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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으로 왔다 결국 220 볼트인 걸 깨달은 사람들

이혼일기, 마지막 상담 episode 3.

by 검정멍멍이






─근데 이런 저도 대화가 잘 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오기였을까, 나에 대한 사실을 정정하고 싶은 용기였을까? 선생님의 '팩트 폭행'에 정곡을 찔렸지만 그래도 내가 아예 대화가 안 되는 꽉 막힌 사람은 아니란 걸 분명히 하고 싶었다. 물론 발끈하며 반박한 건 맞다.




─그런 식으로?


─네! 지금 이렇게 똑같이 해도 대화가 정말 잘 되는 사람들이 진짜 한 5명 이상 있어요.


─그게 뭐에 대한 대화일까요? 뭔가 추상적인 의견을 나누는 걸까요?

─뭐든요. 농담이든, 진지한 얘기든, 뭐가 됐든...

─정말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돼요?


─네. 돼요.


─될 때도 있겠지.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말씀하신 게 어느 정도는 맞는데 제가 왜 웃었냐면... 저는 그동안 취사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하여간... 똘똘이 스머프라니까...


기특함이었을까, 아쉬움이었을까 선생님이 오묘한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결국 핵심은, 대화가 되는 사람들하고는 이런 얘기를 하고 안 되는 사람들하고는 이런 얘기하지 말자. 안 그러면 내가 너무 피곤하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 사람들이 굉장히 뭔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가 보다. 하하하...


살짝 비꼬는듯한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아니죠. 그 사람들도 저처럼 이런 방식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인 거죠. 근데 서로 너무 재미있어요. 근데 그 친구들도 이런 얘기를 해요. "나는 이렇게 대화가 너랑 너처럼 잘 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지 않아."

─소위 이성적인 대화?

─근데 재밌어요. 저... 저는... 예를 들면 시답지 않은 농담 같은 건 재미도, 의미도 없고 시간 아깝고 그럴 바에는 그냥 혼자 상상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에이, 시답지 않은 농담 속에 오가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렇죠. 맞아요. 그걸 부정하지도 또 무시하지도 않아요, 그런 사람들의 방식은 100% 존중하는데, 나라는 인간을 그런 부류의 '안 맞는 퍼즐에다 억지로 끼워 맞춰야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왜냐하면 나한테 맞는 다섯 명 이상이 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또 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얼마든지 세상에 더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근데 알고 싶어 하잖아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싶어 하잖아요.

─......

쌔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5명 하고만 소통해 가지고 선생님 삶이 풍부해질까요? 정말 그게 될까요?

─하하... 물론 그렇죠.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까지 110 볼트에 계속 맞추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까 싶은 거죠...


─아휴... 누가 스트레스 받으래, 그냥 그렇다는 거지...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제가 '110 볼트로 바꿀 필요는 없다'라고 노선을 정한 셈이죠...


─어... 그래요? 안 그러면 남편하고 대화가 안 되는데...


─그러니까 이 방법을 해도 안 되면 이제 안 되는 거예요.


─어허...


그러니까 세상에는 220 볼트가 있고요. 110 볼트인 사람이 있는 거죠!



─아니요...
저는 110 볼트인 줄 알고 여기와 가지고 나중에
220 볼트로 나가는 사람 많이 봤어요.

하하하...


선생님의 너털웃음 소리가 방 공기를 사늘하게 채웠다.




─뭐, 110 볼트로 살아도 괜찮아요. 살아도 되는데, 110 볼트로 사는 게 그렇게 편치 않아요. 힘들어요. 그리고 자꾸 에러가 나요. 자꾸 소켓이 고장 나거나, 자꾸 불타거나 자꾸 그런다니까, 110 볼트로 살면... 힘들 때가 많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러면 이제 와서 저라는 사람을 바꾸려고 해도 안 바뀔 거고.


─그렇게 안 된다니까... 그냥 그렇구나. 그래 또 그런 소리 들었네 하면서...


─네.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 사실인데...

주파수가 뒤엉킨 라디오처럼 말들이 서로 겹쳐 어지럽게 공기로 흩어졌다.


그렇게 하다 보면 또 시간이 가면 조금, 조금, 조금... 장점은 장점대로 있으면서 220으로 다시 쓸 수 있는 게 생기는 거죠. 제가 어떤 얘기를 하나 꺼내면 본인은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 말하면서 '내가 오늘부터 실행 1, 실행 2. 실행 3 하면 될까요?' 뭐 이런 식으로 또 하려고요? 하하...

─아니요. 그거 안 할 거예요. 그렇게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근데 남편이 느끼는 건 모르죠. 그건 제가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그건 어쩔 수 없죠.

─남편은 자연스러운 사람의 측면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걸 인정하라는 거예요.


─네. 인정해요. 제가 약간 특이한 스타일이죠. 진지하고.


─'내가 약간 대화하거나 이럴 때 너무 이성적으로만, 전달력이 좀 없게 이렇게 얘기하는 게 있고 약간 윗자리에서 얘기하는 게 있고 내가 그런 거 있어 그래서 기분 상할 때 많지? 그거는 내가 인정해.' 이렇게요...

─와... 그걸 제 스스로 인정을 하는데...

─그런데 막상 말하기는 쉽지 않죠?


─아뇨. 아뇨. 음... 뭐랄까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윗자리에서 나는 너보다 뛰어난 사람이다'라고 상대적 비교 우위를 갖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죠? 많아요... 왜냐하면 아까 그 "저녁 내가 할게." 상황 이후에 서로 싸우게 됐잖아요. 다툼이 생기면서 남편한테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굉장히 길게. "네가 뭐 이렇게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잖아." 이러면서 말하는데, 그 상황에서가 바로 윗자리에서 말하는 느낌이었어요. '그거는 이렇게 했어야 맞고, 네가 그 상황에서 이렇게 했어야 맞고. 이게 맞고 선생님이 딱 프레임을 짜 가지고 이렇게 대화를 했어야 이게 정답이야'라는 틀을 이미 줬어요.

─맞아요. 틀 줬는데... 틀을 줬는데 그건 제 생각을 표현한 거지...

No!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얘기 안 했어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 그게 구분이 잘 안 되시는 거예요.


─허허허... 그런가요? 제가 남편에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만약에 내가 A로 말하기를 원했지만 내가 A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네가 지금 나의 말투를 지적하는 거라면 너 또한 네가 먼저 말을 했을 때 너의 말투를 되돌아봐야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야 돼! 그게 맞지 않아?' 하며 말하지 않고요.

─않을까만 붙였지... 하하... 그게 내 생각이야.

그러면 생각을 어떻게 전달해요? 저라는 사람은? 상대방한테... 그냥 이게 제가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일 뿐인데... 도대체 생각을 어떻게 전달해야 되죠? 이것조차 강요라는 프레임으로 다가간다고 한다면?


─그냥 내가 느끼기에는 내가 잘못 느꼈을 수 있어요. 본인 마음속에서 남편은 이성이 부족한, 자기 자기 규율도 별로 없는, 자기감정 조절도 못하는. 그런 약간 하등한 그런 사람으로 느껴져요.


─아니에요. 제가 그때 싸웠을 때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싸운 이 대화를 만약 바깥에 사람이 있는 데서 했다면 그때도 네가 나한테 짜증 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넌 다른 사람을 의식하니까. 기분 좋게 그냥 신경쓰지말고 회식 다녀오라는 내 말에 "그래."라고 하고 넘어갔을걸? 근데 집에서 나랑 둘이 대화하니까 별거 아닌 것 갔다가 나한테 태클을 걸잖아. 나는 그게 핵심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에서 우아하게 있죠 뭐...


나는 살짝 격앙된 상태로 하던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덫붙였어요. "우리 둘이 있을 때든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든 난 일관성이 있어. 똑같이 해. 난 가면 쓰지 않아. 근데 나의 말투가 문제다? 그건 아니지!"

─가면이 있어야지!

─저는 가면을 쓰지 않아요.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이 해요. 근데 물론 제가...

─"나는 가면을 쓰지 않는다"는 무슨 말이예요 그럼?


─왜 그게 우월감일까요?

가면 쓴다고 지금 공격하잖아요...


─아니요. 가면 쓰는 건 네 자유인데 왜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친절할 수 있는 거를 왜 나랑 둘이 있을 때는 마치 이중인격자처럼 그렇게...


편하니까! 누가 밖에서 가면 쓰는데 집에 와서까지 가면을 써요? 그러면 병이지. 친밀하고 편하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진면목을 보여야 될 거 아니에요. 밖에서는 남이니까, 거리가 있으니까 예의를 지키고 가면을 써야지.

─가까운 사람한테 예의를 제일 많이 지켜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말은 그렇지만 가까운 사람한테 예의 지키면요. 친한 친구 사이에 그랬어요. 저랬어요. 해보세요. 거리가 확 느껴지고 마음 안 가요. 그렇게 해가지고 친하기 어렵다니까...

─제가 그 말씀을 제가 진짜 친한 친구한테도 지켜야 될 선을 지키면서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거는 사회생활의 테투리에서 관계일 수 있으니까...

─그 친구가 하는 그런 진짜 속 깊은 얘기 많이 하고 정말 속에 얘기 다 하거든요.


─선생님은 순진한 면이 순수한 면이 있어서 그게 통하는 사이고... 보통은 그렇지 않아요.


─근데 저는 그런 가치가 굉장히 중요해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러니까 근데 이거는 제가 만들어낸 저의 말 개똥 철학이 아니라 진리 아니 인생 진리잖아요? 이거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된다.


─나가서 다 물어보세요. 부부 사이에 더 예의를 지키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물론 그런 사람이 더 적겠죠. 근데 그런 사람이 다 없진 않죠. 너무 이상을 바라는 건가요?


─하하... 뭐 본인의 뜻은 좋아요. 뜻은 좋은데 이상과 현실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거. 선생님 굉장히 이상에 가깝게 살려고 노력하는 굉장히 순수한 사람인 건 제가 알아요.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근데 보통의 사람은 그렇게 살기가 어려워요.


그럼 저는 보통의 사람이 아닌 사람하고 살아야 되거나, 혼자 살아야 되는 건가요?

아니요. No! 보통의 인간이 돼야 돼요.


─아... 허허허...


그게 성숙해지는 거예요.



허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마지못해 지은 웃음 사이로 깊은 한숨이 스며들었다.




아! 굉장히 순수를 붙들고 사신다... 그게 이유가 있을 텐데... 대개는 마음 아픈 이유가 있거든요?

─에휴...


─남편하고 대화를 해보겠다는데 제가 이렇게 들어보니까... 대화가 잘될 것 같지가 않아요. 허허허...

선생님이 안쓰러움 한수푼, 걱정 한수푼을 넣은 차를 한잔 건내듯 조심스레 말을 건냈다.



─그거는 하루이틀 시도해본 게 아니라서 잘 알고 있어요.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지 뻔히 다 보이니까 제가 더 조심해야죠. 정말 연습 많이 했어요. 거의 한 달 넘게 연습을 계속했는데 쉽지 않아요. 그러니까 안 될 것도 그려져요. 어떻게 했을 때 화나 짜증이 팍 올라온다라는 걸 최근에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또 올라오네 싶은 때도 있었거든요.

─그러게요. 백마디 해도 한마디가 딱 걸리면 그게 트리거가 되서 싸움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할 말을 미리 그 종이에 적고 그 외에 다른 내용이 나오면 그렇구나, 그렇구나... 연습한 대사처럼 똑같이 말을 해봐야겠어요.


─아니 무슨 기계야?


─아... 어쩔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거기서 또 거기서 딱 그게 건드려지는 순간 대화가 단절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정말 많이 연습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럼 길게 연습하시지 말고 한마디로 줄여보세요. 선생님이 이렇게 길게 얘기한 말에 정말 하고 싶은 진실함이 뭐예요? 남편한테. 가장 진실한 말 딱 두 마디로 요약해 보세요. 차라리 그렇게 하시는 게...

제가 하고 싶은 말에 요약이요?

─그 마음. 말에 초점 두지 마세요. 선생님이 전달하고 싶은 남편한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뭐예요?

─전달하고 싶은 마음? 아... 답답하네요...


─머리는 내려놓고...
가슴 속에서
진정 뭘 전하고 싶어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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