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마지막 상담 episode 3.
─근데 이런 저도 대화가 잘 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오기였을까, 나에 대한 사실을 정정하고 싶은 용기였을까? 선생님의 '팩트 폭행'에 정곡을 찔렸지만 그래도 내가 아예 대화가 안 되는 꽉 막힌 사람은 아니란 걸 분명히 하고 싶었다. 물론 발끈하며 반박한 건 맞다.
─그런 식으로?
─네! 지금 이렇게 똑같이 해도 대화가 정말 잘 되는 사람들이 진짜 한 5명 이상 있어요.
─그게 뭐에 대한 대화일까요? 뭔가 추상적인 의견을 나누는 걸까요?
─뭐든요. 농담이든, 진지한 얘기든, 뭐가 됐든...
─정말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돼요?
─네. 돼요.
─될 때도 있겠지.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말씀하신 게 어느 정도는 맞는데 제가 왜 웃었냐면... 저는 그동안 취사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하여간... 똘똘이 스머프라니까...
기특함이었을까, 아쉬움이었을까 선생님이 오묘한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결국 핵심은, 대화가 되는 사람들하고는 이런 얘기를 하고 안 되는 사람들하고는 이런 얘기하지 말자. 안 그러면 내가 너무 피곤하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 사람들이 굉장히 뭔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가 보다. 하하하...
살짝 비꼬는듯한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아니죠. 그 사람들도 저처럼 이런 방식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인 거죠. 근데 서로 너무 재미있어요. 근데 그 친구들도 이런 얘기를 해요. "나는 이렇게 대화가 너랑 너처럼 잘 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지 않아."
─소위 이성적인 대화?
─근데 재밌어요. 저... 저는... 예를 들면 시답지 않은 농담 같은 건 재미도, 의미도 없고 시간 아깝고 그럴 바에는 그냥 혼자 상상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에이, 시답지 않은 농담 속에 오가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렇죠. 맞아요. 그걸 부정하지도 또 무시하지도 않아요, 그런 사람들의 방식은 100% 존중하는데, 나라는 인간을 그런 부류의 '안 맞는 퍼즐에다 억지로 끼워 맞춰야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왜냐하면 나한테 맞는 다섯 명 이상이 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또 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얼마든지 세상에 더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근데 알고 싶어 하잖아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하고 싶어 하잖아요.
─......
쌔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5명 하고만 소통해 가지고 선생님 삶이 풍부해질까요? 정말 그게 될까요?
─하하... 물론 그렇죠.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까지 110 볼트에 계속 맞추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까 싶은 거죠...
─아휴... 누가 스트레스 받으래, 그냥 그렇다는 거지...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제가 '110 볼트로 바꿀 필요는 없다'라고 노선을 정한 셈이죠...
─어... 그래요? 안 그러면 남편하고 대화가 안 되는데...
─그러니까 이 방법을 해도 안 되면 이제 안 되는 거예요.
─어허...
─그러니까 세상에는 220 볼트가 있고요. 110 볼트인 사람이 있는 거죠!
─아니요...
저는 110 볼트인 줄 알고 여기와 가지고 나중에
220 볼트로 나가는 사람 많이 봤어요.
하하하...
선생님의 너털웃음 소리가 방 공기를 사늘하게 채웠다.
─뭐, 110 볼트로 살아도 괜찮아요. 살아도 되는데, 110 볼트로 사는 게 그렇게 편치 않아요. 힘들어요. 그리고 자꾸 에러가 나요. 자꾸 소켓이 고장 나거나, 자꾸 불타거나 자꾸 그런다니까, 110 볼트로 살면... 힘들 때가 많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러면 이제 와서 저라는 사람을 바꾸려고 해도 안 바뀔 거고.
─그렇게 안 된다니까... 그냥 그렇구나. 그래 또 그런 소리 들었네 하면서...
─네.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 사실인데...
주파수가 뒤엉킨 라디오처럼 말들이 서로 겹쳐 어지럽게 공기로 흩어졌다.
─그렇게 하다 보면 또 시간이 가면 조금, 조금, 조금... 장점은 장점대로 있으면서 220으로 다시 쓸 수 있는 게 생기는 거죠. 제가 어떤 얘기를 하나 꺼내면 본인은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고 말하면서 '내가 오늘부터 실행 1, 실행 2. 실행 3 하면 될까요?' 뭐 이런 식으로 또 하려고요? 하하...
─아니요. 그거 안 할 거예요. 그렇게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근데 남편이 느끼는 건 모르죠. 그건 제가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그건 어쩔 수 없죠.
─남편은 자연스러운 사람의 측면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걸 인정하라는 거예요.
─네. 인정해요. 제가 약간 특이한 스타일이죠. 진지하고.
─'내가 약간 대화하거나 이럴 때 너무 이성적으로만, 전달력이 좀 없게 이렇게 얘기하는 게 있고 약간 윗자리에서 얘기하는 게 있고 내가 그런 거 있어 그래서 기분 상할 때 많지? 그거는 내가 인정해.' 이렇게요...
─와... 그걸 제 스스로 인정을 하는데...
─그런데 막상 말하기는 쉽지 않죠?
─아뇨. 아뇨. 음... 뭐랄까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윗자리에서 나는 너보다 뛰어난 사람이다'라고 상대적 비교 우위를 갖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죠? 많아요... 왜냐하면 아까 그 "저녁 내가 할게." 상황 이후에 서로 싸우게 됐잖아요. 다툼이 생기면서 남편한테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굉장히 길게. "네가 뭐 이렇게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잖아." 이러면서 말하는데, 그 상황에서가 바로 윗자리에서 말하는 느낌이었어요. '그거는 이렇게 했어야 맞고, 네가 그 상황에서 이렇게 했어야 맞고. 이게 맞고 선생님이 딱 프레임을 짜 가지고 이렇게 대화를 했어야 이게 정답이야'라는 틀을 이미 줬어요.
─맞아요. 틀 줬는데... 틀을 줬는데 그건 제 생각을 표현한 거지...
─No!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얘기 안 했어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 그게 구분이 잘 안 되시는 거예요.
─허허허... 그런가요? 제가 남편에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만약에 내가 A로 말하기를 원했지만 내가 A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네가 지금 나의 말투를 지적하는 거라면 너 또한 네가 먼저 말을 했을 때 너의 말투를 되돌아봐야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야 돼! 그게 맞지 않아?' 하며 말하지 않고요.
─않을까만 붙였지... 하하... 그게 내 생각이야.
─그러면 생각을 어떻게 전달해요? 저라는 사람은? 상대방한테... 그냥 이게 제가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일 뿐인데... 도대체 생각을 어떻게 전달해야 되죠? 이것조차 강요라는 프레임으로 다가간다고 한다면?
─그냥 내가 느끼기에는 내가 잘못 느꼈을 수 있어요. 본인 마음속에서 남편은 이성이 부족한, 자기 자기 규율도 별로 없는, 자기감정 조절도 못하는. 그런 약간 하등한 그런 사람으로 느껴져요.
─아니에요. 제가 그때 싸웠을 때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싸운 이 대화를 만약 바깥에 사람이 있는 데서 했다면 그때도 네가 나한테 짜증 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넌 다른 사람을 의식하니까. 기분 좋게 그냥 신경쓰지말고 회식 다녀오라는 내 말에 "그래."라고 하고 넘어갔을걸? 근데 집에서 나랑 둘이 대화하니까 별거 아닌 것 갔다가 나한테 태클을 걸잖아. 나는 그게 핵심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에서 우아하게 있죠 뭐...
나는 살짝 격앙된 상태로 하던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덫붙였어요. "우리 둘이 있을 때든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든 난 일관성이 있어. 똑같이 해. 난 가면 쓰지 않아. 근데 나의 말투가 문제다? 그건 아니지!"
─가면이 있어야지!
─저는 가면을 쓰지 않아요.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이 해요. 근데 물론 제가...
─"나는 가면을 쓰지 않는다"는 무슨 말이예요 그럼?
─왜 그게 우월감일까요?
─가면 쓴다고 지금 공격하잖아요...
─아니요. 가면 쓰는 건 네 자유인데 왜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친절할 수 있는 거를 왜 나랑 둘이 있을 때는 마치 이중인격자처럼 그렇게...
─편하니까! 누가 밖에서 가면 쓰는데 집에 와서까지 가면을 써요? 그러면 병이지. 친밀하고 편하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진면목을 보여야 될 거 아니에요. 밖에서는 남이니까, 거리가 있으니까 예의를 지키고 가면을 써야지.
─가까운 사람한테 예의를 제일 많이 지켜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말은 그렇지만 가까운 사람한테 예의 지키면요. 친한 친구 사이에 그랬어요. 저랬어요. 해보세요. 거리가 확 느껴지고 마음 안 가요. 그렇게 해가지고 친하기 어렵다니까...
─제가 그 말씀을 제가 진짜 친한 친구한테도 지켜야 될 선을 지키면서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거는 사회생활의 테투리에서 관계일 수 있으니까...
─그 친구가 하는 그런 진짜 속 깊은 얘기 많이 하고 정말 속에 얘기 다 하거든요.
─선생님은 순진한 면이 순수한 면이 있어서 그게 통하는 사이고... 보통은 그렇지 않아요.
─근데 저는 그런 가치가 굉장히 중요해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러니까 근데 이거는 제가 만들어낸 저의 말 개똥 철학이 아니라 진리 아니 인생 진리잖아요? 이거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된다.
─나가서 다 물어보세요. 부부 사이에 더 예의를 지키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물론 그런 사람이 더 적겠죠. 근데 그런 사람이 다 없진 않죠. 너무 이상을 바라는 건가요?
─하하... 뭐 본인의 뜻은 좋아요. 뜻은 좋은데 이상과 현실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거. 선생님 굉장히 이상에 가깝게 살려고 노력하는 굉장히 순수한 사람인 건 제가 알아요.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근데 보통의 사람은 그렇게 살기가 어려워요.
─그럼 저는 보통의 사람이 아닌 사람하고 살아야 되거나, 혼자 살아야 되는 건가요?
─아니요. No! 보통의 인간이 돼야 돼요.
─아... 허허허...
─그게 성숙해지는 거예요.
허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마지못해 지은 웃음 사이로 깊은 한숨이 스며들었다.
─아! 굉장히 순수를 붙들고 사신다... 그게 이유가 있을 텐데... 대개는 마음 아픈 이유가 있거든요?
─에휴...
─남편하고 대화를 해보겠다는데 제가 이렇게 들어보니까... 대화가 잘될 것 같지가 않아요. 허허허...
선생님이 안쓰러움 한수푼, 걱정 한수푼을 넣은 차를 한잔 건내듯 조심스레 말을 건냈다.
─그거는 하루이틀 시도해본 게 아니라서 잘 알고 있어요.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지 뻔히 다 보이니까 제가 더 조심해야죠. 정말 연습 많이 했어요. 거의 한 달 넘게 연습을 계속했는데 쉽지 않아요. 그러니까 안 될 것도 그려져요. 어떻게 했을 때 화나 짜증이 팍 올라온다라는 걸 최근에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또 올라오네 싶은 때도 있었거든요.
─그러게요. 백마디 해도 한마디가 딱 걸리면 그게 트리거가 되서 싸움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할 말을 미리 그 종이에 적고 그 외에 다른 내용이 나오면 그렇구나, 그렇구나... 연습한 대사처럼 똑같이 말을 해봐야겠어요.
─아니 무슨 기계야?
─아... 어쩔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거기서 또 거기서 딱 그게 건드려지는 순간 대화가 단절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정말 많이 연습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럼 길게 연습하시지 말고 한마디로 줄여보세요. 선생님이 이렇게 길게 얘기한 말에 정말 하고 싶은 진실함이 뭐예요? 남편한테. 가장 진실한 말 딱 두 마디로 요약해 보세요. 차라리 그렇게 하시는 게...
─제가 하고 싶은 말에 요약이요?
─그 마음. 말에 초점 두지 마세요. 선생님이 전달하고 싶은 남편한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뭐예요?
─전달하고 싶은 마음? 아... 답답하네요...
─머리는 내려놓고...
가슴 속에서
진정 뭘 전하고 싶어요?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