 일명 '혀짤키스'를 통해 '폭력이 곧 순애인 미친 X이라는 사실'을 들켰으며, 덴지는 한켠에 숨겨둔 마키마를 향한 연심을 들켰다. "나를 좋아하는 여자는 다 나를 죽이려고 했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덴지는 새로운 사랑인 레제도 실패한 과거의 사랑과 같았다는 실망을 느낀다. 레제 역시 덴지가 함께 멀리 도망가자는 제안을 뿌리친 이유가 안정적 커리어를 위해서가 아닌, 마키마를 향한 사랑 때문이란 걸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거짓말을 했다는 데에 실망과 질투를 느낀다. 두 남녀의 폭발하는 사랑싸움은 수면 아래로 추락하며 그 불씨가 꺼짐으로써 일단락된다.


물이 레제의 시작과 끝을 구성하는 중요한 질료로 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레제의 캐릭터 모티브가 <무적코털 보보보>의 어뢰걸이라는 건 무척 흥미롭다. 어뢰걸은 알데가르퉁 제국 4천왕인 오버가 분노로 변신한 모습인데, 근육질의 남성인 오버와 어뢰걸의 자아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레제가 체인소 맨을 사살하러 왔다가 평범한 16살 소년 덴지를 마주하고 그 두 존재를 구분하려 했듯, 실험체로 사육된 러시아의 인간병기 폭탄의 악마와, 학교생활을 꿈꾸는 소녀 레제를 구별하는 건 어렵지 않다. 어뢰걸은 어뢰답지 않게 수영을 하지 못하는데, "쇳덩이가 어떻게 물에 뜨겠냐"라며 반문하는 어뢰걸은 폭탄의 악마인 상태로 덴지와 함께 물에 가라앉은 레제를 연상케 한다. 그녀가 인간의 모습으로 덴지와 자유롭게 수영을 즐겼던 초반부를 떠올리면, 어뢰걸과 레제의 관계성은 디자인 모티브를 넘어 레제편의 서사의 축을 담당한 핵심적인 모티브로 보인다.


TVA의 단점을 극복한 극장판 작화

<체인소 맨> 1부의 7개 에피소드 중 정확히 중간인 4번째 에피소드에 해당하는 레제편은 여러모로 극장판으로 제작하기 적합한 에피소드다. 레제와 덴지의 러브 스토리가 감정 이입을 돕고, 폭발하는 액션의 화려한 비주얼은 극장 상영에 적합하며, 단일 에피소드 내에 기승전결이 명백히 존재하기에 한 편의 영화로서도 적절하다. TVA 1기의 나카야마 류 감독 대신 1기의 액션 디렉터인 요시하라 타츠야가 연출과 총편집을 도맡았다는 것도 관객 입장에서는 호재다. MAPPA가 크레딧에서 나카야마 류의 이름을 삭제한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카야마 류는 재능있는 애니메이터다. 하지만,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체인소 맨> TVA 1기조차 혹평을 면치 못했고, 경력이 일천한 그에게 극장판 연출을 맡긴 건 다소 성급한 기용이었다. 후지모토의 영화 마니아적 성격을 TVA에 녹이고자 한 의도는 칭찬할 만하나, TVA와 만화는 다르고, TVA와 영화는 더욱 달랐다. 결과적으로 요시하라 타츠야가 메가폰을 이어받고 MAPPA가 총괄 제작한 레제편의 작화는 원작 비주얼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특유의 영화적 연출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멋스럽게 조화해 냈다. 카툰 렌더링 3D 대신 2D 작화를 중점적으로 사용한 액션도 원작의 분위기를 살리되 '애니메이션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안녕, 에리>의 엔딩을 오마주한 <체인소 맨> 2부

레제편의 폭발 액션은 가히 예술이다. 레제 캐릭터의 완성도 또한 예술적이다. TVA 방영분을 묶음 상영하는 게 아니라, 작화와 디테일을 전면 수정하여 극장판다운 극장판을 만들었다는 것도 제작진이 예술 점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기는 하지만 오카모토의 "예술은 폭발이다"를 제대로 이해하는 영화라고 선뜻 말하기는 힘들다. 원작도 그 정도 단계는 아니다. 분명한 건, 후지모토는 폭발에 미친 남자다. 만화계의 마이클 베이다. <파이어 펀치>는 폭발 후 잔해처럼 타오르는 남자의 이야기고, <체인소 맨>의 레제는 폭탄마이며, <안녕, 에리>의 엔딩도 폭발이다. 후지모토는 이 장면을 <체인소 맨> 2부에서 오마주하며 아직 폭발(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 심층 탐구는 본디 <체인소 맨>이 아니라 <안녕, 에리>에서 이루어졌다. 이 단편은 그가 여태껏 쌓아온 예술가의 자의식을 총동원해 '예술은 폭발이다'와 '폭발은 예술이다'의 대결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완성한 걸작이다. '만화보다 영화를 더 사랑하는 만화가'가 '만화로 영화(같은 만화) 만들기'를 시도하다니. 그는 <안녕, 에리>를 창작자로서 할 수 있는 자아 탐구의 종착지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후지모토는 <안녕, 에리>를 통해 한계가 명확한 만화 매체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예술적인 폭발과 폭발적인 예술을 동시에 성취해 냈다. 그럼에도 일생일대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체인소 맨> 2부에서 확인했다. 후지모토의 단편 모음집이 두 편의 영화로 개봉한 지금 <안녕, 에리>의 영화화는 시간문제다. 과연 폭발은 예술이 될 수 있을는지, 오카모토의 명언을 러시아식 유머로 도치하는 수준을 넘어 진정한 영화 예술을 선보일 수 있을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씨네21 송경원 편집장은 "예술은 폭발이다. 레제는 미래다. 알고도 당하는 순애의 맛"이라며 <체인소 맨: 레제편>을 호평했는데요. 본문에서 언급했듯 이 영화에 오카모토의 명언을 인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입니다. 그 문장이 찰떡같이 어울릴 영화는 <안녕, 에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저는 그때를 위해 아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리뷰 제목도 '폭발은 예술이다'로 도치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폭발이 예술일지도? 찡긋


나카야마 류가 시도한 <체인소 맨> TVA의 영화적 연출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후지모토는 몇 개의 장편과 여러 단편을 그려오면서 만화 매체에 영화적 연출을 담는 데 도사가 되었거든요. 그 독창적인 터치를 TVA로 옮기려니 삐그덕 댈 수밖에요. 오히려 <카우보이 비밥>을 참고하는 게 TVA에는 더 적합하지 않았으려나. 비밥은 심지어 극장판도 있죠.


레제편이 개봉한 덕분에 제가 후지모토의 작품 중 유일하게 제대로 보지 않은 <체인소 맨>을 정주행할 수 있었습니다. 단편의 악마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사람 정말 장편에 소질이 없습니다. <안녕, 에리>, <룩 백> 같은 단편과 비교하면 완성도가 너무 떨어지거든요. <파이어 펀치>도 뇌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체인소 맨> 2부는 정말 할 말을 잃었네요. 1부는 고전 소년 만화의 향수를 느끼게 하면서도 완성도도 나쁘지 않았는데, 1년 반이나 쉬고 온 것치고 실망스럽기가 그지없습니다. 별 기대도 없어요.


원작에서도 레제편은 스토리 진행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독립된 에피소드처럼 자리합니다. 그래서 극장판으로 만들기에도 적합했죠. 저는 후지모토가 레제편을 우발적으로 그린 건 아닐까 의심합니다. <안녕 에리>를 그리기 전부터 폭발을 다루고 싶어 근질거렸을 테니까요. 그런데 대체 왜 폭발에 이렇게 집착하는 거죠 아저씨. <체인소 맨>도 폭발 엔딩으로 끝내려고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제 별점은 세 개 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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