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수고로 큰 것을 얻는다
독일에 가기 며칠 전, 샤워를 하고 있다. 물줄기를 맞으며 깊이 고민했다. 고추장을 가져다 줄까 말까. 독일에 가져가는 23kg캐리어는 하나 밖에 없었다. 내 고추장도 안 챙겼는데. 내가 챙긴 음식은 한살림의 김과 누룽지 2팩이 전부였다. 아, 그리고 국물 내기용 가루 하나. 짐이라고는 빼느라 바쁜 상황에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학교 선배가 내가 독일로 곧 출국한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친구 이야기를 한 것이다. 고추장을 가져다줄 수 있냐고, 자기가 지난 겨울에 그 친구의 집에서 일주일을 살았는데 그때 본인이 가지고 있던 고추장을 조금 두고 왔더니 그가 너무나 감동을 하여 안쓰러웠다고. 안 그래도 택배로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전달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가져다주고 밥 한끼 얻어먹으라고.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사람도 나와 같은 학교를 졸업한 사회학과 선배라고 했다. 나는 21학번, 지금 내게 부탁하는 사람은 17학번, 고추장을 받을 사람은 13학번. 한국와 독일의 우리의 학번 차이도 컸다.
독일에 도착하고 하루가 지난 날의 저녁이었다. 처음 타보는 독일의 대중교통 U반을 타고 오버우어젤 역에서 프랑크푸르트 하웁트봐헤(Hauptwache)역으로 가고 있다. 큰 창 너머로 보이던 드넓게 펼쳐진 초원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다가갈 수록 도시의 생김새로 변한다. 가방에는 작은 고추장 몇개가 위생팩에 들어있다. 나는 지금 고추장 배달 중.
Hauptwache가 어딘지 모르니 구글맵을 보며 가고 있었는데 U반이 지하를 달리자 인터넷이 끊기고 구글맵은 작동을 멈췄다. 대체 어디서 내려야 하는 지 몰라 한순간에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지하에 오면 인터넷이 끊긴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캡쳐를 해놓을 걸. 한국의 지하철은 인터넷이 끊기는 공간이 아니었는데 이곳의 지하는 인터넷이 끊기는 공간이구나. 공간에 대한 지식을 새롭게 쌓아야 했다. 화장실은 동전이 필요한 곳, 식당은 물을 주지 않는 곳, 그리고 식당은 웨이터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곳이라는 걸 알아야 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저기, Hauptwache가 어디에요? 그는 바로 다음에 내리라고 하고, 나는 속으로 독일어로 한 첫 대화를 축하한다. 다음 역에서 내렸는데 여기가 맞는 지 어리둥절하다. 만나기로 한 선배에게 메세지를 보내니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한다. 나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큰 쇼핑몰 앞이어서 눈에 보이는 간판들을 몇개 읽었다. 속으로 독일어로 된 간판을 띄엄띄엄 읽은 것을 축하한다. 선배는 헷갈리는 듯 하더니 내가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렸다는 걸 알아냈다. 그는 이리로 오겠다며 거기 있으라고 했다. 서브웨이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기다렸다. 나는 보라색 바지에 갈색 가죽 자켓을 입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가죽 자켓을 입은 큰 키의 한국인 남자가 독일어로 "안녕~ 너가 하리야?" 하면서 다가왔다. 그 선배였다. 독일어로 그렇다고 대답을 한 내게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독일어 잘 할 것 같네. 처음에는 당황에서 독일어 바로 나오기 쉽지 않은데, 자연스럽게 잘 대답하는 데?" 독일어 칭찬이라니 쑥스러웠다. 그와 함께 Hauptwache로 걸으며 그것은 그냥 시내의 중심을 부르는 말이라는 걸 배웠다. 그는 내게 되너(Döner)를 먹어봤냐고 물었고 나는 그게 뭔지도 몰랐다. 독일식 케밥으로 이곳에서 아주 흔하고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그가 사준 되너를 가지고 마인 강가로 갔다. 다리가 허공에 동동 뜬채로 되너를 먹었다. 너무 컸다. 내가 한입 베어물때마다 내용물이 투두둑 떨어졌다. 되너를 감싸고 있던 얇은 종이도 금새 축축히 젖어 소스가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의 되너는 멀쩡했다. 입이 더 큰 모양이었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커다란 되너와 잡기 놀이를 하듯 열심히 먹었다. 내 뒤로는 커다란 거위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선배는 나름 우아하게 식사를 마치고 담배를 말았다. 반투명한 얇은 종이에 말의 여물같은 것을 올려두고 돌돌 말았다. 처음보는 담배 제조에 이게 마약인가 싶어 놀란 나와 유유히 담배를 태우는 그.
선배는 유유히 걷는 사람이었다. 30분에 한번씩 담배를 피우면서 걷고 또 걸었다. 그날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다 본 것 같다.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서 생크림이 올라간 딱딱한 케이크를 먹기도 하고 담배연기로 가득 찬 맥주집에 들어갔다가 켁켁거리며 나오기도 했다. 음악을 틀어놓고 파트너 댄스를 추는 곳도 지나고 어두워진 강가도 지났다. 괴테 대학교의 어느 잔디밭에서 꽃을 따 입에 넣는 그를 따라 꽃의 쓴 맛을 맛보기도 했다. 불이 켜진 구 오페라 하우스는 예뻤고 낯선 이와 나누는 대화는 편안했다. 아니, 사실 굉장히 긴장되고 설레기도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평범했는데 갑자기 유럽의 노란 조명을 두고 앉아 이야기 하는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참을 걷다가 생각보다 늦은 시간에 그는 나를 지하철역으로 데려다주고 함께 내가 탈 열차를 기다려줬다. 나는 그에게 정말 고맙다고 했고 그는 sehr gerne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고맙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지만 직역하자면 '매우 기꺼이'쯤 된다. 이 날부터 나는 고맙다는 말에 그 선배가 말한 대로 대답하는 것을(bitte도 아니고 gerne도 아니고 sehr gerne) 독일어를 자연스럽게 잘 한다의 척도로 삼았다. 반년이 더 지났을 때가 되어서야 gerne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날 나는 웃으며 잠에 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 독일의 시내. 오랫동안 여운에 잠겼다. 선배를 처음 만난 그 날은 그 주에 가장 재미있었던 날이었다. 교환학생은 슈트트가르트에서 했지만 이따금 프랑크푸르트에 갔고 그럴 때마다 꼬박꼬박 선배를 찾았다.
아무튼 효율적이라는 말을 작은 수고로 큰 것을 얻는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나의 고추장 배달은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사람을 얻는 것보다 큰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