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미술 여행 (3) 언어가 없어지는 순간

모두가 코 박고 그림을 그리느라 바쁘다

by 반하의 수필


매일 학생들 3명 정도로 이루어진 팀이 잉크화, 목탄화, 어반스케칭 등 교수님이 정해주신 여러 주제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와 은주는 마지막 날 한국화, 동양화에 대해 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둘째 날 오전에는 처음 가보는 방으로 갔다. 발표를 하는 아이들이 빔프로젝터를 설치하고 앞에 서 있었다. 학생들은 소파나 의자, 바닥에 자유롭게 앉아서 발표를 들었다. 발표자에게서 가장 먼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 독일어 발표가 시작되었다. 나는 일기장에 보이는 풍경을 그렸고 은주는 사진이나 영상을 조금 찍었다. 그런 식으로 심심함을 달랬다. 발표자들이 제시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발표는 끝난다. 이때 이어진 활동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을 방에서 5개 정도 가지고 와서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지 않고 큰 탁자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렇게 물건을 보고 누구의 것인지 추리하고, 마지막에는 본인이 소개를 하는 활동이었다. 워커 한 짝을 벗어서 올려놓은 친구도 있었고, 선크림이나 수채화 물감, 헤드셋, 선글라스, 책, 숟가락 등 다양한 물건이 올랐다. 나는 한국어로 된 책과 다이어리, 필통 등을 놓았다. 은주는 향수와 녹음기, 버지니아 울프 성냥 등을 놓았다. 우리는 영어로 설명했기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은주의 물건들에 대한 것뿐이었다. 첫사랑이 주었는데 아직도 쓰고 있다는 은주의 향수에 대해 들으며 아이들이 웃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물건에 대해 소개할 때는 특히 독일어를 다 알아듣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 놓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완성할 수 없는 꿈을 꾸는 것도 답답하고 슬픈 일이었다. 희미하게 웃는 표정을 유지했다.


발표와 활동이 끝나고 우리는 다 같이 숙소 안에 있는 바깥 공간으로 향했다. 발표를 했던 공간에서 주방으로 가고 주방을 지나 아주 긴 식탁이 놓인 식사 장소도 지나면 밖으로 나가는 작은 투명 문이 있다. 건물들로 네 면이 막혀 있는 그 공간은 축구를 할 수도 있을 만큼 아주 컸다.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있었고 한쪽엔 해먹이 달린 나무도 있었다. 쓰지 않는 바베큐장, 비에 젖어 축축한 책상들과 의자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비키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종이를 대고 그릴 수 있는 커다란 판때기 하나, 그 위에 둘 종이 하나, 각자 원하는 그림 도구 하나를 가지고 이 야외 공간의 아무 데나 자리를 잡으라고 하셨다. 나는 스케치를 하고 펜을 덧댈 생각으로 가진 것 중에 가장 얇고 연한 HB연필을 꺼내 들었고 무엇을 그릴 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교수님이 휘파람을 휙! 물었다. 모두 그대로 그림 도구를 내려놓고 시계 방향으로 가까운 사람의 자리로 움직였다. 이어 그리는 거였다. 내 자리에는 백지인 도화지와 연한 HB연필을 남겨두고 안나의 자리로 갔다. 이렇게 2분 정도의 간격으로 휘파람 소리가 나고, 나는 내가 그리던 것을 내려놓고 안나가 있던 곳으로 이동했다. 안나는 수채화 수업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려 마치 조교와 같은 느낌을 가진 친구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 애가 만들어 놓은 점과 선과 면을 그 애가 그리던 풍경과 대치해 보며 공부하듯 살폈다.


나는 벽돌과 배관을, 의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종이에 그려져 있는 것은 작은 옹이는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너무 컸다. 여러 사람의 손을 탄 만큼 구도도 뒤죽박죽이었다. 저 옹이가 이렇게 크면 그 옆에 있는 것들을 어떤 크기로 그려야 하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주위를 둘러본다. 다른 아이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또 그의 벽을 빤히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 의자에 앉아 쓱쓱 그림을 그리고 있기도 했다. 오래된 청바지를 입고 계신 교수님은 풀밭에 그냥 무릎을 꿇고 앉아 바쁘게 고개를 내렸다 들었다 하며 손을 움직이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내가 있다. 언어가 없다. 종이 그려진 그림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림은 어렵지만 같은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즐겁다. 모두가 코 박고 그림을 그리느라 바쁘고 나는 이 장면이 오래 기억하고 싶을 만큼 좋아서 몰래몰래 카메라를 들어 그들을 담았다. 한국에 가면 미술 모임을 만들어서, 미술 여행도 떠나고 꼭 이 활동을 함께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 그림에 대한 피드백을 나눈 후, 점심시간 겸 자유 시간이 왔다. 점심은 항상 단출했다. 각자 주방에 가서 아침에 먹었던 그대로 빵에 잼이나 치즈 등을 넣어 먹던지, 전날 저녁에 먹고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서 꺼내 먹든지 하는 식이었다. 우적우적. 별 맛이 나지 않아도 그냥 씹어 먹고 배만 고프지 않으면 되었다. 매일 아침과 점심을 똑같이 빵으로 먹고 저녁에만 하나식 요리를 하는 방식은 정말 한국과 달랐다. 독일인들은 정말 밥과 맛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 날을 보내자, 매끼 다른 걸 사 먹거나 해 먹는 게 과하게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독일에서 배운 단순한 삶의 방식으로서 매일 김밥만 먹는 점심, 매일 국수만 먹는 아침 등을 상상해 보았다. 실제로 라오스에서는 대체로 매일 점심에 국수를 먹는다.


방에서 조금 쉬려는데 숙소 건물에서 클레만 교수님을 마주쳤다. 클레만 교수님은 이곳의 엄마 같은 느낌이었다. 단발정도 기장의 곱슬머리에 안경을 끼셨고 언제나 잘 웃어주셨다. 교수님은 내게 “Are you enjoying it?”이라고 하시며 잘 지내고 있는지, 먹는 건 괜찮은지 물으셨다. 솔직하게 말했다.


"정말 좋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고 다른 사람들이 그림 그리는 걸 보는 것도 좋아요. 저한테는 정말 특별하고 좋은 기회예요. 하지만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건 힘들어요. 우유밥은 좀 이상했지만 파스타랑 빵 같은 건 괜찮아요, 좋아요!"


교수님은 우리가 이미 이 그룹에 적극적으로 들어가고 스며드는 걸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셨다. 그리고 비키 교수님이 말하는 건 통역을 할 수 있게 더 노력해 보겠다며 우리는 너희를 다 도와주고 싶으니까, 알아듣지 못할 때 옆에 친구 옷 잡고 영어로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문화를 가진 인터내셔널 한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이 여행이 더 특별하고 좋다고 말해주셨다. 너희가 있어도 된다,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들은 것이 너무 따뜻했다. 클레만 교수님의 통역 시도가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날 오후만큼은 우리를 자신의 옆으로 불러 몽땅 통역을 해주시려고 했다.


이후로 “what are you taking at the moment?”라는 질문은 생각만 하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용기를 내볼까 치면 괜히 아이들이 자기 나라 말로 떠드는데 내게 영어로 공유해 줄 의무가 없고 귀찮게 하기 싫었다. 셀리나에게 물은 적이 한번 있는데 그때 셀리나는 언제나 물어봐도 된다고, 자기네는 네가 이해를 못 하고 있다는 걸 자꾸 까먹는다고 했다. 어떻게 까먹을 수 있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그냥 우리가 있다는 걸 까먹을 수 있을 터다. (“You can always ask me if you want. I forgot that you are not understanding.”)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은 모두 여기저기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는 게 쉬는 건가 싶을 만큼 하루 온종일 그림을 그렸다. 대부분이 다른 일을 할 때에도 꼭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교수님이 요구하신 딕싯카드 그림 그리기였다. 우리만의 딕싯카드를 직접 만들어서 게임을 하자는 거였는데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뜻이 모호하고 특이한 그림을 정사각형의 카드 위에 그리면 됐다. 나도 카드를 여러 장 가지고 와서 그림을 그렸다. 헤드폰을 끼고 앉아 있던 새미의 옆에 은주와 자리를 잡았는데 곧 빗방울이 떨어져서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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