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장애인 여행 캠프에 워커로 가다(12)
자정이 되어가던 시간,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다. 중앙역에 가까워지는 기차에 앉아 창문에 코를 데고 어두컴컴한 바깥 풍경을 들여다볼 만큼 이곳이 반가웠다. 감히 말하자면 전쟁을 치르고 고향에 돌아온 전역 군인 같은 느낌이었다. 기숙사에 돌아가서 현서가 나를 위해 남겨 두었다던 잡채를 먹을 거라는 일념으로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빠르게 승강장을 벗어나며 은주와 현서가 있는 그룹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슈트트 도착! 자지 마. 나 잡채 먹을 거야.
그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하리야! 무슨 휴대폰을 그렇게 열심히 봐!” 화들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쳐들었다. 못 보던 아디다스 저지를 입은 은주와 흰색 A4용지를 들고 있는 현서가 있었다. 종이에는 “김하리 어서 와”라는 검은색 글씨가 커다랗게 씌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은주의 글씨였다. 친구들의 품에 차례로 안기자, 울음이 터졌다. 불긋불긋 여드름이 난 얼굴로 너무 힘들었다며 그들 위에 무너지는 모습이 고스란히 은주의 빈티지 카메라에 영상으로 담겼다. 그들은 깔깔 웃으며 나를 많이 쓰다듬어 주었다. 그들이 왔다는 사실에 연신 놀라며 양쪽에 그들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기숙사로 가는 S반을 10분 이상 기다려도 괜찮았다. 친구들이 왔으니 이미 집에 도착한 셈이었다.
현서가 냉장고에 넣어둔 된장찌개와 잡채를 먹었다. 가방 깊숙한 곳에서 오랜만에 열쇠를 꺼내 달그락 거리며 기숙사 플랫 문을 연다. 익숙한 냄새가 풍겨온다. 독일 마트의 세제 냄새와 옅게 섞인 중동의 향신료 냄새다. 내 방에는 한국에 있는 집에서 나는 것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내 침대, 내 잠옷, 내 창문. 내게 있는 여전한 것들 속에서 잠에 들었다. 부엉이 소리도 끼익거리는 창틀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늦게까지 잠을 자도 챙겨야 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 아침이 올 것이다.
한동안은 내게 나를 위한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수업에 가고 과제를 하고 산책에 가는 등 내 할 일을 하다가도 아무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허전했다. 다른 사람의 아침을 차려주기 위해 후다닥 옷을 입고 재빠르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보다 혼자 몸을 일으키고 무언가를 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