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여섯 번째 상담 episode 1.
잠시 모든 걸 정리하고 싶었다. 밀려드는 썰물처럼 상담조차 버거운 느낌도 든다고 느낄 때 쯤 그냥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2주를 쉬고 오랜만에 상담을 하러 갔다.
─궁금한 게 있는데, 한 주 쉬면서 좀 정리를 해봐야겠다 하셨는데. 어떻게 정리를 하셨어요?
─일단 회사 관련해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었고요. 상담을 하면서 혼란이 해소가 된 것도 있고 또 더 혼란이 생긴 것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한번 돌아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인들을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 내용들도 있었고요.
─그래서 어떤 생각들이 드시던가요?
─그동안 선생님께서 저에게 너무 막 아등바등 그렇게 할 필요 없다. 마음을 좀 편하게 먹어라, 괜찮다 이런 말씀을 좀 많이 해 주신 것 같아요. 덕분에 내가 정말 스스로를 너무 푸시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됐어요. 또 친한 동생하고 얘기를 해봤어요. 선생님을 만나서,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정말 가슴속 깊이 있는 얘기를 꺼내게 됐잖아요? 그래서 그 동생에게도 제 상황과 생각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봤어요.
─그 친구가 저보다 나이는 어린데 참 생각이 깊은 사람이에요. 이 친구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며 반성을 해보기도 했고요. 이혼을 하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 묻더라고요. 이혼을 하더라도 어쨌든 딸한테는 엄마와 아빠로서 계속 존재해야 할 건데, 그럼 정리를 하더라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서로를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해봐야 하지 않겠냐. 그런 다음에 "우리는 안 맞는 사람이네. 그러니까 너의 삶을 응원할게." 해야 하는데, 저는 지금 그렇게 끝까지 노력해본 상황은 아니지 않냐고 물었어요...
─사실, 맞는 말이잖아요. 제가 '엄마와 아빠가 그렇게 싸워서 나는 다른 삶을 살 거야'라고 결심하고 노력해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비슷하게 살고 있는 그 현실이 괴로운 건데, 정말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어디까지 노력을 해봤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됐고요. 근데 한편으로는 정말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 봤자 결과는 엄마랑 아빠처럼 될 게 뻔히 보이는데 굳이 그래야 할까 싶기도 해요.
─아... 선생님은 그런 식의 이야기를 참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뻔하다.
─제가 그런가요? 선생님이 말씀처럼 그 친구도 저에게 "이미 결론을 내놓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라는 얘기도 했어요. 선생님과 그 친구가 저에게 해줬던 내용이 되게 비슷한 맥락이 많은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 내가 터놓고 말한 두 사람이 비슷한 소리를 하면 결국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봐야 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긴 했어요. 근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고, 앞으로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좀 알아가 보고 싶어졌어요. 또 그 친구 말 중에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냐" 이런 워딩이 있었는데 그동안 내가 높은 성처럼 방어 기제를 쌓아놨는데 과연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고요.
─아니. 그 친구 말의 핵심은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봤느냐, "진정 노력" 이게 핵심인 것 같아요.
─그렇네요. 그러면 내가 선생님하고 대화하면서 계속 내 괴로움의 원인이 뭘까에 대해서 파고들긴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와 요인을 자꾸 껴맞추고. 나는 결론을 내렸고 결론 안에서 그 퍼즐 조각을 맞추려고 하는 그런 측면이 있겠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성장 동력은 '의지', 좋게 말하면 '신념', '소신' 이런 거였을 거니까. 근데 그게 잘못됐으면 어떡하지?, 그럼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되지? 뭐... 그런 생각들. 나름 2주 전보다는 뭔가 좀 차분해진 좀 기분이에요.
─그간 남편과는 어떠셨어요?
─뭐... 똑같아요? 여전히 딸과 관련해서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사니까... 딱히 트러블은 없었어요.
─예민함도 좀 줄어들고?
─네. 뭐... 막 예민하게 신경 써서 할 일을 딱히 만들지 않았고 저도 무엇이든 조금 내려놓으려고 노력을 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아니 근데, 남편을 얼마나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나 돌아보는 생각도 해보시고, 자기 신념이나 소신이 혹시 잘못된 거였으면 어떡하지 뭐 이런 생각도 해보셨으면 아마 민감함이 조금 줄어들었을 것 같아요. 내가 너무 확고하면 타인과 부딪히게 되지만, 내가 이게 정말 진짜인가, 이게 확실한가 뭐 이렇게 의심하기 시작하면 약간 좀 섞이잖아요. 그러면 예민함이 좀 누그러지지 않나요? 그럴 것 같아서 이제 여쭤본 거예요. 약간 부드러워지셨어요? '날이'?
─그런가 봐요. 아마 여러 요인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상 퇴사를 했다는 홀가분함도 있고요. 내가 하고자 하는 거에 집중하고 온전히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또 뭔가를 계속해야 된다, 오늘 여기까지 해야 돼. 오늘 이거 계획했었으니까 이거는 반드시 해야 돼. 이런 생각을 좀 내려놨거든요.
─오호. 행동이 굉장히 빠르시네요?
─뭐. 그냥 쉬는 거지! 내가 이게 회복이 될 때까지 잠깐 쉬어도 괜찮잖아. 어차피 인생 한 90까지 살기로 마음먹었으면 아직 반도 안 왔으니까.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그래서 예민함이 줄었을까요?
─대단하시네요.
─......
─방금 무슨 생각하셨어요?
─최근에 책상 정리를 했어요. 책장 정리하다 보니까 <화해>라는 책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책을 조금 보다 보니까 너무 제 이야기 같은 사연들도 많고, 공감되는 게 많았어요. 그래서 책 내용에 대해 한번 대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딸이 6살이니까. 듣기로는 "미운 7살" 이런 표현 많이 쓰더라고요. 한참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잖아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고, 삐뚤어지고, 말 따라 하고, 괜히 약 올리고... 이런 게 많은 요즘이에요. 또 다 들었으면서 못 들은 척 무시하는 빈도가 최근에 늘어났어요. 사실은 그게 무시가 아니라 '나는 그걸 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암묵적인 표현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여리고 귀여운 딸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무시한다라고 느끼는 저를 보면서 '아, 요즘 내가 굉장히 마음이 취약해졌구나 아니면 내가 원래 이런 무시에 취약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딸은 정말 무해한 존재잖아요. 저한테는 제 목숨을 내줘도 아깝지 않은 존재고. 근데 딸이 그렇게 했을 때, '귀엽게, 모른 척하네? 이렇게 한다거나 아니면 '알아들었는데 왜 그랬어.' 이러면서 장난으로 넘길 수 있는 건데... 뭔가 무시하는 기분이랄까? 근데 그 무시받는 기분이, 내가 느끼고 있는 내 마음 상태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더라고요.
─어릴적부터 항상 아빠가 날 무시했던 상황. 엄마는 오히려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느꼈던 일들. 그러니까 그게 내가 무시받았다고 느꼈던 걸까? 혹은 그런 옛날일들은 다 차치하고... 사실 저는 사회생활을 하거나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누가 나를 무시하거나 못한다고 하면 굉장히 반발심이 셌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보여줄게 한번 지켜봐!", "내가 나중에 결과로 얘기할게." 이런 게 꽤 많았어요. 그런 감정이나 그런 상황에 반응하는 저의 태도가 저한테는 추진 동력이었던 것 같고 지금까지 그걸로 인해서 잘 살아왔을 건데. 오히려 지금은 또 약간 그게 부작용이 좀 생긴 느낌인 거잖아요?
─잠깐 쉼표를 좀 찍고 가야 될 것 같고,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까 제가 상담도 하러 온 것 같고... 핵심은 그럼, 이렇게 취약해진 감정.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나를 믿고 나를 존중하고 또 나한테 친절하기. 이런 걸 내가 부모님한테도 배운 적 없고, 스스로도 깨우쳤거나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그럼 이걸 연습해서 스스로를 다독여줘야 되나?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다른 거는 다 가설이고 모르겠고. 딸이 엄마 말 못 들은 척할 때, 좀 귀엽게 보이고 야단칠 거 야단치고 이렇게 되는 게 아니라 쟤가 나를 무시하는 느낌. 딸하고 동등한 입장이거나 딸보다 조금 아래인 느낌으로 가는 거잖아요 심리적으로?
─그게... '완전히 나를 무시하네?' 하고 생각하며 기분 나쁜 건 아닌데, 알게 모르게 썩 유쾌하지 않은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부분! 딱 그 부분만 말씀드리는 거예요. 선생님 전체가 막 온 존재로 내가 걔한테 화가 나고 이건 아니겠죠. 이건 아니고, 선생님이 어떤 부분이 탁 건드려진단 말이에요. 지금 그걸 딱 알아채시고 와서 얘기해 보고 싶으신 거잖아요.
─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이게 내가 다른 관계에서도 항상 그런 게 좀 많이 올라왔고, 오히려 이런 감정을 나는 스스로를 동기부여하는 데 사용했었다. 내 동력이 됐었다." 그렇게 얘기를 하시거든요.
근데 제가 조금 궁금한 거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그런 게 올라올 때가 혹시 있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