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일곱 번째 상담 episode 1.
─잘 지내셨나요? 저는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갔다 왔어요. 하지만 끝내 속 마음을 꺼내지 못했네요. 용기가 없는 건지 타이밍을 못 잡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뭐 크게 불편하신 게 있나요?
선생님이 덤덤하게 주제를 전환했다.
─딱히 불편한 건 없어요.
─좀 그래 보이네요.
─근데 왜 ADHD 검사를 꼭 한번 받아보고 싶다 이런 생각은 왜 드는지 모르겠어요.
─ADHD 같지는 않은데요?
─한때는 멀티태스킹을 맹신하면서 살아왔었던 때가 있었어요. 근데 멀티태스킹이라는 건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저 뇌가 전환을 빨리빨리 하는 거라고 하던데... 예를 들어, 책을 읽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많은데 그때마다 메모하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하고 하는 일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빈번하거든요. 집중력이 오래가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런 건 뭐 정상이죠... 혹시 좀 부주의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부주의한 거요? 아니요. 딱히 그런 건 또 없어요. 근데 왜 자꾸 이런 생각이 들까 싶은 거죠. 모르겠어요. 이런 것들조차 나를 이해하려고 뭔가 계속 내가 시도하는 과정인 건가... 싶기도 하고요.
─뭐, 요즘 워낙 ADHD가 유행이라... 처음 상담하러 찾아오셨을 땐 좀 많이 힘들어 보였어요. 화가 많이 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우울도 많아 보이고 그랬는데 조금 안정이 되신 것 같더라고요.
─네. 일단 운동을 꾸준하게 계속하고 있고요. 수면 패턴도 가급적이면 규칙적으로 하려고 하고 있어요.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면 최소 5분에서 10분 정도는 명상을 하는 습관을 만들었어요. 무엇보다 시간이 그간 저의 격한 감정과 상황을 누그러뜨린 것도 있을 거고요. 뭐든 시간이 약이니까요.
─제가 느끼기에는 초반에는 거의 부부 사이의 문제를 남편한테 거의 99% 돌리시는 것 같았고 지금은 선생님 몫도 보려는 태도로 많이 바뀌셔서 아마 그게 큰 영향을 좀 주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좀 들기는 하네요.
─그런 측면도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나만의 성을 무너뜨리고 자꾸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밖을 보려고 하는 그런 마음가짐이랄까요... 아! 최근 제가 가깝다고 느끼는 지인들을 계속 만나서 마음 속 사연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어요. 어제도 일적으로 알게 된 선배를 만나서 솔직하게 얘기해 봤어요. 사실은 그동안 부부 관계가 좋지 않고 대화 단절한 기간도 꽤 오래됐다 설명하며 이런저런 고충을 털어놓은 다음 여쭤봤죠. '선배님은 어떠셨습니까, 다 원래 이렇게 사는 건가요?' 하면서... 그러니까 선배님이, 자기는 결혼한 지 30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자주 싸운다면서 여러 경험을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마주한 이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도 말씀드리고 의견을 여쭤보니, 선배님은 딸도 있는 상황에서 제가 조금 무책임한 것도 있는 것 같다며 걱정하시더라고요.
─네.
─덕분에 다시 한번 제가 이기적인 건가에 대해 깊게 생각도 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오히려 애가 8~9살쯤 되고 설명을 했을 때 이해는 못하겠지만 그런 상황에 대해 말해 줄 수 있고 그거를 당연히 상처가 되겠지만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딸의 몫이고 제가 그거를 다독여주는 것도 이후 저의 몫이고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연히 생각을 했었는데 그분 말씀으로는 애가 성인이 되면 이혼하라 하던가 그냥 살라고 하시더라고요.
─다 그런 거라며... 근데 다 그런 거야라고 사는 삶을 항상 나는 다를 거야 하면서 노력해 왔던 제 과정이 뭔가 다 지금 이번에도 똑같이 제가 하지 않으면 뭔가 원래 그런 거야. 어차피 어떤 아등바등해봤자 이쪽 결론으로 뭔가 다 귀속되게 돼 있어. 약간 운명론처럼 말씀을 하신 부분도 좀 있어서 조금 이해는 안 됐어요. 근데 뭐 인생 선배님이시고 그분의 삶은 그랬구나라고 그냥 참고를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주변 사람들이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을 때 한번 고려해보셨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요. "누구나 다 아등바등 사는 거야. 결국 나도 내 부모처럼 똑같이 됐어" 이런 관점으로 받아들이시기보다는, 부부 사이는 원래 힘들어. 원래 부부는 서로 다른 사람이고 끝까지 맞추기는 참 힘든 거야. 이런 식의 전제를 주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 같아요. 원래 힘든 그 사실을 얼마나 점진적으로 타개해 나가고 소통해 나가느냐는 이제 선생님의 몫인 거죠. 거기서 선생님이 그동안 노력해 왔고 노력해 온 방식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음...
─"그러니까 당연히 아등바등 살아야 돼."가 아니라. '원래 참 부부 관계는 힘든 건데...'라는 생각에서부터 선생님의 실력이랄까요? 자지가 그동안에 노력해 온 나름의 노하우들이 녹아나거나 적용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보면 좋을 거 같아요. 선생님이 이기적인 분이라서가 아니라, 제가 생각할 때는 약간 그 정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측면으로 인해... 다시 말해 '내 남편이 정답이 아니야, 그러니까 이건 아니야!' 이렇게 하는 그런 경향 때문에 주변에서 비슷한 말씀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뭐든지 이렇게 탁탁, 자로 딱딱 재듯이 하다 보니까... 근데 요즘 들어 그게 약간 느슨해지신 것 같고 그래서 조금 이제 환기가 좀 되는 그런 면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런가 봐요.
─지금처럼 '내가 지금은 잘 모르지만 뭔가 좀 다른 게 있을 거야'라는 호기심을 갖고 '부부 사이가 좋아지는 방법이 있을 거야, 새로운 길이 있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뭔가 계속 선생님 방식으로 간다면 저는 선생님이 계속 긍정적인 길을 만들어 나가실 수도 있는 분일 것 같기도 해요.
─왜냐하면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길을 찾고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노력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노력을 더 하면 된다는 마음을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한 걸까 그런 생각이 좀 드네요.
─약간 과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맞는 배우자면 쉽게 토론하고 길을 얘기하면 잘 맞춰지겠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거보다 훨씬 복잡한 거죠. 결혼 생활이란 게...
─저도 어려워요. 부부 관계는
째깍, 째깍, 째깍. 흐르는 시간의 발자국처럼, 째깍거리는 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무슨 생각하세요?
─그냥... 지금 저에게 결혼은 마치 십자수를 뜨는 상황 같아요. 처음에 코를 잘못 뀄는데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꿰다 보면 결국 다시 시작하는 게 더 빠를 수 있잖아요... 물론 애가 없다면 모든 게 다 심플했겠죠.
─중요한 건, 코를 잘못 뀄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선생님이 옅은 웃음을 띄웠다.
─내일은 멘토로 생각하는 선배를 만나서 요즘 제 상황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이혼에 대한 생각도 조심스레 꺼내볼까 싶고요. 사실 예전부터 그 선배에게도 이혼에 대해 몇 번 물어봤었어요. 그분도 젊었을 때 지금의 저와 비슷한 시기에 이혼하셨거든요. 왜 살다 보면 왠지 모르게 강한 확신이 들 때가 있잖아요.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면 이상하게 저는 그런 확신들이 되게 잘 맞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거는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결혼 생활이라는 건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커리어나 일에 대해서 확신하는 거는 좁은 영역이고 쉽죠. 인간관계는 확신이라는 게 사실 굉장히 위험하죠. 인생이나 인간관계나 하는 건 쉽지 않죠.
─어떤 결론을 내리실 필요는 없고 지금. 그냥 떠오르는 대로...
─부모님 하고 얘기를 하면 차라리... 뭔가 지금보다는 차선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부 관계의 실마리를 풀어질 수 있을까요?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하하. 수학 문제 같은 게 아니라니까요.
─그러면 수학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해봐야 될까요? 일단 뭐가 됐든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지금 하고 계시잖아요. 하고 계시는데 무엇 때문에 바뀌었는지 무엇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몰라요. 사실 우리는 끝까지... 90%는 모르고 산다.
─그럼 모르고 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빠를까요?
─인정한다고 인정이 될까요?
─안 될 것 같아서요. 계속 안 될 것 같아서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예요.
그것도 쉽지 않아요.
─모르고 산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뭔가 현실에 안주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자문을 구했던 선배님은 저에게 "자존심"이라고 표현하셨는데, 뭔가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 제가 여태까지 지켜왔던 저라는 사람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해서요.
"젊어서 그래.
아직 자신감이 가득할 때여서 그래...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나도 그때는 그랬어." 하며 미소 짓던 선배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아요.
─인생 선배들 만나서 이런 얘기 물어보면 대답이 다 비슷비슷해요. 다들 "그때는 잘 안 보여. 그때는 잘 몰라." 뭐 이런 식으로 말씀들 하시는데 볼 수 없는 것을 자꾸 보려고 욕심을 부리는 건가 싶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고민하다 문득 깨달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도 있고요.
─내가 결심한다고 몰랐던 걸 갑자기 알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받아들여보려고 마음을 먹으면 뭔가 달라지겠죠.
─와... 어렵네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다른 분들이 이야기하는 거는 의식적인 면을 적게 두는 거예요. 보통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알고 내가 결론 내리고 이런 거를 내가 할 수 있는 게 요만큼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내가 살면서 내가 내 인생의 어떤 결론을 내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훨씬 크게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거를 지인분은 선생님의 자존심이라고 표현하신 것 같고... 저도 상담 1회기 때 선생님께 뭔가 굉장히 프라이드가 있는 것 같다 뭐를 그렇게 이뤘냐 이런 질문도 한번 해봤던 것 같고 그랬던 것 같아요.
─......
─인생 초반까지는 자기가 결심하고 자기가 하면 노력하면 되는 게 참 많아요. 왜냐하면 학교와 생활 직장 초반까지는 예측이 되고 좀 뻔하거든요. 근데 인생이란 게 점점 뒤로 갈수록 쉽지 않죠. 복잡해지고 관계도 훨씬 어려워지고 나이가 들고 몸도 쇠약해지고... 뭐 하여튼 복잡해져요. 당연히 노력은 해야겠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예전보다 많지는 않구나.' 이런 걸 좀 깨닫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