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일곱 번째 상담 episode 2.
─자! 머리는 이제 좀 쉬고... 남편하고 있었던 뭐든 떠오르는 거 얘기해 주시겠어요? 아니면 결혼 전에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라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저번에 말씀드렸던 "용기를 내어 생각한 대로 사는 사람"인 것 같아서죠. 남편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도 그런 것 같았고요.
─그렇게 말하면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그냥 그 상황을 얘기해 주세요. 뭘 보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건 선생님 생각이고 실제 장면을요.
─장면은 딱히 없어요. 그냥 저는...
─뭘 보고 그렇게 판단하셨어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던 배경을 보고 짐작을 한 거지, 어떤 상황이나 특별한 순간 때문에 결혼을 한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굳이 내 결혼은 잘못된 선택이었고 실패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결혼에 대한 목표를 정해 놓고 모든 걸 끼워 맞춰놓고 '그냥 이 사람이면 됐어. 그냥 이 정도면 결혼해도 괜찮겠지...' 하고 섣불리 결심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상황이나 떠오르는 장면을 말하라고 하면 딱히 없어요. 그냥 연애 초반에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얘기를 했던 그 첫인상 효과 때문에 계속 긍정적인 느낌이 이어졌었고 3개월 만에 프러포즈를 한 거죠. 사귄 지 3개월 만에 트러블 생길 게 뭐가 있었겠어요... 모든 게 순탄했죠.
─선생님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셨군요? 나랑 비슷한 사람이다.
─네. 열심히 힘든 환경에서도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많이 노력을 한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힘든 환경에서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어떤 특성이 있어요?
─제가 사람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노력해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기 위한 가능성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냐, 아니냐.' 딱 그거밖에 없는데, 남편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배경을 들어보니까 나름 모질고 힘들었던 상황도 씩씩하게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고 '이 사람과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며 겪을 많은 어려움도 함께 힘을 합쳐서 이겨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던 거죠.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제가 듣기에는, 그 사람 자체를 잘 관찰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판단을 했다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듣고 혼자 머릿속으로 미뤄 짐작을 하셨던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네. 그래서 '결혼을 억지로 끼워 맞췄다'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아빠 퇴직 전에 결혼할 거야'라는 목표가 있었고, 서른셋 전에는 꼭 결혼하겠다는 계획이 있어서 그 시절 한참 소개팅 많이 했었죠. 그때 만났던 사람이 이 사람이고. 그전에 사람도 만나볼 만큼 많이 만나봤었고요...
─만나볼 만큼 만나본 중에는 그래도 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느끼신 거네요.
─저랑 비슷해서 좋았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저랑 반대여서 괜찮았다고 생각했었던 거겠죠.
─어떤 면이 반대예요?
─그냥, 둥글둥글한 부분이요. 딱히 불평불만 없고 근데 그때 연애 초반이니까 딱히 서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은 게 뭐가 있었겠어요? 어려웠던 가정 환경도 탓하지 않고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거는 저랑 비슷했었던 것 같았고요. 또... 싫은 게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죠. 그때 알았다면 아마 결혼을 하지 않고 헤어졌을 거고요. 그러니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계속 그 생각을 놓을 수가 없는 거예요. 모든 걸 다 끼워 맞춘 것만 같으니까...
원래 결혼이 때 돼서 만나는 사람하고 하게 된다며
주변 사람들 다 그런 소리를 많이 했어요.
그 소리 참 듣기 싫었는데,
결국엔 나도 그렇게 됐구나...
사실 입으로 내뱉는 모든 말들이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를 꺼내는 녹슨 느낌이 들었다. 신혼 때부터 우리 결혼생활은 삐그덕 대는 난파선이나 다름없었기에...
─제가 결혼한다고 주변 친구들한테 얘기했을 때 친구들이 "너무 성급한 것 같은데 너 제대로 알아보고 한 거 맞아?"하고 의문을 제기했었죠. 그때 제가 이렇게 답했어요. '충분히 알아봤어. 그리고 어차피 지금 다 알 수 없고 10년을 만나고 결혼해도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 내가 모르는 부분은 살면서 천천히 알아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그건 저의 큰 착각이었던 거죠. 결혼을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버린 상태에서 나머지를 다 합리화해서 억지로 껴 맞춘 거죠. 안 맞는 조각을 욱여넣었다랄까요? 일단 대충 맞겠다 싶으니까 그냥 시작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걸 인정하는 데 거의 한 4년 넘게 걸렸는데 내 실수였고 내 실패였다는 걸 끝내 인정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요... 엄마가 예전에 그런 말씀해 준 적 있거든요. "에휴. 내가 너네 아빠와 너무 빨리 결혼을 결심했지." 물론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게 무슨 뜻인지 한 번에 이해가 되더라고요. 별로 둘이 안 맞아서 맨날 싸우고 사니까... 제 인생도 딱 엄마가 한탄처럼 내뱉으며 회환하던 인생처럼 된 것 같아 야속해요.
안타까움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제가 선생님을 잘 모르고 아직 선생님 인생도 아직 잘 모르죠. 결혼 전에 남편이 이 정도면 됐어라는 거를 선생님이 여러 가지 남편 말이나 선생님 상황이나 이런 것들로 이제 끼워 맞췄다고 했잖아요. 그 판단이 틀렸다. 그때는 그게 맞는 판단이라고 생각했을 거잖아요?
─네. 맞아요.
─그런 식의 패턴이 선생님 인생에서 좀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때, "맞아. 이 정도면 됐어, 이 사람이야." 하며 결혼을 했던 그런 판단처럼 "지금 이 사람은 아니야."라는 판단도 선생님이 상담 처음 왔을 때 너무나 확고했던 입장이었어요. 사실 제가 느끼기에는 자신에 대한 부분은 별로 많이 돌아보지 않은 채 그냥 결론을 다 내리고 끼워 맞춘 느낌이 좀 있었지요. 또한 "모든 게 다 부모님 때문이야."라고 하는 부분도 초반에는 굉장히 강했죠. "이게 다 어릴 때 그 사건 때문이야." 했던 부분도 마찬가지고요. 근데 또 막상 얘기하고 보니까 갈수록 약간 턱이 낮아지긴 했죠. 최근에 이런식으로 성급하게 내리는 판단에 대해서 지인들이 그게 다는 아닐 수 있다고 얘기해 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선생님이 끼워 맞춘 판단은 자신이 너무나 강하게 이렇게 확신을 갖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 건 아닐까 하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음... 맞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사람은 안 맞을 거야 하고 내가 결혼에 대해 오판을 했다고 설명하는 과정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요. "100% 이 사람이야, 이거야! 이 정도면 됐어."에서 다시 또 "이거는 100% 오판이야." 뭐 이런 식으로 바뀌는 측면처럼... 그때는 "이 정도면 됐어. 살아가면서 알아보자." 했지만 막상 해보니까, 이거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살아가면서 알아볼 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고 "안 맞는 거야 그러니까 갈라서는 게 유일한 해결책일 거야."라고 해놓고 다 끼워 맞추는 패턴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했거든요?
─네. 그렇네요.
─틀을 다 짜놓고... '부모님 때문이야'라고 틀이 다 짜여 있고. '내가 지금 잘 된 거는 다 내가 판단을 잘했고 이걸 잘했기 때문이야'라는 틀에 또 다 들어가는 것 같고...
─아... 그렇네요. 그럼 그걸 제가 깨야겠네요. 그걸 깨지 않고, 이 패턴이 바뀌지 않으면 계속 이 이런 프레임 안에 모든 걸 집어넣는 사고방식을 일이든 인간관계든 삶이든 다 집어넣을 건데 어떻게 깰 수 있죠 이거를? 이걸 깨 보려고 계속 지금 제가 뭔가 노력을 하고 있는 과정인 것 같은데...
─맞아요. 그래서 상담도 오신 거죠. 그렇죠. 사람들도 만나고.
─어떻게 깰 수 있지?
창 밖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가득채웠다.
─조금 어려운 부분이라면, 본인의 자신감 혹은 자존감까지 영향을 받는 느낌이랄까요? 현재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는 정체성과 너무 딱 붙어 있어 가지고 그 틀을 해체하려면 자기 자신이 해체된 느낌이 들 수 있어요. 선생님은 불안이 많으신 분 같으니까, 불안이 좀 많이 올라올 거고 또 이런 틀은 하루아침에 이제 해체되거나 파악되는 건 아니에요. 살아가면서 계속 알아아가야 하는 부분이요. 상담으로 보자면 그걸 훈습이라고 그러는데, 계속 관심을 두고 바라보고...
─네? 훈습이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바삐 가는 말을 잡고 물었다.
─네, 훈습. 'Working through.' 계속 "워킹"하면서 조금씩 자극을 알아차리다 보면 '빗물이 흙에 스며들듯' 유연해지는 거거든요. 본인은 참 좋은 점이 많고 굉장히 노력하는 분이지만 반면에 '프레임'이 강한 게 참 어려운 면이 있으신 거죠.
특히 관계에서 그런 분과 같이 맞춰서 살기엔 상대가 많이 힘들 수 있어요.
본인 생각이 다 맞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