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책을 읽는 여자들을 동경했다
비키니를 자연스럽게 입게 된 것 말고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 천 쪼가리가 있다. 가슴과 엉덩이를 가리는 천 쪼가리 비키니보다는 훨씬 큰 천 쪼가리이다. 바로 돗자리, 요즘 애들 말로는 피크닉 매트이다. 간편하고 예쁜 피크닉 매트가 하나 있으면 그 아이는 당신의 보물이 되어 겨울을 제외하고든 언제나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그곳에 맥주를 흘리고 떡볶기를 흘리고 모래와 흙을 묻히고 하도 살을 비빈 탓에 그것은 점차 낡고 더러워질 것이다. 1년 후 집에 돌아오는 길 캐리어에 자리가 없는 당신은 결국 제 쓸모를 다 한 그 피크닉 매트를 버리고 올 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끔 돗자리에 누워서 그곳에 펜으로 날짜와 내가 있는 장소를 써 놓기도 했다. 뮌헨의 영국 정원에서, 잘츠부르크의 잘자흐강 둔치에서, 슈트트가르트의 노을 명소 칼스후에(Karlshöhe)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기숙사 아래에 있는 주차장 옆의 풀밭에서.
학기 초에 친구들과 종종 기숙사 바로 아래의 주차장 옆에 있는 풀밭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수업이 끝난 후 얼른 요리를 시작한다. 음식 다 되면 말해! 라고 문자를 보내며 각자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 밖으로 나가면 접시에 볶음밥, 파스타 등을 담은 친구들이 나와 같은 모습으로 덩그러니 서 있다. 우리는 주차장 옆에 있는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모여 앉는다. 똑같이 밋밋한 토마토 스파게티라도 푸릇푸릇한 풀밭 위에서 친구들과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 하며 먹는 맛은 달랐다. 한국에서는 볼일 없는 야생토끼도 총총 뛰어다니며 우리의 식사를 구경했다.
돗자리를 펴는 건 한국에서 매일 하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매우 특별한 일처럼 느껴진다. 한강이나 서울숲, 올림픽 파크처럼 돗자리를 가지고 가는 곳은 몇 곳으로 정해져 있는 듯하다. 그 외의 길거리나 학교에서 혹은 아파트나 빌라의 구석에서 돗자리를 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 돗자리는 간단한 일상 용품 천쪼가리가 아니라 특별한 소품같은 느낌이었다. 여름 날 한강 공원에서는 돗자리를 파는 상인들이 무척 많고 돗자리를 대여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독일에서는 절대 그런 모습이 없을 것이다. 모두 가방 한켠에 자신의 돗자리가 있거나 풀밭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도 망설임 없이 누워버리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