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미술 여행 (2) 방 바꾸기

투명인간이 되는 건 끔찍했다

by 반하의 수필

오래된 건물이 많고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은 아주 조용한 동네에 들어왔고 곧 우리의 숙소인 Old noodle factory에 도착했다. 창밖으로 이미 도착한 차 아이들이 숙소로 짐을 옮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느릿느릿 차 밖으로 빠져나가서 트렁크에 있는 내 캐리어를 찾았다. 아이들을 따라 차가 다니지 않는 차도를 건너서 옛날에 국수 공장이었던 그 숙소 계단을 올랐다. 유리문을 하나 지나 나오는 실내에 모든 짐을 내려놓았다. 작은 공간이 음식과 그림도구, 개인 짐, 그리고 사람으로 가득 찼다. 곧 반팔과 반바지 차림에 타투로 팔다리가 뒤덮여있다시피 한 대머리의 마른 남성이 집 소개를 시작했다. 그 사람은 축 늘어진 귓불에 아주 커다란 검은색 고리를 박고 있었다. 특이하고 무서운 외관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두려웠던 건 이 무리에서 내가 영영 주변부의 투명 인간으로 남을 까봐서였다. 커다란 이 숙소를 거닐며, 거실을, 주방을, 또 다른 거실을, 창고와 거울방 등을 설명받는 동안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어떤 학생이나 교수님도 나와 은주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 주지도 설명을 해주지도 않아 막막하고 속상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대망의 방을 정하는 시간이 됐다. 4인실과 2인실들이 섞여 있었고 자유롭게 고르는 분위기였다. 무조건 4인실에 가고 싶었다. 은주와 둘이 2인실에 가면 다른 아이들과 섞일 기회를 얻지 못하고 고립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 밥을 먹으러 나가야 하는지, 오늘은 뭘 하는 지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독일 여자애들은 우리의 의견을 묻지 않고 끼리끼리 자신들이 원하는 방을 정했고, 나와 은주는 자연스럽게 2인실의 키를 받게 됐다. 열어본 그 방은 햇빛도 잘 들지 않았고 좁고 칙칙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이곳에 들어갔다가는 감옥에 나를 가두는 심정일 것 같았다. 알록달록 하기도 하고 햇빛도 잘 들고 커다란 다른 방들을 보며 나는 방을 바꿔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머릿속으로 문장들을 굴렸다.


Is there any chance that we can use room for 4 person..? Can we have room for 4 person..? Becasue… If it's uncomfortable, it's okay.. But I just wanted to ask if it is possible to ….


입을 떼는 게 쉽지 않았다. 모든 방들을 구경하고 비키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안내 사항을 말했다.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기 전 최후의 순간이었다. 내내 조용하던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모두의 시선을 느끼며 머릿속에 굴리고 있던 말을 뱉었다.


“I wanna ask something to girls..” 4명이서 쓰는 방을 쓰고 싶다고, 그게 우리의 서바이벌에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목소리도 얼굴도 떨리는 티가 났다.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리고 생각을 하더니, 네 명 방에 있던 아이들 중 두 명이 자기들이 2인실을 쓰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방 열쇠를 교환했다. 그저 숨 막히게 낯선 곳에 갇혀 허우적거리다가 내 목소리로 나를 가두던 작은 벽 하나를 깨뜨린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구성원 1로 있는 나를 알리는 첫인사이기도 했다. 들어간 방은 높은 천장에 한쪽 벽면이 다 창문으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룸메이트는 차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셀리나와 셀리나와 친한 한나였다. 방도, 룸메이트도 마음에 들었다. 침대까지 고르고 그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무척 떨리고 힘이 많이 들었지만, 해냈다는 기분에 그제야 웃음이 났다. 휴우… 첫 성공이었다.


셀리나와 한나는 요리 준비를 한다며 먼저 방에서 나갔다. 은주와 나만 있는 방에서, 은주에게 방을 바꾸기까지 내 마음이 어땠는지 말했다. 놀랍게도 은주는 내가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줄도 몰랐으며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했다. 2인실을 쓰게 되어도 그냥 괜찮았을 거라고 했다. 내 마음이 크게 요동치는 이유는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이 더 명확해졌다. 은주는 투명인간으로 존재하고 싶다고 했다. 나서서 무언가를 하지 않고 그냥 뒤에서 이곳의 흐름과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만 해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나는 전혀 아니었다. 투명인간이 되는 건 끔찍했다. 친구를 사귀고 싶었고 소외되는 건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욕망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은주와 나와 둘이 쓰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집을 소개했던 지금까지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고 소외된 느낌이 괴로웠던 것이다. 아직 내가 많은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그것이 씹힌 것도 아닌데 먼저 잘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속상해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선 흐름에 적응하지 않고 방을 바꾼 점을 스스로 칭찬하며, 다시 일어날 마음을 냈다. 일기장에 꾹꾹 눌러썼다. ’처참해도 즐겨라’. 독일을 떠나기 전에 스승님과 한 전화통화에서 스승님이 해주신 말인데, 내 독일 생활의 모토로 삼기로 했다. 즐겁든 고독하든 괴롭든 사랑스럽든 즐기면 그만이라고. 처참해도 즐겨라, 하는 말은 내게 힘을 주었다.






IMG_6726.JPG 일기장





IMG_7102 2.jpg 그 4인실 방



저녁은 두세 명의 당번이 돌아가면서 요리를 한다. 첫날 저녁은 클레만 교수님과 비키 교수님, 두 분이 준비를 해주셨다. 엄청난 양의 파스타를 삶고 각종 허브와 크림을 넣은 소스가 준비됐다. 그 맛은 첫 입부터 못 먹을 맛이었다. 허브향이 강해 확실한 맛이 나는데 맛을 표현할 수가 없는 느낌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절대 먹지 않았을 텐데 교수님이 해주신 음식을 맛없다고 안 먹을 수 없어서 꾸역꾸역 먹었다. 다른 독일 학생들도 그 맛에 놀라며 꾸역꾸역 먹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은 그것을 Tee Nudlen(차 국수)이라고 이름 지었다. 옆자리에 있던 큐는 내 표정을 보고 먹기 싫으면 남겨도 된다고 말했고, 내가 끝까지 먹으려고 하자 마지막 두 조각이 남았을 때 내 접시를 치워버렸다. 그 파스타를 다 먹자 디저트가 나왔다. 이 여행에서 경험한 바로 독일인들은 저녁 식사 후 달콤한 디저트를 꼭 먹는다. 요리 당번이 항상 본식과 함께 디저트도 준비해야 했다. 디저트로 나온 음식은 우유밥이었다. 우유에 밥을 넣고 끓인 죽 같은 거에 생딸기와 말린 코코넛, 시나몬 가루를 뿌렸다. 내가 딱 하나 절대 싫어하는 것은 바로 코코넛이다. 멀리서 코코넛 냄새를 맡고 얼른 배식을 하는 곳에 달려가서 코코넛 토핑을 뺐다. 그러나 우유밥이 이미 코코넛우유였는지 끈적끈적하고 달콤한 코코넛 향이 일품이었다. 결국 버렸다. 다음 날 디저트로 나온 초코죽이나 바나나케이크도 너무 달고 끈적해서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특히 초코 죽은 다 큰 어른들이 대접에 초코를 퍼먹고 있다는 것이 문화 충격이었다. 나는 대체로 다 잘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독일 디저트라면 아주 조금만 뜨는 사람이 되었고 클레만 교수님이 ‘하리는 뭐 좋아해..? 너네는 디저트로 뭘 먹니..? 이건 어때..?’라며 따로 물어보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디저트 타임이 되면 내가 잘 먹는지 지켜보는 클레만 교수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때 경험한 우유밥, 시금치파스타, 초코 죽은 내가 독일 생활동안 먹었던 가장 충격적인 음식으로 남았고, 이후에 또 그런 일은, ‘소스 없이 그냥 삶은 파스타면 먹기’ 말고는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두 가지 단체 활동을 했다. 먼저 라파엘로 스케치북 만들기를 했다. 종이를 받고, 표지로 넣은 천을 고르고, 붓질로 커다란 풀을 바르고, 접고 자르고 하며 스케치북을 완성하는 동안 이 미술 여행이 재미있겠다는 느낌이 처음으로 들었다. 내가 있는 장면이 너무 특별했다. 스케치북을 다 만들고 나서 교수님은 다 함께 보드게임 딕싯을 하자고 하셨다. 이야기 기반으로 진행되는 게임이라 내가 참여할 수 있을까 했는데 둘씩 짝을 지어 팀을 했고, 나와 팀이 되었던 타미나, 그리고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새미가 내게 영어로 잘 설명해 주었다.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피곤하지만 교수님 두 분과 함께 보드게임을 하는 것이 신기했다. 단어를 부르면 그 단어와 같은 그림 카드를 찾아서 내야 하는 게임이었다. 가끔 어려운 단어를 영어로 설명해야 할 때면 다들 애를 먹었지만, 나도 웃으며 재밌게 참여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모두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셀리나는 아직 이름을 다 모른다고 했다. 많이 긴장했던 하루가 무사히 끝나 기뻤다. 내일은 오늘보다 덜 힘들 것 같다고 기대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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