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스' 이야기
파올로 소렌티노의 이번 영화는 전작들과 궤를 같이하는 영화였다. 의심의 여지없이 촬영과 미술, 음악, 음향에 대해선 찬사를 아낄 수 없었으며, 뚜렷했고, 대단했다. 그러나 특유의 내러티브 전개방식은 아직도 답보상태이거나 조금 나아진 것 밖에 없었는데, 장황한 대사들은 마치 빛바랜 책장으로 흘러가버린 명언집에서 끄집어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장황했다. 난 이전까지 파올로 소렌티노에게 호의적이었던 적은 없었지만(부분적으로는 호의적이라 하겠다), 역시나 이번 영화에서도 호의적일 수는 없었다. 영화가 여러가지 감각을 만족시키고 시간, 공간예술로써도 기능한다 할지라도 그 중심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기준으론 장단이 분명한 감독이라 종합적으로 호불호를 단정짓기 보다 장단점을 확실하게 나누는 글로 써볼까 한다.
- 촬영, 콘티, 인물들
역시나 이번 영화에서도 특이한 무대장치를 등장시켜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촬영을 보여줬다. 첫씬부터 돌아가는 무대에 카메라를 올려 배경을 싹 훑고 시작하는데, 촬영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는 여전했다. 대사를 뱉는 인물의 바스트샷이나 오버더숄더, 클로즈업을 제외하고 나머지 숏들에 스테디캠, 달리, 크레인 등의 장비를 최대한 사용한 것도 좋게 볼 수밖에 없었다. 촬영 콘티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엔 항상 감탄할 뿐이었다. 그것에 대한 다른 이유가 있는데, 화면에 수많은 엑스트라들을 배치하는 것과 그들의 동선을 조율하는 것이 하나요, 그들의 그룹샷이나 클로즈업을 항상 꼼꼼하게 다 찍으면서 그립 장비를 이용한 카메라 워킹까지 흠 잡을 데가 없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엑스트라들을 그 정도로 사용하면서 액팅의 디테일까지 조율하여 카메라를 흐를 수 있게 만드는 게 참으로 놀라웠다. 전작 '그레이트 뷰티'나 '아버지를 위한 노래'에서도 느꼈지만,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광각 풀샷을 배경 몽타주로 이어붙인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것의 편집점을 어디에 놓더라도 자연스러울만치 잘 찍어놨다고 생각했다. 물에 잠긴 도시에 다리를 놓아 미스 유니버스와 마주쳤다가 지나쳐가는 씬에선 흐르는 물결과 고정된 다리의 대비를 통해 장면의 분위기를 특이하게 자아내며 다시 한 번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도록 만들었고, 절묘한 CG 사용으로 다리를 물에 잠기게하는 것과, 어두운 배경에 묻은 건물의 조명이 살짝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화면을 항상 넓게 잡음에도 군더더기 없이 흐르는 그립 장비를 이용한 숏들을 보며, 세트나 건물의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 또한 느꼈다. 이렇듯 실험적이면서도 효과가 극대화된 촬영은 소렌티노만이 감당할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 미술, 음악, 음향 등
파올로 소렌티노의 영화는 사람이 많은 떼샷을 잡을 때나 꼼꼼하게 만든 세트를 볼 때 피터 그리너웨이의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가 어렴풋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광각을 잡아 너른 풍광을 정말 예쁘게 찍을 땐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가 생각나기도 한다. 물론 두 감독들과 스타일이 다르지만, 앞에서 언급한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화면의 가장자리까지 세심하게 꾸미는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이번번 작품 '유스'는 스위스의 요양 호텔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목가적인 풍경이나 청정한 자연, 알프스의 웅장함 같은 진부함에 빠지지 않고 배경의 컨셉을 자신의 공식에 따라 만들어냈다. 식당의 테이블에 올라간 식기들, 식탁의 위치와 의자들, 온천풀과 간이 의자 등 하나도 빠짐없이 신경을 썼고, 환자들의 복장이나 마사지사들의 여흥까지(콘솔박스로 춤게임을 하는 것 등) 신경을 썼다. 음악과 음향 역시 섬세하게 조율하여 마무리했다는 인상을 심어줬는데, 첫씬의 무대나 혹은 그 이후 같은 무대에 서는 다른 가수들의 음악 하나까지 다 좋았다. 또한 앰비언스를 비롯한 음향효과를 통해 때론 잠잠하게, 때론 증폭하여 극적인 연출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해당 화면에서의 모든 것들을 어우러지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나 소들의 방울 소리를 지휘하는 장면에선 방울의 소리와 소의 울음, 배경 앰비언스가 자연스럽게 합치되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또 하나, '심플 송'이라는 음악을 서술적 장치로 맡긴 것도 좋았다. 이것은 내러티브적인 면에서 후에 서술하겠다.
- 전개는 장황하게, 대사는 터무니없게, 알맹이는 안 보이게
전작인 '그레이트 뷰티', '아버지를 위한 노래' 등을 보면서 느꼈던 '과장됨을 가장한 감추기'가 '유스'에서도 여전했다.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유행이 지난 명언집에서 꺼낸 것 같은 말들을 수없이 장황하게 풀어낸다. 실없는 말이나 제스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지점에서도 어김없이 장황한 말들을 읊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내러티브의 중심적인 요소들이 가려졌고, 그것을 알아먹기 위해선 그 영화를 몇 번씩이나 봐야한다. 한 영화를 몇 번씩이나 볼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이해할 수 없는 영화가 이 영화 말고도 많긴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처럼 장황함을 가장한 꼬아놓음은 관객을 영화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모든 것을 감춰서도 안 되는 것이니까. 어쨌거나 감독은 장황한 대사들로 관객들에게 실마리를 던져주는 척을 하지만 이 영화의 중심을 제대로 보여주진 않는다. 뜻모를 말들과 허영 가득한 대사들이 몽타주 연결처럼 던져지는데, 그것을 알레고리적 흐름이라며 이해를 바라는 모습은 관객에 대한 감독의 고자세를 느끼게 하여 좋게 볼 수 없었다.
장황한 말들을 잘 간추려내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근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간추려내는 관객은 소수일 것이다. 하비 케이틀의 대사를 추렴하면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게 보이지만, 그것이 과연 그 정도의 과장을 통해 보여져야만 하는 것인가 하며 의문을 품게된다. 혹자의 말처럼 대사의 밀도가 높아서 되려 역효과가 나는 것이다. 주제를 풀어내는 장치 중 하나인 '심플 송'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전개하며 틈새를 이용해 그것을 언급하는데, 그것의 실체가 어떤지, 그것으로서 어떤 의도를 알아채야 하는지 매끄럽게 풀어내지 않는다. 감독의 의도와 관객의 상상력의 거리가 꽤 있음에도 감독은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물론 그 장치가 어떤 방향으로 결말을 맺을 지 잘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관객이 이 정도로 알아먹기 힘들다면 감독의 화술은 실패한 것이다. 기술적으로 화려한 영화는 맞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관객이 '화면이 예쁘고 아무튼 좋은 영화였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면 영화의 방식이 옳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파올로 소렌티노의 스토리텔링에서 가장 큰 잘못은 몽타주를 통해 보여주려는 거대한 이미지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고가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 빛나는 연기
마이클 케인은 참으로 편안하게 연기를 한다는 게 느껴졌다. 하비 케이틀 역시 마찬가지였고. 둘은 장황하다 못해 체할 것 같은 대사들을 소화하면서도 자신들을 통해 발현되는 뉘앙스와 제스쳐를 충분히 보여줬다. 노년의 두 남자가 늙은 몸의 궤적을 통해 풀어내는 추억들이 그들의 연기를 통해 절실하게 다가왔고, 그것으로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본다. 폴 다노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그는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진 않았지만 적당한 무게와 제스쳐를 통한 분위기를 만들며 자신의 캐릭터를 오롯이 구현했으며, 이전 필모에서 겪어본 적 없는 색다른 분위기의 캐릭터를 맡아 연기의 지평을 넓혔다. 히틀러 분장을 하고 절뚝이며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것이 백미였다. 레이첼 와이즈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무난하게 했다. 주요 배우들에 대해선 흠잡을 것이 없으나, 그 외의 인물들(단역까지)이 너무 많아 되려 주요 인물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지게 만들었다. 수많은 인물들의 캐릭터를 잡아 온전한 영화를 만들기엔 관객의 집중력을 분산시키기에 무리지만 감독 자신의 힘이 부쳤던 탓인 것도 있을테다.
파올로 소렌티노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역량이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존의 장단점, 특히나 자신의 단점이 부각되는 특유의 스타일만 유지했다. 중간중간의 장치가 참신하게 느껴질 무렵이면 이전과 다름없이 특별함이 반감되게 흘러갔으며, 맥시멀리즘의 한가운데에서 많은 실험과 많은 인물들을 배치했지만 썩 매끄럽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되려 관객을 피곤하게 하는 데엔 변함이 없어보였다. 특유의 영상미가 참 좋고, 기술적인 면에선 월등한 감독이지만 아직까지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내는 감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번엔 장치나 인물의 행위를 통한 내러티브적 비약이 두드러지진 않아서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