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This morning)
배철현 작가님의 <사소한 질문 >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작가님은 Mary Oliver의 시를 소개하며 아침마다 즐겨 읽는다고 한다. 읽을수록 전하는 뜻이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Mary Oliver는 자연을 통해 삶의 본질을 끄집어내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매리 올리버의 오늘 아침( This morning)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오늘 아침 붉은 새의 알들이
부화했고 벌써 새끼들은
먹이를 달라고 짹짹거립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저 "더 줘! 더 줘!" 하고 계속 외칩니다.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들은
단 하나의 생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은 아직 뜨이지 않았고,
그들을 기다리는 하늘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수천, 수백만 그루의 나무들에 대해서도.
심지어 그들에겐 날개가 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마치 단순한
이웃의 일처럼,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This Morning
This morning the redbirds’ eggs
have hatched and already the chicks
are chirping for food.
They don’t know where it’s coming from, they
just keep shouting, “More! More!”
As to anything else, they haven’t
had a single thought.
Their eyes
haven’t yet opened, they know nothing
about the sky that’s waiting.
Or
the thousands, the millions of trees.
They don’t even know they have wings.
And just like that, like a simple
neighborhood event, a miracle is taking place.
메리 올리버는 유명한 시인이지만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없었다.
가시나무의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라는 가사처럼.
내 가슴속엔 엉뚱한 것으로 가득 차 감동적인 시가 자리 잡을 만큼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배철현 교수가 소개한 위의 시를 찾아보고 나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성경의 어느 구절을 읽을 때처럼 가슴속 깊이 파고드는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다.
This morning 시를 음미하며 행복에 젖어든다.
나이는 들었지만 인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보낸 세월을 뒤돌아 본다.
항상 뭐든지 더 줘 더 주라고 외치던 그동안의 부질없는 욕심과 자세에 부끄러워진다.
한편으로는 나이를 핑계로 안주하고 머무르며, 잠재력(potential)과 가능성(possibility)의 단어를 모두 상실했었음을 자각해 본다.
최근에는 Red bird처럼 내 인생에 날개가 있는 것조차도 아예 잊고 살아왔음을 자각한다.
Oliver의 이 짧은 시가 어쩌면 이제부터 내 인생을 확 바꿀지도 모르겠다.
브런치에도 이제 내 인생의 날개를 펼쳐본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처럼 내 각오는 지금 범상치 않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