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외 편입니다
감기로 아팠다. 계속되는 기침과 콧물에 근육통이 생기고, 두통이 생겼다.
그래서 책을 읽지 못했다.
이번 주에도 책장 턴 감상문은 올리지 못하겠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어린 시절 독서 습관 중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무척 건강한 편이다. 어릴 때도그랬지만, 제법 잔병치레가 생긴 지금도 건강한 편에 속한다. 어린 시절 잔병치레가 거의 없는 만큼 한 번 아프면 크게 앓았는데 그럴 때는 열도 많이 올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높은 열로 아무것도 못하고 끙끙 앓을 때면 밥도 간신히 먹을 만큼 잠만 잤었다. 아프다고 칭얼거리기보다는 혼자 끙끙 앓는 편이어서 이불 속에 들어가면 가족들 중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열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이상하게 허한 순간들이 찾아왔었다. 가족들이 지척에 있음에도 세상에 혼자 남은 것만 같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해지고, 내가 속한 세계가 나와 너무 떨어져 있다는 허무함 같은 외로움이 열감의 자리를 채웠다.
그러면 난 거실의 책장으로 갔다. 이부자리에서 벗어나 방문을 열고 부딪치는 찬 기운, 디디는 거실 바닥의 차갑거나 거친 감촉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었다. 책장의 유리문을 열고 꺼낸 책들은 대부분 모험담이었다.
야생 오리들을 따라 떠나는 거위 등에 타고 야생의 모험을 떠나는 닐스를 따라가기도 하고, 신밧드를 따라 아라비아의 여러 곳들을 돌아다니며 잔인하고 무서운 신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허전함도 외로움도 나에게서 멀어졌다. 모두 무사히 돌아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들은 내게 만족감과 함께 나 역시도 괜찮으리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비논리적인) 위로를 주었다.
이제는 아프더라도 외로움이나 허무함을 느끼지 않는다. 어릴 때 느꼈던 그 감정들은 인간 본연의 고독에서 비롯되었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어쩌면 아픈 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어떤 순서대로 해야 하나. 현실적인 문제들에 그 고독감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모함담의 결말이 안겨주던 안도감이 없더라도 그 고독감과 함께 살아갈 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의미일 게다. 그리고 일상의 풍파를 헤쳐나가다 보니 굳이 상상 속의 모험을 떠날 이유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모험담과 그 습관은 잊혔었다.
콧물 때문에 숨쉬기가 어려웠기 때문일까.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런데 문득, 어린 시절 책 읽기의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책장을 훑어본다.
<닐스의 이상한 여행>도, <꿀벌 마야의 모험>도, <신밧드의 모험>도, <아라비안 나이트>도 없다. 그나마 친구 카이를 구하기 위한 게르다의 모험이 담긴 <눈의 여왕>이 보인다. 결말은 빤히 아는 이야기. 아!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구매해서 읽다가 만 북유럽 동화가 있었구나! 생각났다. 그 동화들 중에도 모험담이 있지 않을까?
오래간만에 나를 찾아온 어린 ‘나’와 추억 놀이를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