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통화는 내 기억의 실타래가 되고
크리스마스 데이에도 일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한인 마트로 연중무휴이다. 틈새시장이랄까.
일종의 공휴일 특수를 누리는 편이다.
법정 공휴일이니까 평소 기본임금 외에 1.5배의 휴일 근무 수당을 더 받으니 개인적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
아침 일찍 성당 미사도 드리고 출근했으니 그래도 크리스마스의 기분은 남아있다.
커스터머 서비스팀에는 전화가 평상시보다 많이 걸려 온다.
마트는 문을 열었는지, 몇 시에 문을 닫는지 캐나다 현지인의 문의가 절반을 차지한다.
캐나다의 대부분 쇼핑몰(mall)이나 마트는 크리스마스 데이처럼 큰 공휴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특별한 전화문의를 받았다.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한국인 아주머니의 전화문의였다.
"북어와 실타래를 파느냐"는 것이다.
우리 마트에 북어는 있으나 실타래는 없다고 했다. 사실은 북어와 북어채, 북어포를 헷갈려 얼떨결에 응답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제품문의를 받았으나 좀 특별하다고 느껴 수산팀 직원에게 그런 것을 왜 찾는 거 같냐고 물어보았다.
아마 자동차 신차를 구입하고 고사를 지내려고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고사를 지낸다고요?'
그건 미신이 아닌가 하며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사실 '고사'란 단어는 머릿속에서 화석과 같이 굳어진 봉인된 단어였다.
종교를 갖고 있고, 모국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하는 나로서는 그런 종류의 말들은 기억 속에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궁금하여 다음날 고사, 북어와 실타래등 이런 저런 것을 찾아보니, 민간신앙이나 무속에 관련된 단어들까지 우르르 검색되었다.
고사란 무엇인가?
왜 하필이면 북어와 실타래인가?
그런 쓸데없는 궁금증을 탐색하면서 고해성사라도 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엄습해 왔다.
하지만 그 잊힌 단어들은 기어이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해 냈으며, 우리 집도 부모님이 본격적 신앙을 갖기 전에는 고사를 지냈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시골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 집도 이웃 집도 고사 지내던 일들이 희미한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백설기, 팥 시루떡등의 고사떡을 이웃과 나누어 먹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미신이라기보다는 동네사람들의 정성스럽던 마음과 후한 인심으로 더 다가온다.
전통적으로 북어와 실타래를 묶는 것은 액운을 막고 무병장수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북어는 입이 커서 액운을 삼키고, 밤에도 감지 않는 큰 눈으로 잡귀를 감시하며, 알을 많이 낳는 습성으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라 한다.
역시 우리 조상들은 사물의 특성을 관찰하는 눈이 참으로 예리한 것은 인정한다.
북어는 명태, 동태, 코다리, 노가리, 생태, 황태, 백태, 흑태, 건태 등 라이프 사이클 또는 건조상태에 따라 여러 이름을 갖고 있음이 놀랍다.
명태 알로는 명란젓, 창난젓, 아가미젓을 만든다.
명태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생선이며 껍질, 내장까지 먹는다.
또한 탕, 찌개, 조림, 찜, 구이 등 요리가 가능하다.
마트에서 그동안 무심하게 보던 동태를 이제는 다양한 모습과 쓰임새로 인해 더 친근히 바라보게 되었다.
한편, 실타래는 길게 이어진 실처럼 수명이 길기를 바라는 장수와, 일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리기를 바라는 행운의 뜻을 담고 있다.
자녀들 돌잔치나 백일잔치에서 무명 실타래를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의미를 갖고있다.
아직도 한국에는고사를 지내기도 한다는데,집을 짓거나 차를 새로 샀을 때 북어와 실타래를 묶어 제물로 사용하는 것은 안전과 평안을 빈다는 의미라 한다.
캐나다에서 고사를 지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지난번 전화문의로 고사일 거라 추측해 볼 뿐이다.
나는 민간 신앙과 무속에 대해서도 찾아 보았다.
민간신앙과 무속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혼용되기도 하지만, 민간신앙이 무속을 포함하는 더 큰 범주라고 이해했다.
이런 것은 현대 종교 입장에서는 부정적 시각이지만, 예술에는 영향을 미치는데 최근에 인기 높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처럼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캐나다 밴쿠버에도 해마다 밴쿠버 한인문화축제 (Korean Cultural Heritage Festival)가 열린다. 한인의 정체성을 찾는 전통무용, 사물놀이, 고유 의상, 케이 팝 등 한인문화가 폭넓게 선보이는 자리다.
아무리 종교나 과학이 발달하고 AI시대라도 민족 문화에는 민간 신앙이 녹아있으며 어떤 모습으로든지 어디에서든지 살아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날 북어와 실타래를 묻는 전화 한 통화는 내게도 유년의 기억 실타래가 되고, 민간 신앙까지 뒤돌아보는 마중물(trigger)이 되었다.
아울러 북어는 양명문 시인의 '명태'라는 시까지 그 기억을 넓혔다.
이 시는 명태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일생을 잘 그리고 있다.
명태조차 본래의 모습이나 이름으로 이 세상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는 정체성으로 확장시킨 듯하다.
명태의 일생을 시로 읽고 노래로 듣다 보면, 태평양을 건너 이민을 온 나도 언제나 어디서나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해 준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던 원산(元山) 구경이나 한 후
이집트의 왕(王)처럼 미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고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양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