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경쟁
"Get whatever you want."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먹어.)
리로이는 선심 쓰듯 말했다.
나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 가득한 푸드코트를 둘러보다가 그나마 나은 선택지인 서브웨이에서 샐러드를 골랐다. 리로이는 서브웨이에서 제일 큰 샌드위치를 시켰고 우리는 한 시간가량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점심을 먹었다.
주로 리로이가 자기 아이들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셀폰에서 사진까지 보여주며 자랑했다.
"I had my first son when I was sixteen, and that one’s kinda useless. But my second son is the captain of his basketball team, my third son is the captain of his football team, and my youngest daughter skipped a grade. She's a genius." (첫아들은 내가 열여섯 살 때 낳았는데, 별로 신통치 않아. 하지만 둘째는 농구팀 주장, 셋째는 풋볼팀 주장, 막내딸은 학년을 월반한 천재야.)
나이 서른둘에 하이스쿨 다니는 아들이라니. 내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라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리로이가 자기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지는 분명했다. 그 모습이 나일즈와도 많이 닮아 있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점심을 먹고 세탁소로 돌아가자, 할아버지는 약속대로 리로이를 피팅 룸으로 안내했다. 말끔히 손질되고 다려진 셔츠와 정장을 입고 나온 리로이는 거울을 보며 환히 웃었다. 자기도 보기에 좋았나 보다. 나 역시 매우 흐뭇하게 웃으며 두 손 다 올려 엄지 척을 해주었다.
우리가 회사로 돌아온 건 오후 2시. 나는 나대로 나일즈와 다른 부서장들의 회의에 들어갔지만 세 시간 내내 리로이의 미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신경이 쓰여 집중이 되질 않았다. 마침내 오후 5시 내 회의가 끝나고 컨퍼런스 룸을 나오는데, 다른 복도 쪽에서 리로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서니 성큼성큼 다가온 리로이가 나를 번쩍 안아 올려 한 바퀴 빙 돌리고 내려줬다.
"Are you crazy?" (미쳤어?)
나는 아일린이 볼까 봐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며 그에게서 한걸음 떨어졌다. 리로이는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환히 웃었다.
"Did you win?" (계약 따냈어?)
나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물었다.
"Yeah, I’m pretty sure we won. I mean, they still have to sign, but they were very impressed with the new service." (응, 확실히 따낸 거 같아. 뭐, 아직 사인하진 않았지만, 우리 새 서비스에 엄청 감탄했어.)
리로이는 입이 귀에 닿도록 좋아했다.
"Oh, my god, that's great news!! Congratulations!!" (세상에, 진짜 대박이야!! 축하해!!)
이번에는 내가 리로이에게 뛰어오르듯 힘껏 껴안아 주었다. 나일즈도 축하한다며 리로이의 등을 힘껏 두들겨 주었다.
"We’re going to Capital Grille for dinner with the clients. Want to join?" (우리 캐피털 그릴에서 클라이언트들이랑 저녁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
리로이가 우리 둘 다 초대했다.
"I need to go home and cook for my kids." (나 집에 가서 우리 애들 밥 해 먹여야 해.)
나는 고개를 저었다.
"Congratulations. You deserve it." (축하해. 너 정말 애 많이 썼다.)
리로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You should have gone there." (너도 갔어야 했어.)
나일즈가 나지막이 말했다.
"Why? You didn’t go either." (왜? 너도 안 갔잖아.)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I’m high enough in the ranks that I don’t need to be there. Plus, Edward is going to be there, and there’s no need for both of us from Finance. But for you? These kinds of opportunities don’t come often. Leroy may be a manager, but you’re both Band 6. One day, you two might be competing for my position." (나는 그런 모임에 안 가도 될 만큼 높은 지위에 있어. 그리고 에드워드가 거기 있을 거고, 파이낸스 쪽에서 나와 에드워드 둘 다 참석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너한테는 그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잖아. 리로이가 매니저라지만 너랑 같은 밴드 6이고, 언젠가는 내 자리를 두고 너희 둘이 경쟁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회사와 동료들을 위해 아침 내내 동분서주하며 애썼는데, 나일즈는 그것보다 내가 리로이와의 경쟁에서 밀릴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건가.
"Why are you telling me this? I thought you saw Leroy as your little brother." (왜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해주는 거야? 난 네가 리로이를 동생처럼 아낀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당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나일즈에게 물었다. 나일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Why do you think I’m only giving this advice to you? Who do you think pushed Leroy, a Computer Science major, to move from Operations to Finance?" (왜 내가 이런 조언을 너한테만 한다고 생각하지?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리로이가 오퍼레이션 쪽으로 갔다가 다시 파이낸스로 옮긴 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해?)
머리가 또 한 번 띵했다. 이것 역시 생각도 못 해본 얘기. 그제야 나는 나일즈와 리로이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리로이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고, 비즈니스 전공이 아니었기에 내가 늘 가르치는 입장이었다. 그가 파이낸스 쪽에서 계속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더구나 밴드 3인 나일즈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다.
"You and Leroy are both incredibly smart and hardworking employees. You have a strong background—double major in finance and accounting, CPA license, Big 4 experience. But Leroy is just as smart. He’s a man, he has charisma, and most importantly, he has ambition. You don’t show that as much. So tell me, if you were the company, where would you place your bets?" (너나 리로이나 둘 다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소중한 인재들이야. 넌 재무·회계 복수 전공에 공인회계사 자격증, 빅 4 경력까지 갖춘, 이 분야에서 강한 경쟁력을 지닌 사람이야. 하지만 리로이는 못지않게 똑똑하고, 남자고, 카리스마가 있고, 무엇보다 성공하고자 하는 야망이 있지. 너는 그게 잘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회사 입장에선 어느 쪽에 더 도박을 걸고 싶을 것 같아?)
그 말을 남긴 채, 나일즈는 그의 검은 BMW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천천히 내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뒤엉키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있는 줄도 몰랐던 경쟁에서 리로이는 이미 나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일즈가 무조건 내 편만 들어주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불편해졌다.
내가 야심이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난 내 상황에 만족한 적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애들을 낳고 매일매일 정신없이 살면서 구체적으로 내가 뭘 원하는지 생각해 본 게 언제 적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헤드라이트를 켜고 개스 페달을 밟았다. 퇴근 시간 러시 아워가 평소보다 길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