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산책
얼마 전 청계천에 쉬리가 돌아왔다는 기사를 보았다. 피라미, 붕어, 송사리 등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늘어나고 있다니 반가웠다.
청계천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것은 한국에 갈 때마다 고향처럼 편안함을 주는 곳이라 그렇다.
그래서 한국 방문 시에는 항상 청계천이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하곤 한다.
서울 속의 시골길을 걷는 듯한 이색적 기분이고 거리의 자동차 소음을 멀리해서 느낌이 좋다.
청계( 淸溪 )를 따라 흐르는 맑은 물, 풀, 꽃, 나무, 바람소리, 물소리, 징검다리, 물고기, 왜가리...
이 모두가 정겹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모든 길은 청계천으로 통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서울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기에 근접성이 아주 좋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은 모두 청계천 산책로를 통해서 움직인다.
설령 돌아가는 길이 거리가 멀다 해도 쾌적한 청계천을 통해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가끔 셀폰으로 주변 풍경을 담는 것도 재미있고 여유롭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에는
광화문 교보문고로 책구경을 갈 때에도,
을지로나 명동의 맛집을 갈 때에도,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하러 갈 때도,
무교동 은행에 가야 할 때도,
시내 백화점을 갈 때에도,
가까운 지하철역을 찾아갈 때에도,
버스를 탈 때에도,
명동성당을 갈 때에도,
서울 순례길을 다닐 때에도,
인사동 거리를 갈 때에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갈 때에도,
광장시장이나 동대문 역사공원을 갈 때에도,
북악산 산행이나 낙산 성곽길을 갈 때에도 청계천을 통해 다녔다.
내게 모든 길은 청계천으로 통하는 셈이다.
그리고 조금 먼 거리라도 나는 마냥 걷는 것이 좋고 또 행복했다.
청계천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내에서 생긴 모든 개천을 품고 동쪽으로 흐른다.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져 한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청계천은 우리 인생과 같다.
이는 희로애락의 일상사가 모이고 모여 인생의 큰 강으로 흘러가는 모습과도 같다.
또한 청계천에는 모전교, 광통교, 광교, 장통교, 삼일교, 수표교, 관수교, 세운교, 배오개다리, 새벽다리, 마전교, 나래교, 버들다리, 오간수교, 맑은 내다리, 다산교, 영도교 등 22개의 많은 다리가 있다.
삶의 강 또한 도전이 요구되는 험한 물결과 같아 우리 인생도 이보다 더 많은 다리를 건널지도 모른다.
나는 서울 토박이가 아니라 청계천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한다.
다만 재수시절에 청계고가도로로 통학을 했던 산 증인이고, 대학가서는 교재와 일반 서적을 사러 평화상가의 중고서점가를 자주 들리곤 했다.
청계천 판잣집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최근 박물관에 가서야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청계천은 본래 아낙네의 빨래터와 아이들의 놀이터로 쓰일 정도로 맑은 개천이었다 한다.
근대에는 폐수와 악취로 오염의 수난을 겪어 복개되었다가 다시 철거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청계천에도 흑역사가 있었던 셈이다.
오늘날 청계천 모습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 기특하기만 하다. 탈바꿈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것 같다.
가끔은 징검다리도 건너며 다리를 하나씩 하나씩 지나다 보면 지루하지 않다.
청계천 다리마다 스토리가 있어서 좋다.
그 스토리를 떠올리며 시간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어떤 다리는 먼 역사 속으로, 어떤 다리는 나의 과거로 돌아간다.
모전교와 광교의 역사는 조선 태종 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천 보수공사하던 서민들과 과일을 사고파는 서민의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
광교와 삼일교 사이 석벽에는 벽화인 '정조대왕 능행반차도'가 있다.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정조 능행차 퍼레이드를 공연한 추억이 있다. 능행차의 장엄함과 함께 잊혀간 동창의 얼굴들이 스쳐가며 그리움도 느껴본다.
수표교 근처에는 이벽의 집터가 있어 천주교회의 성지이다. 당시 이벽과 여러 신자 들은 박해를 피해 역관 김범우의 집 명례방까지 이곳을 오갔을 것이다.
내 신앙의 뿌리가 수많은 순교자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면 이곳을 지날 때 숙연해질 뿐이다.
김범우 집터는 오늘날 명동성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버들다리 위에는 자신의 몸을 불태워 노동자의 권리를 알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동상이 있다.
동쪽으로 한참을 걸으면 소망의 벽을 지난다. 황학교 근방에 있는 이 소망의 벽은 수많은 글귀와 그림들로 소망을 담고 있다.
난 지금 이국만리에서 무엇을 소망하고 있는가도 생각해 보는 순간이다.
지난번에 광화문역으로 가다가 본 야외도서관 ‘책 읽는 맑은 냇가'도 느낌이 좋았다. 잠시 자리를 잡고 책을 펴 읽어본다. 이방인이 아닌 마치 20년 전의 서울시민인 것처럼.
그 청계 냇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그냥 포근히 안아주어서 좋았다.
잠시 어릴 적 시냇가에 앉아 발 담그고 책 읽으며 꿈을 키우던 산골 소년이 되어본다.
한국에 머물 때마다 즐기는 청계천 산책은 지금 캐나다에 와서도 그립다.
청계천의 올 가을 모습은 어떨까?
냇가의 억새, 산수유의 붉은 열매, 담쟁이덩굴과 여러 나무들의 단풍잎...
청계천의 올 가을은 곽효환의 시 '청계천'의 구절처럼 일찍 오고 늦게까지 머물면서 모든 이에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