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생활의 외로움
심심함과 지겨움이 귀찮음을 이기던 어느 일요일, 혼자 슈투트가르트에 나갔다. 영화관에서 개봉한 지 조금 된 ‘인사이드아웃 2’를 보는 것이 외출의 목적이었다. 대부분의 영화를 독일어 더빙으로 보는 독일 사람들의 고집을 피해 원어로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았다. 청년까지도 할인을 해주는 독일이라 비싸지 않은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상영관으로 오르기 전 1층에 있는 팝콘 매대에는 단맛, 짠맛이라는 두 종류가 있었었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 주문한다. “단맛… 아니, 짠맛 작은 거 하나 주세요.” 받아 든 팝콘은 길에서 영화 시간을 기다리며 다 먹고, 서울에 있는 독립영화관처럼 작은 상영관에 들어갔다.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 2관과 비슷한 크기였다. 여느 한국 여름날의 영화관처럼 차가운 공기는 아니었다. 밖은 7월이지만 선선했고, 안팎의 온도 차이가 없어 걸치고 있던 긴 외투를 그대로 입고 영화를 보았다. 외국의 영화관에 가본 것도, 한국어 자막 없이 영어로 영화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애니메이션 정도는 볼 만 하네”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미있었지만 내게 기쁨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관을 벗어나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그 걸음은 아주 오래 이어졌다. 바뀌는 거리 풍경에 대한 호기심이 이어졌기 때문이고, 마땅히 멈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천 레스토랑에는 압페롤이나 와인을 한 손에 들고 수다 떠는 사람들이 있다. 서쪽 광장에는 디제이의 무대를 중심으로 한 축제가 열려 있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춤을 추고 요기를 했다. 즐겁고 북적이는 곳을 웃음기 없이 홀로 걷는다. 발에 낙엽이라도 스치면 좋을 텐데, 풍경은 아직도 너무 여름이다.
식당도 카페도 없는 조용한 마을에서 마트도 문을 닫는 단조로운 일요일을 보내던 나와 친구들을 떠올린다. 우리는 산책을 하거나 서로의 기숙사 식탁에 모여 과제를 했고, 독일의 일요일은 참으로 심심하다 여겼다. 그랬던 내 앞에 활기찬 일요일이 펼쳐진 것이다. 살아보지 못한 가능성, 누리지 못한 풍경, 초대받지 못한 이야기였다. 부러운 풍경 앞에 선 나의 존재감은 버려진 비닐봉투처럼 얇고 가볍다.
혼자임이 자유롭고 편안할 때도, 혼자임을 잊고 영감에 차서 도시를 누빌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뚜렷해진 방향감각에 의지해 어디든 쏘아다닐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혼자 노는 것이 좋다 하는 사람이라도 어느 날은 영원할 것 같은 밍밍한 권태로움과 어떠한 절망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 절망은, 내 존재를 잊지 못했을 때 보게 되는 일종의 진실 같은 것. 더 자주 깨어있기를 희망하는 존재가 자꾸만 찾아가는 곳. 그러나 더 행복한 것은, 우리의 존재가 기쁨으로 팽창하여 도시의 수많은 타인과 거리의 면면들을 보지 못하게 될 때가 아닌가. 힘이 빠질 때까지 걷다가 도시가 저물어 갈 때쯤 집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이 하루가 영화였다면 나는 대사 하나 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지루한 주인공이었으리라. 나는 그 모습을 피곤하게 지켜보며 절대로 이 영화를 다시 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관객이었으리라.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음악 세미나에서 만났던 슈테판과 슈테판의 여자친구 베네사를 만났다. 우연히 그들의 이야기에 섞여들었다. 스무살 여자와 스물 세살 남자는 벌써 결혼을 생각하고 미래에 함께할 세계 여행과 언젠가 만들고 싶은 1층에 음악 스테이지가 있는 카페에 대해 이야기했다. 같은 WG에 살고 싶어 베네사의 부모님께 그들의 사이가 얼마나 진지한 지 프리젠테이션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베네사는 반짝 반짝 빛나는 금색 주얼리와 톡톡 튀는 색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가 입이 찢어지게 웃으면 슈테판은 그의 금발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어깨에 팔을 두르고 대화를 하다가도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그 커플이 신기하고 귀여웠다. 베네사는 이런 말을 했다.
“난 혼자 있는 걸 너무 싫어해. 난 외로움을 많이 타고, 사람과 연결,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야.”
그 말은 왠지 너무 낯설게 들려서 나는 한참 그 말을 생각했다. 곱씹을수록 “나는 사실 물을 좋아해.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목이 말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기에 아무도 말하지 않을듯한 말.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잘 보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건 늘 투쟁이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척 연기하다 보면 정말 그렇게 되겠지, 희망하며 혼자 산책을 나가고 혼자 장을 보고 음식을 해 먹는 연습을 했다. 늘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게 더 좋았고, 혼자 마트에 가는 게 싫었음에도 훈련하듯이. 어릴 적 엄마와 떨어져 내 방에서 자기 시작한 이래로 늘 혼자 잠에 들었다. 그건 당연하고 편안해야 할 것 같은데 난 자주 허전하고 외롭다고 느꼈다. 무언가 있어야 할 것이 없다고 느끼며 몸을 뒤척였다. 이런 내가 참 이상하다고, 별난 마음이라고 여길 뿐, 혼자 있는 게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도 외로움을 많이 탄다. 하루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집에 있다면, 사는 게 훨씬 쉽겠지. 스스로를 까내리는 나의 못된 말들을 막아줄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겠지. 아무렴 함께 하는 게 전쟁 같아도 혼자 있는 걸 연습하는 것보다는 같이 있는 걸 연습하는 것이 달갑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게 싫다느니, 사람과 사랑이 필요하다느니,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어쨌든 혼자고 그건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저 베네사의 그 말로 깨닫고 말았다. 내가 그 말을 얼마나 공감하는 지, 혹은 하고 싶었는 지를. 감히 뱉어도 되는 걸까.
“이 방에 혼자 있는 게 정말 싫어.”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여전히 그건 정말 쓸데없는 말일지 모른다. 나도 베네사도 혼자 있는 밤을 피할 수는 없다.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슈테판과 베네사의 친구 타니타와 마주쳤다. 수업을 마친 저녁 시간이었고 캠퍼스의 1번 건물에서였다. 나는 그들이 계획대로 이제 같은 WG에 살고 있는지 물었고 타니타는 잠시 망설이더니 그들이 헤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