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독일 교환학생의 두 번째 개강
1교시의 시작 시각이 9시가 아닌 8시 15분이라는 것은 한 학기가 지나도 여전히 무시무시하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독일 학생들은 이미 어스름한 창밖을 걷고 있지만 나는 따뜻한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린다. 방 안의 공기는 냉랭하다. 알람을 듣고도 15분을 더 잠으로 고꾸라지다 몸을 일으킨다.
젖은 머리로 돌아온 방은 한층 밝아져 있다. 분홍색 줄무늬가 그어진 푸른 하늘이 보인다. 며칠 전 유튜브 영상에서 보았던 Sit around the fire라는 음악을 찾아들었다. 몽환적인 소리가 명상 음악 같다. 느린 선율을 따라 젖은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따듯한 바람에 머리를 말린다.
해야 하는 것이 있어 눈 비비며 일어나는 조용한 아침이 은근히 반갑다. 짐을 싸고 풀고 떠돌며 타인의 삶을 구경하던 일상은 여름의 더운 공기와 함께 지나갔다. 이제는 내 일상에 단단히 박혀있을 시간. 수업을 가는 것에 큰 기대나 기쁨은 없다. 이탈이나 모험을 하지 않고 일상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귀를 꽉 채우는 것이나 스무 명이 넘는 사람 중에 가장 못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리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그곳에서는 늘 “너는 여기에 왜 왔니?”를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물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떠나지 않고도 일상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모험들은 언제나 기다리는 중이다.
검은색 목티, 서울의 한 빈티지샵에서 산 자주색 나팔바지, 슈투트가르트 플리마켓에서 산 3유로짜리 녹색 겉옷을 입었다. 새로 산 아크릴 물감과 아크릴용 붓, 두 장밖에 남지 않은 수채화 종이를 갈색 코듀로이 에코백에 넣는다. 검은 워커를 신고 방을 나선다. 열쇠를 두고 나왔다고 플랫의 그룹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내고, 잔뜩 민망하고 미안한 얼굴로 모리츠나 마리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일은 지난 학기에 졸업이다. 이제는 플랫 문을 일부러 천천히 닫으며 열쇠를 챙겼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립스틱, 열쇠, 이어폰이 주머니에 무사하다.
공기와 맞닿은 피부가 차갑게 식는다. 차갑고 축축한 가을 냄새. 내 창문 아래에는 이제 나무에 달린 노란 나뭇잎보다 땅에 떨어진 잎이 많다. 이어폰을 끼자 부스럭거리는 낙엽 소리가 멎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빠르게 걷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학생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어릴 때는 새 학기 첫 수업이라면 뷔페에서 배가 아파 누룽지만 먹을 정도로 무서워하거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신났는데. 그리 어린 시절까지 가지 않아도 지난 1학기 때만 해도 수업 하나를 마치고 오면 곧장 쓰러져 잘 만큼 첫 수업은 쉽지 않았다. 긴장도 참는 법을 배우는 가보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미술실에 도착한다. 8시 15분이 거의 다 된 시간이다. 팔레트와 물통을 챙기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 섞인 은주의 모습이 보인다. 은주와 나는 늘 따로 수강 신청을 했고, 서로가 무엇을 신청했는지 잘 몰랐지만, 둘 다 미술을 좋아하니 늘 비슷한 수업에서 만난다.
은주와 나를 제외하고 아크릴화 기초 수업에 디귿자 모양으로 앉아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막 입학한 신입생들이었다. 그들은 차갑게 식은 감자처럼 굳은 얼굴로 교실 앞편에 고개를 고정했다. 그들의 어색한 긴장을 보자, 고작 반년을 더 다닌 나는 마치 선배와 같은 당당함을 느꼈고 그건 아주 재미있고 놀라운 일이었다. 너네는 여기가 처음이구나? 나는 이미 잉크와 종이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단호해 보이는 비키 교수님이 얼마나 따뜻한 분인지 너네는 아직 모르지? 수업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그렇게 우쭐해하다니 우스운 일이다. 어쨌든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교수님의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다. 눈치 보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공책을 펴두고 열심히 피피티에 보이는 단어들과 반복해서 들리는 말을 챗 쥐피티에게 물었다. 반복해서 들리는 말은 발음대로 입력하여 뜻을 물었다. 미술 수업 중인데, 하웁트가 뭐야? 이런 식으로. 이 수업에서 중요했던 단어는 인카나트(Inkarnat)로 피부색이라는 뜻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붓, 미술, 그리다는 말도 몰랐던 1학기의 첫 수업에 비하면 알아듣는 말도 많았고, 안 들리는 독일어라도 열심히 듣다 보면 푸스(Fuß, 발)의 복수형이 퓨세(Füße)라는 것 따위를 상기할 수 있다.
예술적이야, 재밌어, 교수님 보는 게 즐거워! 수업을 하며 학생들 사이를 거니는 비키 교수님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상했다. 학기 중에는 감흥이 없어지지만 긴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보니 이 공간과 교수님, 교수님의 수업 방식은 전부 무척 예술적이었다. 모든 책상에 노트북과 공책, 펜이 없고 물감과 커다란 종이가 있다는 것, 무채색의 옷 대신 알록달록한 앞치마를 하고 있다는 것. 적당한 흐트러짐이 좋았다. 교수님은 고전적으로 물감을 사용한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아이들을 한쪽으로 모으시더니 날계란을 깨뜨려 계란 흰자와 색소 가루를 손가락으로 섞었다. 주황색 물감이 묻은 그 손이 자연스럽게 겉옷 가슴 부분으로 가더니 옷에 쓱. 왜 그 흑청색 재킷의 가슴 부분에 물감 자국이 모여 있는지 알 수 있어 웃음이 났다. 교수님이 자주 입으시는 게스의 청바지나 갈색 스웨이드 구두도 예뻐 보였다.
다음 수업은 사진 기초 수업으로 현서, 은주, 새미와 함께 듣는 수업이다. 한국 친구들과 같은 수업을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꼭 한국인 섬에 떨어진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더 떨리기는 하지만, 혼자 있는 편이 독일 친구들과 섞이기가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들으려 했던 수업을 듣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새미는 다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내가 이 수업을 드롭하려고 했을 때 끈질기게 막아섰다. 그 아이의 끈질김은 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던 사람이 커피를 마시게 될 정도고 나는 유독 새미의 간절한 표정에 잘 넘어가는 편이었다.
은주와 밖으로 나가자 함께 사진 수업을 들을 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곧 노란 공구함처럼 생긴 카메라 가방을 든 한국인 세 명은 1번 건물로 들어간다. 딱딱한 밑창의 부츠를 신어 딱딱한 발소리를 내는 은주가 피곤한데 웃기다는 듯 말했다. “좀 전에는 붓을 들었는데 지금은 카메라를 들고 있고 오후에는 바이올린을 들어야 해. 무슨 예술 종합 유치원에 다니는 것 같다.” 그날 하루에 아크릴화, 사진수업, 타이포그래피 수업, 합창수업, 배구 시간이 있던 나도 비슷한 처지였다. 예술 학부가 없는 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우리에게 다양한 예술 수업은 놓치기 아까운 기회였다. 그래서 학점도 필요하지 않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며 기진맥진 해질 만큼 긴 하루를 보냈다.
같은 교실에 들어가 셋이 전부 다른 줄에 앉는 건, 우리끼리 모여 있는 것보다는 독일 친구 옆에 앉는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 옆에는 새미가, 은주의 옆에는 금발 머리 백인 여자애가, 현서의 옆에는 동양인 얼굴의 독일 여자애가 앉았다. 그들을 기웃거리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어째서인지 우리 셋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서로 아는 만큼 알려줬던 적이 가장 많다.
사진 수업이 끝나면 새미와 세 명의 한국인은 늘 멘자(학생 식당)에 갔다. 새미는 그곳의 요리가 최악이라며 늘 표정을 잔뜩 구기고 느리게 음식을 씹었지만, 요리는 하루에 한 번도 벅차다며 매일 점심을 그곳에서 해결했다. 멘자의 음식이란 싸지 않은 싸구려 음식이었다. 세 명의 한국인은 국과 반찬이 나오던 한국의 학식당을 그리워하며 오직 새미와 함께하는 월요일 점심에만 그곳에서 밥을 먹었다. 그날 나는 버섯 소스에 감자로 된 무언가를, 은주와 현서는 동그란 형태의 감자튀김을 먹었다. 새미는 굳은 치즈와 잘린 토마토가 올라간 토마토 파스타와 1유로짜리 샐러드를 먹었다. 건강을 위해 샐러드를 챙겨 먹으라는 엄마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싫어하는 야채를 매일 먹는 모습이 웃겼다.
나를 도와주던 옆자리 친구도 과제가 너무 많다며 수강 철회를 추천한 타이포그래피 수업과, 강당을 꽉 채운 많은 사람들에 기가 빨린 합창 수업, 새미가 같이 가자고 졸라서 갔던 배구 시간까지 끝내고 방에 돌아오자 밤 10시가 넘었다. 잘 모르고 잘 못하는 상태로 지낸 하루. 어느 때와 같았지만 그 하루가 너무 길었다. 특히 처음 해보는 배구를 나보다 힘이 열 배는 센 듯한 독일 애들 사이에서 규칙도 알지 못하는 채로 하려니 눈치를 보느라 진이 다 빠졌다. 다행히 내일은 수업이 없다. 못 알아듣는 말을 몇 시간 동안 애써 들을 필요도 없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된다. 익숙한 곳에 머물며 내가 아는 만큼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