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자유의지
2019년에 황정민 배우가 연기한 연극 <오이디푸스>를 봤다. 그 때 블로그에 쓴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이런 텍스트가 적혀 있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깨닫고 스스로 눈을 찌를 때
천장에서 붉은색 천이 내려오며 그의 대사 하나하나에 맞춰 땅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오이디푸스, 신이 내린 운명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예정된 비극으로 이끌린 자,
자신의 발을 바라보며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끝없이 되뇌이던 그의 모습,
그 장엄하고 무거운 인생을 엿볼 수 있었던 연극이었다.
대학 시절 친했던 교수님이 있다. 교수님이 5주동안 일반인을 대상으로 영문학 drama 수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단번에 수강신청을 했다. 지난 주에 첫 수업이 있었는데, 그 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다루었다. 5년 전으로 돌아가 대학생이 된 느낌으로 강의를 들었다.
소포클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작가이다. 120권 이상의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는 '인간'이 삶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그는 작품들에서 타협을 모르고 운명에 맞서는 인물들을 묘사했는데, 오이디푸스 왕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이디푸스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진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취한다는 예언을 받은 그는 부모님에 의해 버려진다. 그렇게 이웃 나라의 왕자로 입양되어 자라게 되는데, 결국 그의 모든 삶은 정해진 수순대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운명을 피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자기도 모르는 새에 아버지를 죽이게 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교수님의 강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오이디푸스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태도'였다. 삼거리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이 아버지였다는 사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왕비가 어머니였다는 사실. 이 진실에 가까워질 때마다 그는 피하지 않고 사실을 받아들인다. 주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그만 파고들라고 여러번 만류하지만 그는 끝까지 진실을 추적한다.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하고 그녀의 옷핀으로 자신의 두 눈을 찔러버린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아갔지만,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실명시키고 왕위를 떠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다는 걸 표명했다. 신이 내린 운명에 저항해 인간에게도 스스로 삶을 살아갈 힘이 있음을 나타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국 이 작품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어진 운명에 수긍하며 살아갈 것인가, 또는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갈 것인가. 나는 운명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념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