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친구의 집에 가다 (3)
해가 뉘엿뉘엿 지자 식탁 위의 노란 조명이 켜진다. 다섯 식구가 모여 앉은 저녁 식사에 초대된다. 아주 오랫동안 채식을 하신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 끓인 닭 수프(간을 보지 않고도 고기 요리의 달인이라고 한다)와 호박수프, 구운 채소가 식탁 위에 올라온다. 아직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인 남동생 데이비드와 미술을 전공하는 여동생 레아가 앞자리에 앉아 식기를 나눈다. 레아는 검은색 레이스 원피스를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에 레이어드 하고, 잔나가 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많은 악세서리를 하고 있다. 다들 잔나처럼 낯을 가리고 수줍음이 많다. 잔나는 베시시 웃으며 우리를 챙겨준다. 담백하고 건강한 음식들을 포크로 콕콕 찍어 먹으며 이 가족들을 지켜본다.
잔나의 어머니는 마른 체형에 아주 짧은 머리카락. 상의는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 티셔츠에 검은색 바지, 옷과 어울리는 양말에 광이 나는 검은색 단화를 신으셨다. 잔나는 집 안에서 저런 신발을 신는 건 엄마밖에 없다며 웃었다. 짧은 머리칼에 잘 어울려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가 풍겼다.
잔나의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스무살이 많으시다. 거동과 말이 느려진 아버지에게 아이들은 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모두가 아버지를 돌보며 여전히 존경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영국인 아빠의 독일어나 독일인 엄마의 영어는 그들에게 영원한 놀림거리다. 독일어와 영어가 단어마다 바뀌는 모습이나 그들의 영국식 발음을 들으며, 나는 현서의 귀에 신나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영화 작은 아씨들 보는 것 같아.”
이제 내 관심은 잔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다. 그들이 이 장면을 이루어낸 가장 큰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나셨어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내 눈이 반짝인다. 내게는 너무 평범한 그 질문이, 독일에서는 굉장히 사적이고 신선한 질문이었나보다. 부모님은 나의 독일인 같지 않은 질문에 놀라고 웃으며 하나씩 이야기를 꺼내준다. 잔나도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며 귀를 쫑긋한다.
잔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러니까 엘레나와 존은 한마디의 말도 허용되지 않던 기독교 명상 캠프에서 만났다. 캠프의 일주일이 끝나던 날 그들은 함께 교회 예배당에 앉아 있게 된다. 한편 존은 엘레나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반한 상태였다. 그때 어쩐지 그들은 강렬하게 느낀다. 이 사람이 나의 운명이라고. 결혼을 결심한 것도 그때였다. (가족들 사이에는 그들이 묵언 수행을 하다 만났기 때문에 아이들이 셋 다 말이 없고 조용한 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한다.)
엘레나:
우리가 서로를 보았을 때 알 수 있었어요. 복잡할 게 없었죠. 커튼을 걷었고, 햇빛이 쏟아졌어요. 내 결혼은 천국에 있었어요. We saw each other, and we knew. It was clear and it was very strange. My marriage was in heaven.
엘레나는 부모님에게 알리지도 않고 존의 고향인 영국 런던으로 가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을 할 때는 꼭 한 명의 증인이 필요했는데, 그때 길을 가던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그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연애는 없고 운명은 있는, 증인은 하나님인 그런 결혼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가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계단에서 본 사진을 상기하며 묻는다. “어떻게 웨딩 드레스를 검은색으로 할 생각을 하셨어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심각하지 않은 태도로 답한다. “드레스 샵에 들어갔는데, 마네킹이 그 드레스를 입고 있었어. 한눈에 저거다, 했지. 제일 예뻤거든.” 존과의 결혼을 결심한 것처럼 정확하고 빠른 선택이었다. 짧게 친 머리에 검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엘레나의 30년 전 결혼사진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결혼을 한 후 일 년간 존과 한집에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결혼은 결정 했지만, 혼자 지내던 일상을 포기할 준비는 되지 않았다는 엘레나에게, 존은 매주 편지를 보냈다. 당신만의 작업실을 마련하고 그 방에 절대로 들어가지 않을테니 집에 들어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일년의 구애 끝에야 존은 엘레나와 한 집에 사는 꿈의 결혼 생활을 이룰 수 있었다.
30년 전의 이야기이다. 이제 목소리는 느려지고 힘이 빠졌지만, 엘레나를 바라보는 존의 눈빛에는 여전히 사랑이 가득하다. 그의 말은 오랜 시간의 존경과 사랑이 서려있는, 엘레나를 위한 시다.
존:
그녀를 보았을 때 내 심장은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아직도 그렇게 느껴요. 이 여인은 남자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여인이에요.
My heart started to sing when I saw her. I still feel the same. This lady is the best lady in the world that man can wish for.
아빠의 말씨에 감탄한 레아는, 무례했던 자신의 전 남자친구를 떠올리는 듯 말했다. 앞으로는 남자친구를 자신의 아빠에게 보내서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 지 그 말씨를 배우도록 하고, 그 다음에야 자신에게 말할 수 있음을 일러둬야 겠다고 말이다.
존은 훌륭한 파트너였고 감독은 엘리나였다. 내게는이 이야기의 모든 우연과 운명이, 엘레나의 강인함과 통찰력, 예술성과 용기가 빚어낸 정확한 선택들로 보였다. 젊은 나이에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스무 살 많은 영국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고,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검은 드레스를 입고,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평생 독일에서 살았는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결혼 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살다 텃세 심한 독일의 시골 마을에 집을 지었고, 아이 셋을 키웠다. 마을에서 새로운 일자리도 구했다. 그가 멋지게 통념에서 빗겨가는 동안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고 또 누군가의 비난이나 걱정을 맞닥뜨렸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는 모든 풍경은 그녀의 결정이 옳았음을 조용히 확신시켜 줬다. 그녀의 속사정이야 모르지만, 이렇게 따뜻하고 이야기가 풍성한 가족식사 시간을 아무나 이뤄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강인했다. 잠깐이라도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천국같은 사랑을 감각할 수 있다면 20년이 빨리 흐르는 남편의 시간도 그녀는 기꺼이 감당할 것이다. 엘레나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고, 하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하프 연주를 꼭 듣고 싶다고 말했고, 그녀는 내 부탁에 못이겨 난로 앞에 앉아 하프를 켰다. 모두가 맞은 편에 앉아 그녀의 연주를 감상했다. 난생 처음 보는 커다란 악기의 선율이 이 집안의 구석구석에 스몄다. 존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잔나의 눈동자에 엘레나가 비쳤다. 레아는 동영상으로 그녀의 자랑스러운 엄마를 담았고 나는 그 옆에서 얇은 펜으로 하프를 안은 엘레나의 모습을 그렸다.
늦은 밤까지 거실에 남아 잔나, 레아, 현서와 이야기를 나눴다. 20대 초반과 중반의 여자들은 막 멜로 영화 한편을 감상한 것처럼 여운에 젖어 있다. 우리는 모두 연애중이 아니었고 연애와 결혼에 대해,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 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아주 깊이,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바랐다. 아름다움을 좇아 온 이 집에서 나를 꽉 채운 다짐이었다. 그 누구의 욕망도 아닌 오직 나의 확신에 의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반했던 아름다운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들은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다른 온도의 분위기를 뿜어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건 어쩌면 아주 외로운 일일 테지만, 남의 언어를 선택하지 않을 힘과 용기가 내게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자꾸 묻고, 이야기를 듣고, 사진과 그림으로 그들을 담는다. 누군가의 일상이 전혀 다른 일상을 사는 사람에게는 꿈이 되고, 나의 기록 안에서 그것들은 상상할 수 있는 형태로 보관된다. 잔나와 레아와 엘레나는 내 그림으로 담긴 그들의 모습을, 그 작은 종이를 손바닥에 올려두고 사랑스럽게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다. 더없이 예술가 같은 이들이 나의 그림에 감탄하자 부끄럽고 기쁘다.
바다와 산이, 히말라야의 꼭대기나 요트에서 보는 풍경이 아무리 좋대도, 별똥별을 볼 수 있대도 나는 이런 가족들의 풍경을 바라보는 걸 선택할 테다. 무엇보다 진짜 아름다움을 사람에게 발견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우여곡절 때문이다. 특히나 가족은 한 사람의 우여곡절보다 더 켜켜이 쌓인 사연들이 있다. 사랑스러운 저녁 식사 뒤에 냉랭하고 날카로운 날들이, 어렵고 지난한 시간이 있었을 것은 당연하다. 모두가 그러하니까. 그 위에 올려진 오늘 하루는 그래서 진짜로 아름답다. 내가 좋은 것만 본 거라고 하더라도.
엘레나는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말했다. 슬프고 진지한 평범한 장례식보다는 파티 같은 장례식을 했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미리 플레이리스트를 짜 놓아야 겠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신나지 않는 잔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런 계획은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엘레나는 어떤 드레스를 관복으로 입을지도 말할 기세다. “장례식에 온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 예술가의 정신이라며 잔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엘레나는 현서와 나를 배웅하러 잔나와 함께 기차역까지 나와주셨다. 그녀와 포옹하며 나는, 당신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엘레나가 내 귀에 속삭인다.
나 아직 살아 있어. I'm still alive.
우리는 웃음을 터트린다.
힘이 세다는 것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저는 아름다운 세계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 힘이 세지고 싶어요.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이것뿐이에요. 나는 다시 한 번 사랑하면서 살아보도록 힘을 총동원해보고 싶다!
<인생의 일요일들>, 정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