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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혼일기 23화

버티며 사느라 저마다 참 괴로웠을까요?

이혼일기, 다섯 번째 상담 episode 2.

by 검정멍멍이





─아... 저는 지금 궁금한 게, 뭔가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어떤 자극이 있는데 그게 아마 ‘가슴 속 안에 이…날카로운 소리를 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손은 부드럽게 가슴으로 올리고 눈은 단호하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은 아빠를 닮았나요? 아빠랑 닮은 면이 좀 궁금하네요?

─아빠랑 닮은 면... 뭐, 욱하는 성격이나 완벽주의 같은 걸 아빠랑 닮은 거 같아요. 엄마도 완벽주의고 사실 둘이 비슷하세요. 아빠나 엄마나 모두 예민한 사람에 완벽주의에... 참, 진짜 서로 안 맞는 사람이죠.

─아, 부모님께서 각자 방식이 다르시군요…


─네. 저는 남편하고 결혼했던 이유가, 완벽주의가 없는 무딘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저랑 반대인 사람인 것 같아서 그래서 좋았던 건데, 살아보니 그렇지 않네요.


─어쨌든 선생님은 남편이 좀 무딘 편이길 바랬군요.

─그...렇죠, 왜냐하면…


─남편이 완벽주의가 아니라서 마음에 들고 좀 안심되는 면이 있었네요.


─그렇죠. 저는 뭐 하나 꽂히면, 파고들어서 끝까지 물고 결국에는 해결해내려고 하는데, 그게 이제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좋은 거지만 만약 반대의 경우라면 좀 피곤할 수 있잖아요?

─남편은 저처럼 그렇게 날카롭게 살지 않고, 뭐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는 사람. 바람은 바람이고 물은 물이니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되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던 거죠.


─그렇죠. 완벽주의가 아니라는 게 뭐 굳이 많이 따지지 않는 거죠.


─맞아요. 그게 사실 삶을 잘 살아가는 측면에서는 덜 피곤하게 사는 방법이고, 한편으로는 지혜로운 거라 말할 수 있죠.


─그럼요. 여유가 있는 거죠.


─근데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 거죠. 그래서 요즘 혼란스러워요. 내가 그렇게 담고 싶어 하지 않았던 아빠의 완벽주의 성향과 날카로운 모습이 자꾸 보이고. 이따금 딸에게 무서운 엄마로 다가가는 게 너무 싫고요. 또 저도 애를 처음 키우다보니 이게 훈육인지 혼내는 건지에 대한 구분이 너무 어렵고요.

─요즘엔 오히려 엄마보다 어릴적 그토록 미워했던 아빠가 이해될 때가 더 많은 거 같아요. 결코 닮고 싶지 않았던 아빠의 예전 모습들이 자꾸 저에게 보이니까 이제야 비로소 아빠가 이해되는 걸까요? '난 엄마, 아빠와 다를거야. 반드시 다르게 살거야'라며 그렇게 다짐했지만 결국 비슷해지니까... 오히려 어릴땐 엄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라고 믿고 살았던 것들이 아이를 키우며 세로운 세상을 접하게 될 수록 그렇지 않았구나 싶은게 참 역설적이죠.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걸 항상 증명해 오면서 살고 있다고 자부해요. 우리 딸에게 따뜻한 부모, 재밌는 엄마로서...


─아빠나 엄마나 버티며 사느라 저마다 참 괴로웠겠죠? 저렇게 안 맞는 사람들끼리 살고 있으니까 인생이 괴롭겠다 싶을 때가 많아요.
─저번에 한번은 집에가서 부모님을 제3자의 시선으로 가만히 지켜봤어요. 보다보니까 문득 그냥 저렇게도 사는 게 인생인가 싶었어요. 이런 삶도 있는 거고 저런 삶도 있는 거고... 엄마랑 아빠는 저렇게 맨날 티격태격하고 그렇게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결국엔 저렇게 붙어서 살고 있잖아.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난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라는 확신이 너무나 뚜렷한 것 같아요. 오히려 부모님을 보며 혼란스러웠던 제 삶이 정리된 느낌이랄까요? 독백처럼 언제나 되내이는 말이 있어요. '그래, 저렇게까지 안 맞는데 굳이 억지로 참아가며 살아야 할까?'




─선생님이랑 오늘 대화하면서 뭐가 느껴지냐면, 이분이 정말! 예민함을 타고난 아이구나. 정...말 예민하다.


─네. 맞아요.

─이거를 누가 이렇게 충분히 예민함을 이렇게 넓게 담아주는 사람이 정말 필요했겠다. 그러니까 보통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한 10배 어려운 아이인 것 같아요.

─예민함에 대해서 선생님이 두 가지로 느끼시는 것 같아요. 하나는 예민함을 프라이드로 가지고 있는 부분도 있는데, 물론 그게 이제 예민하게 파악하고, 연구하고, 개선하려고 하고 이런 프라이드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선생님의 예민함을 약간 뭐랄까... 수치심이나 부족한 걸로도 느끼시는 것 같아요.


─네.


─그런 면에서 이걸 보완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장치를 머릿속에 만들었네요. 어떤 수치심을 느끼거나 부족함이 되지 않기 위해서 선생님 나름대로 굉장히 많은 씨줄과 날줄을 엮어가지고 무엇 하나라도 그 기준과 다른게 들어가면 마치 전체가 문제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겠어요. 선생님의 어떤 면이, '이거 조금 문제지 않나?' 혹은 '이거는 조금 생각이 잘못될 수도 있어' 같이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기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 놨다...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선생님 제가 볼 때는 똑똑한 면이 있어요. 감수성이 예민하고 똑똑하고. 의식적으로 살려고 하는 그런 아주 좋은 건설적인 면이 있는데... 그걸 충분히 이렇게 조화롭게 발전하지 못할 수 있는 면이 뭐냐 하면 선생님의 그 예민함에 대한 수치심 그것 때문에 선생님이 너무 많이 자기 어떻게 보면 갑옷을 만들어 놨다고 해야 되나? 어... 그게 좀 안타까워요.

─그러게요. 방어 기제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해주신 말씀에 너무 공감되는 게 이 예민함을 무기로 계속 살아왔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네. 잘 배우고, 마음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뭐 그런...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어. 사람이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있어. 그리고 내가 목표한 것들은 반드시 해낼 거야. 증명할 거야. 보여줄 거야. 그런 예민함...

─무언가를 정말 즐기면서, 순수한 그런 의도를 갖고 한다기보다는 그러니까 니들이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어 내가 인정하니까 그게 사실은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정말 강한 인정욕 때문에 그게 만들어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제가 이렇게 이런 사람이고 싶지 않거든요.


─제가 얼핏 듣기로는, 남편한테 기대한 게 나의 예민함을 좀 이렇게 담아줄 수 있는 그런 걸 선생님이 원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남편도 그냥 그 나이대에 그 예민한 남자. 그냥 어리석은 한 그 나이대의 사람이라는 거에 선생님이 굉장히 실망했고 그 사람이 본인의 예민함을 건드리는 그런 뾰족한 소리를 지른다든지 뭔가 "병신"하고 선생님의 가장 깊은 수치심을 건드리는 말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예민함으로는? 근데 제가 볼 때는 남편이 그냥 '보통의 남편'인 것 같거든요. 근데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면 좀 다른 방법으로 이렇게... 가까운 관계를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선생님한테도 좋은 토양이 또 밭이 돼 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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