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페스티벌은 실패했습니다

소심한 나를 그냥 그대로 표현하기

by 반하의 수필



IMG_8338.JPG 위에서 사진만 찍고 말았어요


대학의 파티문화가 없는 한국에서 온 내가 독일의 파티에 많은 기대를 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첫 번째 파티부터 독일의 파티는 기대할 것이 못 된다는 걸 알았다. 외투를 한곳에 벗어두고 게임용 토큰처럼 생긴 입장표를 받고 들어가는 것까지는 왠지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파티 장소에 가자 그저 직사각형의 네모난 홀에 그리 어둡지 않은 빨간색 파란색 조명이 번쩍이고 옛날 유행하던 팝송이 흘러나왔다. 가식이나 능글거림이 없는, 진지한 독일인들의 파티란 그저 친한 친구들 몇 명이 동그랗게 모여 서로의 얼굴을 보며 몸을 둠칫둠칫 흔드는 것에 불과했다. 모르는 사람과는 거의 눈인사도 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한번 뒤집어질 정도로 몸을 꺾고 흔드는 건 우크라이나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 뿐이었다. 한편에는 독일인들이 늘 가라오케라고 부르는 노래방 기계가 있었는데 지독할 만큼 잘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엠알과 따로 노는 목소리가 시끄러울 뿐이었다. 지루한 음악에 은주는 늘 정말 취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파티라며 평소 잘 하지 않는 데킬라나 위스키를 들이 마셨다. 나는 살짝 취한 채 파티에서 나와 재미가 없다고 깔깔거렸다. 그날 이후로 독일 대학교의 파티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딱 하나, 7월 중순에 있는 Sommer fest (여름 페스티벌)는 기다려왔다. 여름 방학이 시작될 때쯤 열리는 파티로 평소처럼 직사각형의 실내가 아닌 미술 공간이 있는 BTZ 앞 야외 공간에 무대가 설치된다. 지난 교환학생이었던 친구도, 독일 친구들도 이 여름 파티를 학교에서 일 년 중 가장 크고 가장 재미있는 파티라고 말했다. 마침, 당시 어울리고 싶었던 슈테판, 세다 등의 음악 친구들이 파티에 함께 가자는 말을 했다. 이 여름 페스티벌만큼은 꼭 가고 싶다. 다음 해에 다시 올 수는 없을 한 번뿐인 여름 파티이기에 왠지 기대된다.


대게 조용하고 규칙적으로 열차가 지나는 바퀴 소리만 나던 기숙사 창문 너머가 초저녁부터 북적인다. 독일 힙합 음악이 빵빵하게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들고 기숙사 쪽으로 이동하는 아이들과 수업이 끝난 후 옷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가는 아이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풀밭과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떠는 아이들 때문이다. 파티의 입장은 오후 6시부터이니 오후 8시쯤 되면 파티에 사람이 찰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 사이에 독일 아이들은 저마다 친한 친구들끼리 기숙사 방에 모인다. 그곳에서 음악도 게임도 술도 즐기고, 취기 오른 상태로 파티에 몰려갈 것이다. 그곳에서 사는 술은 비싸기 때문이다. 이 시간을 ‘포어글뤼엔(Vorglühen)’이라고 부른다. 미리 데우다, 뭐 그런 뜻이다. 난 그것을 해본 적이 없다. 건너편 건물의 창문이 조명으로 번쩍이고 리듬이 빠른 음악이 들려온다. 여러 방향에서. 나는 아이들이 우르르 나오는 그 시간이 될 때까지 방에 머무르기로 한다.


저녁 잠에 들었다가 깨어났다. 밤 9시쯤이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간단하게 화장한다. 작은 실버 귀걸이를 빼고 플리마켓에서 커다란 골드 귀걸이를 꼈다. 나갈 생각을 하니 어김없이 긴장되어서 얼굴이 발긋해졌다. 음악 친구들이든 독일이든 외출이든,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난 정말 쫄보다. 밖에 나오니 파티에서 들려오는 전자음이 옅게나마 땅을 울리고 있음이 느껴진다. S반을 타는 굴다리를 넘어 학교 쪽으로 걸어갔다. 큰 계단 아래에 구급차 세 대가 만일의 사건을 대비하고 있고 그 옆으로 어마하게 긴 줄이 보인다. 파티에 입장하기 위해 이렇게 긴 줄을 서야 한다니, 난 절대 이것을 혼자 할 수 없다며 곧바로 뒷걸음질 쳤다.


한국의 대학교에서 야식 사업을 한다며 샌드위치나 도시락 따위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는데, 나는 왜인지 그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런 내가 키 큰 독일인들 사이에 혼자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없었다. 아마 이런 나를 다른 사람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꾸만 휴대폰을 들여다보지만 음악 친구들은 별다른 메시지가 없다. 그들은 이 긴 줄 너머 어딘가에서 놀고 있을 것이고 나의 유무는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돌아간다고 연락을 해야 하나, 줄이 너무 길다고 연락을 해야 하나 고민 하다가 학교를 빙 돌아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여전히 번쩍이는 창문이나 흘러드는 음악이 있는 그 방에.


그토록 고대하던 여름 파티에 가보지 못하는 걸까? 음악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는 걸까. 여전히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 몸은 마치 그곳에 나를 보면 안 될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작동을 멈췄다. 나 자신이 답답했다. 오늘은 결코 성공하지 못하겠다는 예감이 오싹했다.


조금 뒤 여름 방학을 맞아 2주 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는 은주와 인사하기 위해 그녀의 기숙사에 갔다. 밤 11시 즈음이었다. 나는 은주를 안았고 은주의 어깨가 축축하게 젖었다. 난 네가 떠남으로써 이 시절이 끝났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첫 학기를 함께 해준 너희(현서와 은주)에게 고마운 마음이 쓰나미처럼 쏟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번째 이유는 지금 파티에 가지 못하고 이곳에 있는 내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은주는 그것을 알지 못했으니 자신이 여행을 간다고 내가 이리 울 줄 몰랐다며 당황스러워 했다.


다음 날 1번 건물의 계단을 오르는데 왠지 익숙한 사람이 휙 올라갔다. 곧 그는 고개를 돌려 “하리!”라고 소리쳤다. 늘 그렇듯 밝게 웃고 있는 슈테판이었다. 어제 파티에 왔냐는 물음에 가지 않았다고, 줄이 너무 길고 혼자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자 그는 무척 안타깝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네가 어디에서 놀고 있는 줄 알았어. 왔으면 연락하지. 그러면 우리가 나와서 너랑 같이 줄을 기다려주고 같이 들어갔을 텐데. 다음엔 꼭 문자 보내!” 슈테판은 금세 인사를 하고 사라졌지만 따뜻함이 남았다. 지난밤에 세다에게도 어디냐는 문자가 왔었다. 이렇게나 다정한 친구들이라니, 내가 그곳에 갔다면 절대로 괜히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의 실패는 전적으로 나의 용기 부족 때문이었다. 다음이 있다면 더 용감해져야지, 더 적극적으로 굴어야지. 너희를 좋아하고 같이 놀고 싶다는 마음을, 나를 신경 써 달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걸 겁내지 말아야지. 쿨하고 싶다고 내 마음을 티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늘 마지막에 알게 되는 건, 소심한 나를 그냥 그대로 표현하는 게 괜히 무언가를 생략하고 혼자 행동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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