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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혼일기 26화

서로에게 끌려 부부가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이혼일기, 여섯 번째 상담 episode 2.

by 검정멍멍이




─신혼집에서 아이가 사용할 세탁기를 설치하다가 생긴 에피소드 하나 말씀 드릴게요. 동생한테 받아온 아이용 세탁기가 있어서 설치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됐어요. 그때만 해도 우린 정말 친한 친구처럼 잘 지냈었거든요.

아! 그런 시기도 있었군요?

그러게요. 그런 시기도 있었네요...


눈을 감고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
우리에게도 그렇게 다정했던 때가 있었지.




─세탁기 설치를 혼자 하고 있었는데 잘 안 돼서 고생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죠. 처음에 남편이 하다가 못해서 제가 시도해 보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러다 남편이 "뭐야, 못하는 거야? 에이 결국 못하네..." 하며 비아냥거렸어요. 물론 장난이었겠지만 그 순간 확! 화가 났어요. 낑낑 대며 열심히 하고 있는데 뒤에서 힘 빠지게 그런 소리를 하니까... 그래서 말했죠.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그렇게 비아냥거리고 싶냐고... 그리고 내가 아는 동생을 대하듯이 나를 대하지 말라고 예전부터 부탁하기도 했고 우린 부부니까 서로 존중해 줘야지 왜 그렇게 못한다고 빈정상하게 하냐... 처음이니까 배우면서 하면 되는 거고 한 사람이 잘 못하면 서로 도와주면 되지 굳이 빈정상하게 약을 올리고 싶냐!" 하면서요...


지금의 나였다면 그냥 넘길 수 있었을까? 신혼 초에는 드디어 내 편이 생겼다는 기쁨에 뭐든 내 편을 들어줄 거라 믿었던 때라 사소한 장난도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혔다. 어릴 적부터 '무시'라는 감정에 너무 취약한 내 탓일 수도 있지만...


─그랬더니 남편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그리고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자기가 생각해도 불필요한 행동이었다고 얘길 했으니까요.


─어, 이렇게 얘기하면 남편이 그냥 맞받아치지 않고 있네요?

─그 상황에서는 바로 수긍을 했었죠. 그리고 그런 상황 속 대화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예를 들면 '부부간에는 서로 존중하며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얘기를 평소에도 제가 좀 해놨었거든요. 그리고 어떤 날은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면서 저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우리에게 저런 일이 일어났을 땐 어떻게 하고 싶은지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어요.


─하하하... 거의 교육인데요, 결혼 생활이?

선생님은 코끝으로 웃음을 흘리며,
꼭 내가 틀리길 바랐다는 듯 말끝을 날카롭게 세웠다.


왜요? 오히려 이런 시간을 통해 부부간에 그런 얘기를 하면서 서로의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지 않나요? 이런 과정으로 서로의 생각이 비슷한지 아닌지 알아보거나 싱크를 맞춰볼 수도 있잖아요. 왜냐하면 우리 부부는 연애를 짧게 했으니까 모르는 게 훨씬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미리 대화를 시도했던 거죠. "그렇구나, 나는 저걸 보고 이런 생각이 드는데 너는 어때?"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는 거죠. 원래 다 그렇잖아요. 사람 사는 게...




방금 제가 좀 웃었잖아요. 어떠셨어요?

─뭐... 아무렇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저보다 인생을 많이 살아보셨으니까 그리고 제가 겪는 과정이 이미 본인의 삶에서 어느 정도는 겪어보셨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귀여워서 웃으셨나 보다 그런 생각했어요. 저 같은 사람들 상담도 많이 해서 다양한 케이스도 접하셨을 테고요.

─아, 그래요? 어떻게 아까 딸과 있었던 상황에서 느꼈던 '무시'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저는 '제가 인정한 사람'이 뭐라고 하면 무시했다고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좀 더 쉽게 말하면, 제가 '이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마음의 문을 연 사람한테는 그렇게 막 부정적인 리액션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뭐 그래도 되는 사람으로 이렇게 인정을 해 준다고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본인에게 남편은 어떤 상태로 돼 있나요. 지금?


─지금요?

─빨간 줄이 이렇게 그어져 있는 거예요?

─지금은 더 이상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요 뭐...

─무슨 장난을 치건 뭘 하건 이렇게 안 되는 거예요?

─에이... 이젠 더 이상 장난치고 그런 사이가 아니죠. 말도 안 하고 산지도 3년이 넘었는데요 뭐...




─혹시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 혹시 아세요? 저는 딸하고 인사이드 아웃을 자주 보거든요. 딸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라 함께 보기 시작했는데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몇 번을 계속 보게 됐어요. 볼 때마다 집중해서 생각을 하고 막 보는데 거기 보면...


그 영화는 너무 어려워요.


선생님이 반갑게 맞장구치며 말을 이어갔다.



─너무 어렵긴 한데 재밌어요. 보다 볼 때 볼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고,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죠. 거기 보면 아빠의 머릿속에는 메인 그 감정이 화예요. 그리고 엄마의 머릿속에는 메인 감정이 슬픔이에요. 그리고 아이의 머릿속에는 메인 감정이 기쁨이에요. 근데 그 표현이 저한테는 굉장히 슬프게 다가왔거든요.


─음...


─그 애니메이션 하나 만들자고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디즈니에 자문을 했겠어요. 근데 엄마와 아빠를 저렇게 비유했다. 그럼 이게 인류의 어떤 공통적인 기본 속성인가? 아무튼 저는 모든 감정이 거의 화 혹은 슬픔으로 귀결되는 사람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속상하더라고요...


─지금은 그렇겠죠. 지금은.


─지금도 그렇고 평소에도 그러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기쁨도 화, 슬퍼도 화, 뭐 해도 화.


─그러니까 불쾌한 모든 감정은 다 화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긍정적인 거는 저도 나름 표현을 다채롭게 할 수 있는데 부정적인 감정은 다 화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우리 감정에는 부정적인 건 없어요.

그걸 제가 느끼는 것뿐인가요?


─그럼요. 다 도움이 돼요. 노란 신호등은 좋고 빨간 신호등은 나쁘고 그런 거 아니잖아요.


─......


─그렇죠. 그렇구나. 아직은 그걸 느끼기가 어렵다.


─근데 선생님을 통해 남편 얘기를 건너서 들으면, 제가 물론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성향 자체가 좀 놀리고 약간 이렇게 무시하는 투로 이렇게 하면서 하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거나 아니면 선생님이 그런 어떤... "무시", 존중받지 못한다고 표현하셨는데 아까 얘기대로 그런 부분에 취약하신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두 분 사이에 좀 큰 장애물일 수도 있겠다. 소통하는 데... 그리고 선생님은 그 부분에서 좀 예민하신 분인데, 둘 사이에서는 그게 계속 반복이 되면 이게 정말 어려워지죠. 근데 그거를 어떻게 풀어야 될지 두 분 다 모르는 거죠. 둘 다 사실은 억울하고 둘 다 너무 화가 난 상태일 수 있겠네요.


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귓가를 때리는 것만 같았다.



이미 너무 멀리 왔겠죠. 너무 멀리...


─멀리 갔어도 부부가 끌린 데는 또 이유가 있기 때문에 풀리면 또 쉽게 풀릴 수도 있어요. 그렇게 끌린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어쨌든 무시당하는 그 느낌 뭐 또 얘기를 해 보세요. 뭐 떠오르는 장면?

─떠오르는 거...

─아버지도 무시하셨다고요?

─근데 친구들도 만나서 얘기해 보니까 저 때는 다 의례 그렇게 컸더라고요.


─그렇긴 해요.

─사실 부모라는 존재도, 내가 깨우치는 거는 한계가 있을 거고 그 부모의 부모에게 배운 것들이 그건 건데 뭘 얼마나 깨우쳐 봤자 그 가르침 안에서 얼마나 더 창의적이거나 다른 시선을 얻으셨겠어요?


─근데 이 부분을 엄마, 아빠 탓을 하자는 게 아니라 엄마와 아빠의 사이에서 있었던 사연들을 돌아보면서 선생님의 무시에 대한 예민함을 다루지 않으면, 이제 딸이 사춘기 들어가고 크면서 엄마한테 톡톡 대고 나중에 말을 못 듣는 척하는 정도가 아니라 "엄마가 뭘 알아!" 이런 식으로 나오게 되면 아버지와 비슷하게 되실 수 있거든요.

─맞아요. 그게 좀 두려워요.

─"아빠가 해준 게 뭐 있어!" 뭐 이런 식으로...

─좀 긍정적인 저의 측면을 좀 제가 바라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게, 이미 다르게 걸어가고 있거든요. 이미. 근데 모르죠... 아직은 그렇게 난도가 높은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1 레벨에서는 당연히 누구나 그럴 수 있을 정도의 그걸 제가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거고. 조금 더 레벨이 높아지는 어려운 난이도에 도달하면 저 또한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안 되리라는 법은 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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