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겨주는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창문 바로 옆 4인용 나무 탁자에 앉아 새미는 나와 은주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질문은 관심의 표현이었다. 이렇게 다르게 생겼으며 생뚱맞게 이곳에 있는 나와 은주에 대해 궁금할 법한데도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새미의 질문이 고마웠다. 아빠가 모로코인, 엄마가 독일인이고, 누가 봐도 이민자 같은 아랍풍의 생김새를 가진 새미는 확실히 다른 ‘독일인’들과는 하는 얘기가 달랐다. 그 애는 ‘Germany’와 ‘German’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교환학생으로서 자주 받는 질문은 단연코 독일이 어떻냐는 질문이다. 독일인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저 질문을 건넬 때면 답변의 선택지는 매우 한정적이 되는데, ‘좋다’라고 밖에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궁금한 표정으로 뭐가 좋냐고 묻는다. 나는 공기가 좋고, 자연이 많아서 산책하기가 좋고, 자주 가는 마트 리들이 좋다고, 식재료가 풍부하고 야채와 과일이 저렴해서 좋다고 답한다. 무언가 그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답변이겠지만 이렇게 밖에 말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수도 없이 경험하며 외국인이나 여행자에게 쉽게 하는 ‘한국 어때? How do you like it?’라는 질문을 한국에 돌아가서 절대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차라리 아주 구체적으로 네가 지내는 곳이 어떤지, 어떤 음식이 마음에 드는지, 어제는 뭘 했는지, 혼자 있을 때 주로 뭘 하는지 묻는 것이 좋다.
그랬는데, 새미와의 대화는 시작부터 무언가 달랐다. 새미는 독일에 사는 것이 어떻냐고 묻더니 곧바로 솔직해지라며 독일의 싫은 점들을 먼저 읊기 시작했다. 좋다고 하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는 판이었다. (Be honest guys! Germany is shit!!!) 그 애는 무슬림으로서 독일에서 당한 차별의 경험들과 하프 모로칸으로서 모로코에서 경험한 다른 삶의 양상들을 지니고 있었다. 모로코는 덜 물질주의적이며 사람들은 새로 나온 아이폰이 없고 가난하지만 사람들은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독일인들은 삶을 즐길 줄 모르며 일만 한다고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축구와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새미는 독일에서 40대까지 돈을 벌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로 이민을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새미에게 돈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며 무척이나 중요했고,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동시에 여유 있고 느긋한 태도로 현재를 즐기며 chill 하게 사는 것도 그 애의 인생철학인 듯했다. 그 애는 미술과 기술 과목을 전공하는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과정을 밟고 있었지만 자신이 선생님이 되고 싶은 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교대를 입학한 건 안정적인 일을 원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다니고 있는 학교는 그 애의 누나가 나온 곳이기도 했다. 새미의 주종목은 학교 수업에는 없는 그라피티였다. 그는 그라피티 사진만 가득한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었다. 베를린에는 도시의 벽에 그라피티가 정말 많다. 하지만 그는 베를린을 싫어한다. 그곳에는 마약중독자와 미친 사람들이 너무 많고 도시는 너무 자유로워서 길거리에서 똥을 싸는 사람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가 입고 있던 흰색 반팔티의 가슴팍에는 그의 그라피티가 프린팅 되어 있었다. 그가 직접 만든 옷이었는데, 자신의 브랜드로 그라피티를 넣은 옷을 만들어서 브랜드 사장이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핸드폰 배경화면은 2년 정도 만난 그의 여자친구였다. 자기가 본 중에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이라며 첫 번째 연애인데도 결혼할 사이로 여기고 있었다. 사진을 보니 내 눈에도 진짜 예뻤다. 긴 갈색머리에 몸을 가볍게 타고 흘러내리는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백인 여자였다.
새미는 워낙 누구 하고나 대화를 잘하는 성격이었고 간단한 영어로도 우리 두 명을 빵빵 터지게 웃길 수 있었다.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의 가장 힘든 점은 남들이 웃을 때 같이 웃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서로 잘 모르던 독일 학생들도 하루 이틀이 지나자 서로 친해지며 하루 종일 장난을 치고 떠들었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도, 식사를 하고 계시던 교수님도 들리는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내용이 빠진 웃음소리가 소리로만 들리는 것이 힘들었다. 남들이 웃을 때 함께 웃을 수 없기에 하루의 웃음량이 빈곤했다. 새미와의 소통은 ‘나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로도 새미는 숨 쉬듯 농담과 방금 배운 짧은 한국어를 날리며 우리를 자주 웃겼다. 웃겨주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새미는 여기저기에서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알게 되는 것도 좋아했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북한의 김정은 밖에 없던 새미가 두 명의 남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알려달라고 했다. 먼저 한글로 ‘새미(Sami)’라고 써 주니 새미 특유의 늘 과장된 리액션으로(Ohhhhhhhh shitttttt it’s crazyyyyyyyy) 너무 멋지다며 좋아했다. 그 애는 한글로 쓴 자신의 이름을 그라피티 형식으로 그려서 저녁마다 교수님과 학생들이 모여서 진행하는 그림 피드백 자리에 가지고 가기도 했다. 그러더니 다음날부터는 공책까지 펴놓고 한국어 발음을 독일어로 받아 적으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안녕, 나는 새미. 나, 너, 우리. 나 독일 사람. 한국 사람. 사랑해요. 나도, 너도, 좋아!
이런 말들이었다. 곧 새미는 아침에는 우리에게 ‘잘 잤어?’라고 묻고 ‘응 나도’라고 답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풍부한 표정과 함께 ‘배고파?’나 ‘괜찮아?’라고 물었다. 그 애는 “나 너 안 좋아.”라고 말하고 인상을 찡그리는 우리를 보더니 자랑스럽게 “농담~~~~”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한국 사랑해요~ 우리는 친구~!’라고 말했고 그런 것들은 다 새미가 배우고 싶은 말을 골라 물어본 것들이었다.
금세 새미와 친해졌다. 새미가 한국어를 적극적으로 배우며 우리와 깔깔거리기 시작하자 다른 독일인 친구들도 주변에 모여 그게 무슨 뜻이냐 묻고, ‘안녕’ ‘농담’ 같은 말을 배워갔다. 한 번은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새미의 주도로 모두 함께 “농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