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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만화입니다

- 만화 <세상을 가르쳐준 비밀 18>을 읽고

by 준 원 규 수

다음에 감상을 올릴 책을 두 달이 지나도록 다 읽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말 이번 주에도 글을 올리지 못할 것인가 했는데

책장 구석에서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만화책 한 권을 발견했다.

책이 출간될 때마다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는 만화책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


만화책마저 산 지 4년이 지나도록 읽지 않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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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물과 나 사이에 얼마나 오랜 시간의 거리가 생긴 것인지 ㅠㅠ



나는 잔잔한 기담을 좋아하는데

이 만화가 딱 그런 서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 만화가 하츠 아키코가 만화 잡지에 연재하던 만화인데 격월 연재만화다 보니 단행본 출간 기간이 길고

4년 전 18권에 이제 단행본 출간이 없으리라는 암시를 주는 인사를 남겼다.

출판사 쪽에서는 휴업으로 하자 했다지만

작가의 인사말에는 이렇게 열린 상태로 문을 닫아도 좋을 거 같다는 내용이 있어

정말 다시 단행본이 나올까 싶기도 하다.


만화 표지.jpg


이 만화는 골동품 가게 <우유당>을 중심으로, 사람이 아닌 '영(靈)'들과의 소통이 가능한 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묘한 이야기들이 옴니버스식의 단편으로 이어지는 형식이다.

시대적 배경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직후인데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자연의 세계에 속한 영(靈)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치부되어 버리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물건에 대해 누군가의 어떤 진심이 담기면 그 사물에도 염(念)이 생긴다는 토템적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 장인의 물건보다 많이 팔리는 공산품이 대세가 되는 산업 혁명의 기점이 시대적 배경이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단편이 가진 생략과 여운이 묘미가 제대로인 만화였는데

18권은 뭔가 이야기 얼개가 허술해진 느낌이었다.

인물들의 독백도 지나치게 생략적이고, 번역의 문제인 듯싶지만 비문도 보여서 자꾸 다시 보게 되었다.


염을 담은 물건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과의 갈등과 인연을 그리며 18권까지 오다 보니

이야기 전개도 비슷비슷해지고

큰 얼개로 보였던, 수선사와의 인연이 더 그려질 것만 같았는데

그녀의 이야기는 일단락된 후 더 나오지 않았다.

하긴, 여기서 러브 라인이 만들어지면 작가의 처음 의도와는 멀어질 위험도 있을 테니 이해도 가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일본의 여러 풍속이나 토막 역사 상식도 알게 되고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에 대해서도 한 번씩 생각해 보는 습관도 갖게 되었다.


이 비슷한 우리나라 웹툰도 있는데

카카오웹툰에서 연재되었던

젤리빈 작가의 <어둠이 걷힌 자리엔>...

화면 캡처 2025-10-05 231821.png

사념이 깃든 물건을 매개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비슷하고,

우리가 산업화, 근대화되던 일제강점기를 배경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아키코 하츠의 시선보다 더 현실적이고, 깊다.


자본주의가 사회에 침투하면서 자연을 잃고, 순수를 잃고,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연과 함께 우리에게서 멀어진 민속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딱딱한 인문 서적이나 사회 서적을 통해서 이론적으로 접했던 내용들이

재미있는 이야기와 구체적인 그림을 만나 훌륭한 구체성을 띠며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훌륭한 만화다.

물론, 이 작품도 모두 구매해서 보관해 두었다.



긴 연휴 동안 가볍게 이 만화들도 전편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

두툼한 인문서적을 읽는 것만큼이나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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