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마지막 상담 episode 끝.
허물은 벗은 매미가 울음을 터트리듯 무겁게 이어진 침묵을 깨어버린 내가 말을 이어갔다.
─요약하면 이거 같아요. '나는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살고 싶었어. 근데 막상 우리 결혼생활이 생각대로 안 되니까 괴로웠던 것 같아. 그리고 이게 왜 괴로웠나 고민해 보니까, 어린 시절 겪었던 고통이 떠오르는 것 같아. 너는 어땠니? 너도 어릴 적부터 상처가 있는 것 같은데 서로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터놓고 솔직하게 얘기해 보면 어떨까?' 이렇게...
─더 줄여보세요.
─서로를 이해해 보는 시간을 좀 가져보고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어차피 이해가 안 될 거긴 한데... 그래도 시도해 보고 인정하고 다른 사람이구나가 인정이 되면...
─아니! 선생님... 마음에서... 본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꼭 알아야 돼요. 왜 얘기하자 그랬어요? 왜 대화하고 싶었어요? 남편이랑.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봐요. 제가요... 제가 저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봐요. 제가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봐. 그래서 대화하고 싶었어요.
─자기 위주로? 그냥 본인 마음 편하자고?
─음... 아니요.
─선생님 찝찝한 거 걸러내려고?
─아니요. 저보다는 딸을 위해서...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어요?
─후...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자기 마음도 몰라. 자기 마음도...
─딸이 불쌍해 불쌍해요. 딸이 불쌍해요. 그게 제 마음이에요.
─딸이 불쌍해서 그래서?
─......
─그래서...
─지금 자기 마음의 핵심이 뭔지를 잘 몰라. 그러니까 장황하게 분석도 하고 뭐 이것도 갖다 붙이고.
─아니! 자기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지금 이 사람한테 정말 진심을 다 하고 싶은게 뭔가요? 진짜 표현하고 싶은 진심이 뭐예요!
선생님이 전에 없던 짜증이 섞인 말투로 말한다는 걸 알았지만, 답을 알지 못하는 나 또한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진심을 이렇게, 저렇게 막 이렇게 해서...
─그걸 모르겠어요...
─그래! 알맹이가 있어야 그다음에 무슨 색이라도 칠하든지 하지... 진심이 뭔지 지금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들어도 저한테 전달이 안 되는 거예요.
─제 진심을 제가 모르겠어요.
─왜 얘기하자고 하는 거예요 남편한테? 남편하고 한 번쯤은 왜 얘기하고 싶어요?
─오해를 풀어야 되니까?
─오해를 풀고 싶어요? 그래, 조금 들린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고 오해를 풀고 싶어요. 차라리 그렇게 얘기하는 게 훨씬 부인이 뭔가 다가와요. 시작할 수 있어요.
─후...
폭죽놀이가 끝난 공원에서 하늘을 보듯 공허한 침묵이 이어졌다.
─대화라는 게 서로 머리 맞대고 수학 문제 같이 푸는 게 아니잖아요. 진심을 얘기하는 거예요. 허심탄회하게.
─......
─솔직하게!
─그러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도대체 뭘 얘기해야 될까요?
─본인 생각은 그런 것 같아요? 여태 얘기한 것 중에
─네! 거의 한 달을 넘게 고민했으니까요. 어떻게 대화를 처음에 무슨 대화를 하지? 진심을 안 보였다. 엄청나게 진심을 진심을 다가가기 위해서 이해하려고 노력을 정말 많이 했는데... 다른 얘기를 설명하고 있다고요? 진심으로 다가가는 길을 문을 하나씩 하나씩 여는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게 그 과정이 겉으로 도는 게 아니라 여기까지 가려면 이미 바깥에 쳐져 있는 바리케이드를 하나씩 하나씩 자물쇠를 풀어야 여기까지 같이 갈 수 있는데...
─그걸 왜 본인한테 그걸 같이 풀재... 선생님이 먼저 자기 진심을 알고 바리케이드를 안에서 풀고 그래서 내 진심을 확인하면 그거 가지고 이제 대화를 시작해야죠. 대화하면서 내 진심을 발견해 달라고 그런 건 아니죠?
─아니요. 아니요. 제 진심은 다 발견했어요. 나의 상처가 있었다.
─그게 무슨 진심이야... 그거는 분석이지. 설명이고 분석이에요.
─이게 왜 진심이 아니에요? '난 상처를 받았었다. 어렸을 때 아픔이 있었다. 그런 괴로움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진정으로 느꼈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분석이에요?
─그게 남편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상관이 있죠... 내가 왜 화를 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니까요.
─그걸 왜 설명하고 싶으세요?
─그걸 왜 설명하냐면 내가 그런 상처가 있었던 사람이라서 그 상처를 내가 외면하고 살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까 결국 너와의 트러블도 있었던 것 같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그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럼 그걸 짧게 해 보세요.
─어떻게 짧게 해요? 이걸.
─내가 내 문제 때문에,
─"내가 내 문제 때문에"
마치 어린아이가 언어를 배우듯 나도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내가 잘 모르는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갔다.
─'내가 내 문제 때문에 너하고 잘 지내기 어려웠던 면도 있었던 것 같다...'
─네! 근데 그게 제가 남편에게 전하고픈 모든 이유가 아니잖아요. 전 그저 다른 것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의 관계에서 내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였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내 목소리에는 흥분이 더해지고 선생님의 말에는 차분함이 더해졌다.
─그러니까 너하고 나하고 그동안 잘 지내기 어려웠는데, 내가 생각해 보니까 내 문제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너하고 다시 잘 지내보고 싶어.
─하...
정곡을 찔린 사람의 허탈한 실소였을까... 입 밖으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우리 딸을 위해서라도 내가 어릴 적부터 늘 꿈꾸던, 서로 마음이 통하고 잘 의논할 수 있는 그런 부부 사이로 지내고 싶어.
─꼭 그렇게 얘기해야지만 상대가 알아듣나요?
오히려 선생님의 표현법이 훨씬 부자연스럽다고 확신에 찬 내가 반문했다.
─오히려 쉬운 말 아닌가요? 진심이 좀 담겨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상대를 딱 앉혀놓고 어릴 적부터 우리 부모님과 살면서 많은 사연이 있었고 그래서 이런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내가 화를 이런 식으로 표현을 했기 때문에 우리 관계에 어려움이 있었어...'라고 얘기를 하는 건 약간 어떻게 보여요?
─후......
─물론 그게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그게 잘못됐다거나 그건 아니지만.
─아니요! 말의 순서가 중요하죠.
─약간 약간은 뭐랄까 말을 돌리는 듯한?
─진심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요. 우리 '마음속 진심은 아주 쉽고 단순한 말 자연스러운 말'로 돼 있어요.
─와......
한숨이 방을 가득 채웠다.
─물론 제가 틀렸을 수도 있어요. 근데 어쨌든 제 생각에는 조금 더 쉬운 말로, 더 소박한 말로 대화할 수 있고 사고할 수 있고 또 보통의 사람이 되면 본인이 훨씬 더 편안해질 거고 자기 마음도 훨씬 잘 알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풍요롭게 여기저기서 소통하고 이러면서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오늘 1시간 얘기하면서도 또 드네요. 근데 이건 저의 의견이니까... 제가 또 선생님 뭐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그렇지만 선생님이 단 10 회지만 저를 많이 믿고 제 얘기를 흘리지 않고 깊이 숙고해 주신 거는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 덕분에 저도 선생님한테 스스럼없이 제 의견을 좀 이렇게 얘기도 해보고 직설적으로 밀어붙여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 만나서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면은 선생님이 아주 순수하게 마음을 열고 저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네.
─혹시 뭐 아쉽거나 뭐 좀 미진하다고 느끼시거나 아니면 상담하시면서 불편하신 점이 있으셨거나 뭐든지 얘기하시겠어요?
─어...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되지?
─......
─정답은 없는데 이것저것 그래서 시도해 봐야 되는데 내 방법이 보통의 방법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싶어서 아주 혼란스러워요. 나는 이 방법이 나의 가장 노멀 한 방법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아니라고 그러면...
─아니라는 게 아니라! 다른 면도 조금 발달시켜 보라는 거지... 아니라는 게 아니에요. A 아니면 B야?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아는 거는 이 방법 말고는 없는데... 나는 이런 방법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하지?
─아니 뭐 조금조금 이렇게 보통 사람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자꾸 느는 거지. 남편하고 연습 많이 해보세요.
참 좋은 장점도 많고 재미있고 또 열정도 많고 그런 거 참 좋은 면인 것 같아요.
띵동!
다음 상담을 예약한 사람이 초인종을 눌렀다. 부랴부랴 인사를 하고 상담을 마무리해야 했다. 아직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었지만 이제 그만 다음 페이지로 삶의 책장을 넘겨야 했다. 선생님께 그동안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허리를 깊이 숙여 마지막 인사를 건냈다.
"다시 예전처럼 잘 지내보고 싶어."라는
선생님의 한 마디가 떨고 있는 나를
따뜻한 이불처럼 포근히 덮었다.
나는 몇번이고 그 말을 되내었다.
혼자서는 끝내 생각하지 못했을 말,
지난 3년의 상처를 모두 감싸안을 한마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아이를 재우고 오랜만에 마주보고 앉아
남편에게 꺼낼 그 한마디를
온 힘을 다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