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일곱 번째 상담 episode 3.
"맞춰 살기엔 상대가 많이 힘들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눈을 감고, 그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이윽고 나는 무거운 말을 이어갔다.
─함께 돌봐야 할 가정이 생기고 그 가정의 경제를 꾸려나가야 하는 부부에게 수많은 삶의 '이슈'가 생기잖아요. 예를 들어, 따로 관리하던 돈을 합쳐서 잘 모으는 과정과 집을 사는 과정, 대출을 받는 과정 등 다양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계속 뭔가를 공부해야 되잖아요. 잘 모르니까, 또 처음 해보는 거니까... 적금과 투자를 이야기하고 또 전셋집을 얻기 위해 대출을 받고 그 전세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아파트 청약을 어디에 넣어야 할지 따위의 일들을 같이 공부해서 힘을 합쳐보자고 신혼 때부터 많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더 잘 살기 위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정들을 마주할 때면 남편은 "나는 잘 모르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했어요.
─혹시 남편이 처음부터 그랬어요? "우리 대출받아야 돼. 어떡하지? 같이 공부해 볼까?" 그런 상황들마다 "난 안 해. 네가 알아서 해" 그런 태도였을까요?
─처음부터 안 하지는 않았어요. 몇 번 해보다가 금방 포기하더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끈기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랬겠죠. 저는 그게 너무 싫거든요. 끝까지 해보지 않고 중간에 포기하고...
─혹시 같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남편과 대화하는 방식에 문제는 없었나요?
─그것도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겠죠. 근데 그것도 이상해요. 좀 웃기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저도 잘 몰라서 막 공부하다 보니까 알게 되는 건데 "제가 좀 더 많이 아니까 그냥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는 자체가... 저도 인생 2회 차가 아니고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선 건 마찬가지잖아요.
─본인이 열심히 공부해 새로 알게 된 걸 어떻게 전달하셨어요?
─"이런 것도 있는데 한번 참고해 볼래?" "난 이 정보를 이렇게 검색하다가 알게 됐어." "이렇게 한번 너도 이런 걸 좀 알아봐 줘. 다음에 이런 것도 같이 알아봐서, 네가 알아본 거 1, 내가 알아본 거 1, 더하면 우리는 2가 되니까 같이 좀 알아보자." 뭐, 처음엔 이렇게 했었죠. 다독거리면서... 근데 어느 순간 좀 하다가 "나는 모르겠고 이런 거 머리 아프니까 안 하고 싶다, 그냥 네가 잘하니까 네가 하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함께 잘 살기 위해 해야 할 우리의 일을 마치 '남의 일' 취급을 하니까 거기서 정말 실망한 거죠.
─아니 그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요...
─하기 싫거나, 귀찮거나 자기는 이런 거 잘 모르니까 그냥 알아서 해줬으면 하는 마음 아니었을까 싶어요. 좋게 말하면 '기대고 싶은 마음'인 거고 조금 나쁘게 말하면은 '에라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하니까 나는 신경 안 쓸게.' 뭐 이런 이런 거겠죠.
─한번 물어보셨어요?
─처음엔 물어봤었죠. 언젠가부터 이런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계속 싸움으로 끝나더라고요. 제가 말하는 핵심은 대부분 이래요. '나도 이 모든 일이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인데, 어떻게 이게 내가 더 잘하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거니? 우리가 함께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까 너보다 조금 더 알게 되는 과정일 뿐인데 어떻게 내가 너보다 더 잘한다고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너는 안 하고 모른다, 못한다며 포기해 버린 거고 나는 어차피 우리가 잘 살아가려면 꼭 알아야 하는 필수 지식이니까 노력을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야. 그렇게 포기한 사람과 어떻게든 계속 알아보려 노력한 사람의 차이가 벌어진 것뿐인데, 이런 상황에서 "이건 네가 잘하니까 네가 해."라고 하면 우리가 함께 잘 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나한테 일방적으로 떠맡기는 것 밖에 안 되는 거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됐다 에휴..." 하며 포기했고요. 그렇게 하다가 운이 진짜 좋게 아파트 청약도 일찍 당첨됐고 그때 애가 생겨서 가산점도 얻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운이 좋았죠. 우리가 가진 거에 비해서 운이 되게 좋았어요. 여하튼 그런 사례들이 하나씩 하나씩 생기면서 '왜 자꾸 포기하지? 뭘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하거나 안 하려고 할까?' 그런 무시하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까, 항상 노력하고 호기심 많고 새로운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이런 선생님의 장점에 비해 남편이 그렇지 않은 거에 대해서 실망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네.
─근데 제가 전혀 모르지만, 한편 남편 입장에서 잠깐 볼게요. 지금까지 말씀해 주신 이야기를 이렇게 보니까, 사실은 학점은행제라는 게 그렇게 어렵게 하는 게 아니거든요.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성적이 좋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에요. 남편도 가정 형편상 공부를 충분히 못한 거에 대한 본인 나름의 콤플렉스가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이렇게 항상 프라이드가 있고 뭔가 알아내고 막 반짝반짝하는 부인 옆에서 남편이 얼마나 기가 죽고 본인 상처가 덫 났을까... 그러니까 싸우고 싶지는 않고 '그냥 당신이 해' 이렇게 양보를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가요?
─선생님은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무시는 남편이 그럴 만해서 무시를 했다기보다는 선생님 안에 이 무시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방금 그 장면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이 무시가 남편을 통해서 생겨났다기보다는 '아, 이게 저분 안에 원래 있던 게 상대에게 나왔구나.' 사실 이런 느낌이 들어요.
─네... 그래요? 아마 저는 '끝까지 해보지 않고 다 했다'라고 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 같아요.
이유는 불문이야.
그냥 '무시'라는 게 선생님 안에 있어요.
─대학생 때 진짜 생각이 깊고 마음도 넓었던 친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친구가 저한테 해줬던 얘기를 지금 돌이켜봐도 '어떻게 그 나이 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지?' 싶은 철학적 깊이가 있는 친구였죠. 여하튼 그 친구는 집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저한테 이런 표현을 자주 썼어요.
"세상에는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있어.
뭐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어."
─근데 저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짜증 나고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하면 되지.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자포자기하는 거는 너무 회의론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인 거 아니야?" "온 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 갖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인생인데 처음부터 안 된다, 못한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뭔가를 할 수 있겠어!" 하며 서로 논쟁을 자주 했었거든요. 물론 서로의 깊은 마음은 항상 지지하면서요...
─중요한 건, 그 말의 내용이 아니에요. 그 말을 하는 '본인의 무드'예요. 선생님으로부터 풍겨오는 무드인데, 지금 이 얘기를 하는 선생님의 무드는 뭐냐 하면 '굉장한 자부심' 그게 지금 나오거든요.
─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말의 내용이 영향을 주는 게 아니에요. 그 안에 있는 그 말할 수 없는 모두가 영향을 끼치는 거예요. 방금도 마찬가지! 선생님이 그 얘기를 다른 방식으로 얘기하면 저는 수긍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얘기를 할 때 선생님은 굉장히 높은 자리에 가 계세요.
─그래요?
지금까지 상담을 하며 내가 털어놓은 건 '구름 한 조각' 같은 내 삶의 작은 조각일 뿐인데, 선생님은 마치 내 '하늘' 전체를 꿰뚫어 보듯 말했다. 그게 당황스러웠다.
─선생님 말씀하시니까 머레이비언의 법칙이 떠오르네요. 대화 내용에 담긴 언어적 요소는 7%. 비언어적인 시각, 청각 등 다른 요소가 거의 90% 이상이죠. 표정, 말투...
머레이비언의 법칙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메시지 전달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소를 비율로 나타낸 것으로, 흔히 '7-38-55 법칙'으로 불립니다.
7%는 언어(Words): 실제로 말하는 내용, 즉 단어와 문장의 의미가 메시지 전달에 미치는 영향은 7%에 불과합니다.
38%는 목소리(Tone of Voice): 목소리의 톤, 속도, 억양, 크기 등 청각적 요소가 메시지 전달에 38%의 영향을 미칩니다.
55%는 비언어적 요소(Body Language): 표정, 제스처, 자세, 시선 등 시각적 요소가 메시지 전달에 가장 큰 55%의 영향을 미칩니다.
결론적으로, 이 법칙은 상대방과의 소통에서 언어적 내용보다는 목소리의 톤이나 표정,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특히 감정을 전달하거나 태도를 표현할 때 비언어적 요소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됩니다.
─네. 그게 영향을 줘요. 그냥 "랄랄라, 랄라라라"하고만 얘기해도 의미는 다 전달이 돼요. 표현과 말투에만 신경 써도 그 안에 담긴 뜻과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죠.
─그러게요... 그러면 저는 그걸 '잘' 못하는 사람인가 싶어요.
─아니요. 못하는 분은 아니에요. 선생님은 제가 볼 때 굉장히 예민한 분이에요. 예민하고 영특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의 문제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선생님이 오늘 발견한 문제는, 선생님은 말의 내용만으로 승부를 건다는 거죠. 말의 내용만으로 관계하려 하고 말의 내용만으로 뭔가를 맹신해요. 그래서 대화의 내용 그 밑에 오가는 다른 것들을 못 본 척하고 계세요. 그런 비언어적인 많은 요소들을 선생님이 못 본 척하기 때문에 잘 못한다고 느끼는 거지, 인식하려고 노력하고 인식하기 시작하면 제가 볼 때는 충분히 캐치하고 잘 활용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느껴요. 아직은 그 부분에 대해서 자기 눈을 가리고 있는 거죠.
─조금 잘 이해가 안 돼요. 대충은 이해가 되는데...
─선생님 표현으로, 비언어적인 거에 대해서 선생님이 많은 부분 못 본 척한다고 자기 것도 못 본 척하고 남의 것도 못 본 척하고 말의 내용만 가지고 지금 따지고 말의 내용만 가지고 판단하고 틀을 만들고 있다고 그럴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와...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제가 지금 얘기하니까 알아차리시는 것 같아요. 조금 전에 철학적인 친구와 있었던 일화 설명하면서 "노력"을 강조할 때, "야! 노력을 통해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노력 끝까지 해봐야지" 할 때 그 말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선생님의 속에서 느껴지는 거.
굉장한 프라이드, 굉장히 높은 자리로 가 있는 그 소신에 찬... 이런 것들이 전달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 얘기를 하니까 선생님이 지금 알아차리잖아요. 그렇죠? 알아차렸잖아, 무슨 얘기인지. 제가 하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그게 남편한테 영향을 준다고. 그게 저한테도 영향을 주고 그게 다른 사람한테도 아마 많이 영향을 줬을 거예요...
─아... 네, 그러니까 제 표현 방식이 그게 약간 공격적으로 느껴진다는 건가요?
─아니 여기서는 높은 자리로 가는 그러니까 잘난 척?
─아.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전달되는 게 그거였어요! 제가 조금 세게 얘기하면...
─음...
─그래서 무시는 이미 선생님 안에 있는 거다! 핑계는, 노력이라든지 선생님의 메타인지라는 표현으로든지 어떤 이유든 다 갖다 댈 수 있어... 우리는 우리 생각을 얼마든지 속이거든요. 근데 이건 지금 선생님 안에 이미 있는 거예요. 무시. "무시와 잘난 척" 이게 같이 있는 거잖아.
─아...
─가설이에요. 제가 이야기하는 건 모두.
─네. 근데 맞는 가설인 것 같아서요.
─아니 뭔가 좀 다가오면 그냥 쓰면 돼요.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무시와 잘난 척을 평생 가져갈까? 그것도 모르는 거예요. 그냥 지금 현재, 오늘 느껴지는 거라는 거죠.
─무시라...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해도 될까요?
─네.
─그러니까 선생님이 약간 비언어적인 거에 대해서 그동안 제가 아까 의식적인 거를 다른 사람보다 훨씬 크게 생각한다고 얘기했잖아요. 그게 같은 말이에요. 비언어적인 이유를 많이 안 보고 사셨던 것 같고 그런 부분에 대한 센스가 조금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 안 봤으니까, 안 보려고 하니까. 근데 잘 배우실 수 있는 분이다. 내가 볼 때는 왜냐하면 타고난 예민함이 있고 또 노력하는 편이고 하니까. 또 어떤 면에서는 아주 묘해요. 선생님이... 어떤 면에서는 약 약간 피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또 아주 솔직하거든요. 아주 재미있는 분이에요. 하시고 싶은 얘기 있으시면 간단하게 하시겠어요. 혹시 기분이 상하신 건 아니죠?
─아뇨, 아뇨. 전혀 기분 상하는 건 아니고요. 기분 상할 것도 없어요. 어차피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고 발견해야 깨닫게 되잖아요.
─맞아요.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워요.
─선생님은 그걸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 저를 비난한다거나 공격적으로 '그건 네가 잘못했어' 하면서 훈수하고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절대 기분 나쁜 건 없고요. 제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하신 "무시"가 어디서 왔을까를 계속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무시를 당했기 때문에 내가 무시를 한다라는 게 방어 기제로 마음속에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다시 문제는 아버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그 당시에 선생님이 느꼈던 장면들을 통해 많이 소화해야 돼요. 오늘 얘기에서, 말로 표현한 여러 상황들이 있지만 사실 저 밑에서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거에 서로 상처를 많이 받고 있겠다.' 그런 가설과 생각이 들어요. 재미있죠.
─네. 오늘도 좋은 대화와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