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고 떨리고 떨리고 떨렸다
우리가 교환학생을 가는 학교에 미술 여행이 있다고 들었다. 미술 학부에서 수업으로 있는 건데, 일주일 동안 그림만 그리는 여행이라고 했다.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있을 때 은주에게 카톡이 왔다. 자신은 이미 담당 교수님과 여러 차례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그 여행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덕분에 나도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hello. I'm an exchange student of PH University in next semester. I'm staying in Korea yet. And I'm very interested in your 'Vertiefung Fachpraxis' class. Can I participate this class? If so, do I have to pay now? I'm also fully interested in your other classes. Thank you so much!
(안녕하세요. 다음 학기에 PH 대학교에 교환학생을 가게 될 학생입니다. 저는 아직 한국에 있고 미술 여행에 신청하고 싶어요.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요? 교수님의 다른 수업도 관심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다음날 간단한 답장이 왔다.
yes you’re welcome.
(네. 환영합니다.)
여행이 있던 주는 5월 말, excursion week라고 하는 일명 ‘체험주간’이었다. 학교에서 주관하는 캠프에 가지 않아도 모든 학생들이 쉬었고 저마다의 휴가를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함께 교환학생 중인 친구 현서는 당시 스페인 여행을 떠났고 미술 학부 학생회에서는 프랑스 파리로 학생들끼리의 그림 여행을 떠났다. 네덜란드 암스트레담에 애인을 만나러 간 친구도 있었고 스윙 댄스 선생님은 그녀의 중국인 남자친구와 크로아티아로 2주간 휴가를 떠났다.
한 차례의 오리엔테이션과 왓츠앱 단톡방 초대 등을 거쳐 대망의 떠나는 날이 왔다. 쫄보답게 나는 긴장감이 머리털, 손끝, 발끝까지 쭈뼛쭈뼛 향한 채로 BTZ 주차장에 서 있다. 열여덟 명의 학생이 모이고 두 명의 교수님이 오셨다. 내가 아는 사람은 비키 교수님, 큐, 새미, 릴리아였지만 그들과 인사를 제외한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이 분주하게 BTZ에서 커다란 종이나 화판, 각종 미술 재료들을 차 트렁크로 옮긴다. 나는 할 일을 찾아보지만 벌써부터 이 무리에 섞여 들어가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근 일주일 간 나는 이곳의 일상을 매우 버거워하고 있었다.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들과의 거리는 전혀 가까워지지 않고 여전히 성과 없는 노력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답답하고, 지치고, 외로웠다. 가고 싶은 방향이기에 한 발 한 발을 떼어 새로운 공간과 친구들에게 다가가면서도 ‘요청하기 싫음’과 ‘파업하고 싶음’을 겪었다.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었으면, 누가 먼저 다가와줬으면 하고 바랐다. 고작 두 달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독일 친구들과 영영 마음이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고 기대와 자신감이 점점 떨어졌다. 이 일주일은 또 긴 요청이 될 터였다. 하지만 걱정과 동시에 난생처음 해보는 독일인 무리 속에서의 일주일, 그리고 미술 여행에 가슴이 부풀기도 했다. 그 안에서 내가 즐겁고 편안해질 수 있기를, 이 무리에 섞일 수 있기를, 친구들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짐을 다 넣었는지, 학생들이 차 세대로 나누어졌다. 나와 은주는 가장 마지막에 남은 자리로 갔다. 한 학생이 나와 은주를 붙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자리를 바꿔주어 우리는 함께 비키 교수님이 운전하는 차에 앉았다.
차는 조용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독일의 Zeitz라는 소도시의 Noodlen Factory, 일명 옛 국수 공장이었다. 베를린에서 두 시간 정도 아래에 있는 곳이라는 게 그곳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고 차로 네 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었다. 내 왼쪽 옆에는 창밖이나 핸드폰만 보고 있는 독일 여자애가 있었다. 긴 금발 생머리에 갈색 가죽재킷을 입고 있었다. 15분 정도 지난 후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그 애는 셀리나였다. 나의 이름, 전공, 국적을 안 다음 다른 질문을 하지 않는 그녀와 달리 나는 꾸준히 말을 걸고 그녀에 대해 들었다. 그 애가 이제 2학년 1학기라는 것,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만난 남자친구와 이제 6년을 만났고 함께 간 시칠리아 여행이 아주 행복했다는 걸 알았다. 그 애는 연신 자신의 남자친구를 너무 사랑한다는 말을 했고 사진첩에는 남자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가득 이었다. 모든 사람의 사소한 이야기는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 만으로도 듣는 재미가 있다. 가방에서 빵이나 과자를 꺼내 먹는 그 애가 옆자리에 앉은 내게 ‘먹어볼래?’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흥미로웠다. 경험상 많은 독일인들이 그랬다. 하루는 날씨 좋은 날 피크닉 매트에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는데 한 친구가 도시락 통에 담긴 딸기를 꺼내 혼자 다 먹었다. 독일에 오고 나서야 그 유명한 한국인의 정(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앞에 앉은 친구의 어깨를 톡톡 치고 또 이름을 물었다. 뒤를 돌아보며 웃는 모습이 예뻤다. 마디타라는 이름의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친구였다. ‘존더 페다고기’라고 하길래 휴대폰을 내밀며 스펠링을 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 애는 유독 순수하고 귀여워 보여서 마음이 갔지만, 불편한 자리 때문인지 대화를 이어 가지는 못했다. 은주는 눈을 감은 채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고 다른 애들도 각자 휴대폰을 하거나 창밖을 보았다. 얼른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고 이 공간을 편안하게 느끼고 싶었던 건 나뿐이었나 보다. 셀리나에게 마디타 옆에 앉은 친구는 이름이 뭐냐고 묻자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만 낯선 사람이 아니라 이 애들도 서로를 몰랐다. 문득문득 오가는 독일어 대화가 있었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앞 좌석에서 운전을 하는 교수님이 뒤쪽으로 핸드폰을 넘기셨다. 한국 노래를 고르라고 권하셨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던 예빛의 ‘사랑할 거야’라는 노래를 골랐다. 사랑, 사랑, 사랑… 달리는 차에 한국어로 사랑이라는 말이 향기처럼 퍼져 나왔다. 그 노래는 맞지 않는 곳에 생뚱맞게 떠 있는 보라색 구름처럼 따로 놀았지만, 시끄럽고 낯선 독일 노래보다 좋았다. 그 노래가 끝난 후에도 스피커에서는 한참 동안 내가 고르지 않은 한국의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나와 은주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그 언어에 마음 한편을 의지했다. 나름 교수님께 받은 환대인 것 같았다.
인사도 다 하지 않은 사람들과 좁은 차에 앉아 있는 것이 조금 익숙해지자 ‘도착해 버리면 이 작은 공간에서 벗어나서 다른 아이들을 다 만나고 일주일간의 여행이 시작되겠지’ 하는 마음에 겁이 잔뜩 났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일기장에 일주일동안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았다. 모두의 이름 외우고 인사하기, 교수님께 감사하다고 하기, 산책, 큰 종이에 그림 그리기, 잘 자기, 잘 먹기, 친구들이랑 사진 찍기… 따위를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